▲ 지난 2003년 민주당 부산사상지구당 시절 정윤재 전 비서관의 모습. | ||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면서도 야당인 한나라당의 텃밭인 탓일까. 부산은 ‘친노’와 ‘반노’ 양 극단의 대립이 공존하면서 현 정권 들어 갖가지 ‘사건’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불거져 나온 최도술 전 비서관 대선자금 수수 파문을 시작으로 2004년 안상영 전 시장 자살 파문과 지난해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 회동 파문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부산의 정·관계와 재계 주변에서는 검은 돈의 악취가 진동했고, 유력인사들의 줄서기 작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부산지검은 김 씨 형제를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부풀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철저한’ 수사를 외치고 나섰다. 지난 6일엔 이번 사태의 장본인인 상진 씨를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부산 지역에서는 이번 사태의 실제 ‘뇌관’은 따로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을 전후로 한 시기에 형성된 ‘동갑내기’ 효진 씨와 정 전 비서관 등과의 밀착 관계가 핵심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검찰도 효진 씨의 행적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 효진 씨의 활동 폭은 동생 상진 씨보다 훨씬 일찍부터 더 넓게 전개됐다는 것이 현지의 전언이다.
김 씨 형제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알려졌다. 아직도 회사 등기부상 주소지가 상진 씨는 진주시 평거동으로 돼 있다. 효진 씨의 주소지는 부산 동래구 온천동이다.
이들 형제는 학창시절은 마산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는 효진 씨가 마산고를, 상진 씨가 마산상고(현 용마고)를 각각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졸업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효진 씨는 서울의 K 대 출신으로 소문나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상진 씨는 실업계 고교 출신인 탓인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학력 콤플렉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올해 초 부산의 2년제 전문대인 K 대에 뒤늦게 진학해서 한 학기를 이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 형제의 나이는 2년 차에 불과했지만 성격은 매우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효진 씨는 외향적이고 무척 의욕적인 활동을 한 반면 상진 씨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두 형제의 본격적인 사업 행보는 30대 중반 무렵인 90년대 중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사자들이 입을 굳게 다문 상태여서 그 이전의 행적은 알 길이 없으나 다만 주변에서는 효진 씨가 그나마 사업 수완이 좋아 부산으로 일찍 진출해서 사업 기반을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진 씨는 연고지인 진주에서 이런 저런 사업을 시도했으나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상진 씨가 부산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 것도 형의 배경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김 씨 형제의 사업체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한림토건’이다. 부산에 사업장을 두고 있던 D 토건을 97년 10월 인수해서 상호를 변경했다. 당시 대표이사로 상진 씨가 취임했고 효진 씨는 감사를 맡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들 형제는 이후 두 차례 자리를 바꾼다. 99년 4월 효진 씨가 동생을 대신해 대표이사를 맡았고, 상진 씨는 잠시 빠져 있다가 99년 7월 다시 이사로 등재된다. 그러다가 2000년 12월 다시 상진 씨가 형을 대신해 대표이사가 되고 효진 씨는 2001년 5월 이후 이사진에서 빠졌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회사는 ‘주성건설’이다. 97년 한림토건과 같이 설립된 것으로 알려진 이 회사는 실제 법인등기부 확인 결과 경북 칠곡군에 사업장을 두고 있던 C 건설을 2000년 11월 인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상진 씨는 2000년 8월 C 건설의 이사로 취임한 뒤 3개월 후인 11월 회사명을 주성건설로 바꾸고 사업장도 부산 부전동으로 옮겨 왔다.
▲ 김상진 씨가 수백억 원의 대출을 받아 매입한 부산 민락동 매립지 내의 놀이공원. 연합뉴스 | ||
부산 현지에서는 김 씨 형제가 실제 운영한 4~5개의 회사들이 실은 모두 효진 씨 소유일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동생 상진 씨를 내세우며 ‘배후’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사업은 동생을 내세우고 자신은 정·관계 인사들과의 폭을 넓히는 데 더 역점을 뒀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99년 기보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았을 당시 역시 공교롭게도 효진 씨가 동생을 대신해서 한림토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을 때였다.
이번 파문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김 씨 형제와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의 인연은 2000년께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 전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총선 때 부산 북·강서을구에 출마하자 그를 돕기 위해 지구당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 전 비서관의 자서전 <정윤재의 젊은 도전>을 보면 당시 그는 96년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하고 97년에는 모처럼 벌인 자그마한 사업마저 실패하는 등 다소 암울한 시련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효진 씨가 민원을 제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구당 사무실을 찾았고, 여기서 정 전 비서관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과 함께 지구당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던 최도술 최인호 전 청와대 비서관 역시 함께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효진 씨와 정 전 비서관 두 사람은 이 ‘운명의 만남’에 대해 “단순히 민원을 제기하는 차원에서 찾았고 만났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인호 전 비서관은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노 대통령이 부산에서 총선에 출마했을 때 그들이 지구당에 찾아왔다. 선거 때는 별로 도와주지 않다가 선거 끝나고 민원을 하기에 가까이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느꼈다. 윤재 형이 깜도 안 되는 그들과 왜 친분을 유지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최 전 비서관의 말처럼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효진 씨가 당시 민원 목적으로 단 한 차례만 사무실을 방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생 상진 씨와 함께 여러 차례 사무실을 드나들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친분이 형성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효진 씨가 2002년경 ‘비전과 연대21’에 참가한 것 역시 정 전 비서관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이 많다. 99년 설립된 이 모임은 386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부산지역의 각계 유력인사들이 모여서 토론을 벌이는 모임이었다. 정 전 비서관과 이정호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윤경태 전 청와대 행정관 등 ‘친노’ 성향 인사들은 물론 한나라당 인사들과 교수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폭넓은 성격의 단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기업인 출신으로는 당시 거의 유일하게 효진 씨가 참여했다는 것.
부산 현지 일각에서는 당시 대선에서 대세였던 한나라당을 놔두고 효진 씨가 ‘친노’의 정 전 비서관과 밀착된 것에 대해서 의문부호를 달기도 한다. 이에 대해 부산의 한 중견 기업인은 “당시 이 지역에서 그다지 알려진 중견 기업인이 아니었던 효진 씨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당 측에 쉽게 줄을 대지 못했을 수도 있고 또 정서적으로도 같은 386세대인 정 전 비서관과 뜻이 맞았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 기업인은 지난해 3월 부산에서 이 전 총리의 3·1절 골프 회동 파문이 터졌을 때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부산에서 기업인으로 처신하기란 참 어렵다. 차라리 호남이면 여권만 신경 써도 될 테지만 여기서는 ‘여’를 챙기면 ‘야’에도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형편”이라고 말한 바 있다.
▲ 김 씨 형제의 회사가 있는 부산 부곡동 애플타워. 형 효진 씨 소유다. 연합뉴스 | ||
효진 씨는 2003년과 2004년 정 전 비서관이 주도했던 열린우리당 부산 정책개발위원회에서도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은 당시 2004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친노’ 성향의 386세대 신진 정치인들이 들끓었다. 김 씨 형제는 이때를 기회 삼아 정치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려 애썼던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비서관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처음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자금 부족이었다. 있는 돈을 다 모아봤지만 턱없이 모자랐다’며 96년 총선 출마 당시 자금 부족에 심각한 고민을 겪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가난한 정치 지망생과 기업인의 친분 관계는 의혹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상진 씨의 2003년 2000만 원 후원금 기부 사실이 드러나자 정 전 비서관은 “영수증 처리까지 모두 한 합법적인 후원금 성격”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림토건 등의 사업 실적 저조로 고전하던 김 씨 형제가 전격적으로 반전을 꾀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총선 뒤인 2004년 6월 이후부터였다. 이때 토목건축 전문의 ‘하늘개발’을 설립했고 2005년 4월엔 ‘일건’을 설립했다. 하늘개발은 효진 씨가 대표이사, 상진 씨가 이사를 각각 맡았고, 일건은 반대로 상진 씨가 대표이사, 효진 씨가 이사를 각각 맡았다. 이들 회사는 모두 기존의 한림토건과 주성건설이 들어서 있는 부전동 도시개발공사빌딩에 함께 모여 있었다. 사실상 같은 회사였던 셈이다.
일단 재개발 사업의 주도는 일건이 나섰다. 일건은 불과 자본금 3억 원으로 기존 회사들이 있는 빌딩을 주소지로 해서 급조된 회사였다. 하지만 일건은 연산동 재개발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자마자 두 달 만인 6월 재향군인회에 대출을 신청하고 신생업체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900억 원이라는 거액의 대출을 받게 된다.
2006년 6월에는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인 P 건설의 보증으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 PF(프로젝트 파이낸싱)자금 대출을 신청, 2650억 원의 대출을 받는 데도 성공한다. 지난 5월에는 부산은행에서 680억 원을 대출받아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놀이시설 터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월에는 민락동 유원지 개발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스카이씨티’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상진 씨가 설립 초기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들 형제의 이같이 ‘거침없는 대출’ 행진의 배후를 찾아내는 게 검찰 앞에 놓인 숙제다.
2005년 12월 김 씨 형제의 회사들은 일제히 그 사업장을 부산시 부곡동의 애플타워로 옮겨놓았다. 이 빌딩의 소유자는 효진 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2005년 이후로 이들 형제는 금융권에서 마구잡이로 대출을 받아내며 그들만의 ‘돈 잔치’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갑자기 거액이 횡행하면서 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김 씨 형제가 다툼을 벌여 최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문도 불거지고 있다.
또한 이번 파문이 불거지면서 일건과 하늘개발 스카이씨티 등은 모두 지난 8월 10일자로 회사명을 ‘유시디’와 ‘유시디인터내셔널’, ‘유시디파크’로 변경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