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여성들이 모인 곳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아마도 그 내용을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성세대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군데군데 외래어처럼 등장하는 신조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언어문화의 차이를 세대 차의 탓으로만 돌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신조어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나이를 뛰어넘어 얼마든지 ‘공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신조어는 흔히 ‘사회의 거울’이라고 불린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그리고 사회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를 살피면 최근의 세태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새로 만들어 쓰고 있는 새말들을 정리한 것이다.
책 내용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불경기로 인한 취업난과 불안한 고용 상황을 풍자한 신조어들이 많다는 점. 취업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로는 ‘취집’(취직 대신 시집), ‘대학오학년’(1년 더 대학에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대학둥지족’(대학교 졸업을 늦추고 대학생 신분으로 직장을 구하는 사람)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아주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사람) 등을 들 수 있다. 이 짧은 단어 하나로 이젠 입시보다 취업이 훨씬 더 힘든 시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최근의 어려운 고용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는 ‘삼팔선’(38세 이상을 직장에서 넘기기 힘들다), ‘사오정’(45세가 정년), ‘면창족’(퇴직 압력을 받으며 별다른 일이 없어 창 밖만 바라보는 사람) 등이 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담고 있는 신조어들도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다. ‘국회스럽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투거나 날치기 등 비신사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을 의미)와 ‘국회타임’(약속한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국회의원의 시간관념을 낮잡아 이르는 말)은 일부 국회의원들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비꼬는 말. ‘놈현스럽다’(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는 기대와 다른 대통령의 언행을 풍자한 데서 유래했다.
새로운 세태를 반영하는 말들도 있다. ‘된장녀’(사치를 즐기고 허영이 많은 여자), ‘은둔형 외톨이’(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 ‘훈남’(이미지가 밝고 깔끔한 남자), ‘골드미스’(경제력을 갖춘 30대 이상의 미혼여성) 등은 달라진 인간형을 보여준다.
기념일 관련 신조어도 흥미롭다. 예전에는 밸런타인데이(2월 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 정도를 챙기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매달 기념일이 생겼을 정도다. 닭의 울음소리(구구)에서 유래된 구구데이(9월 9일)는 치킨 먹는 날이 됐으며 삼겹살데이(3월 3일)는 어느새 삼겹살 먹는 날로 통용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갖가지 ‘데이’가 등장한 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기지와 판촉을 겨냥한 상혼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조어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말을 줄이면서 생겨나는 경우다. 자주 쓰는 표현으로 ‘훈남,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잘생기고 멋진 남자), 갈비(갈수록 비호감), 자출(자전거 출근), 즐감(즐거운 감상)’ 등이 있다. 특히 ‘디지털남’이라는 재미난 단어가 있는데 언뜻 봐서는 아날로그의 반대말인 디지털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뜻을 보면 전혀 상관없다. ‘디지게 멋진 털을 가진 남자’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채팅과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말 줄임 현상은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론 두 단어를 합친 합성형 신조어들을 들 수 있다. ‘노래방’과 ‘호텔’의 합성어인 ‘노래텔’(노래방과 같이 꾸며 놓고 성매매를 하는 업소), ‘레저’와 ‘바캉스’가 합쳐진 ‘레캉스’, ‘결혼’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혼테크’(결혼을 재테크처럼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족’, ‘~증후군’, ‘~남/~녀’, ‘~이즘’ 등의 접미사나 단어가 다른 단어 뒤에 붙어서 만들어진 신조어도 꽤 많다. 이 가운데 ‘~족’은 ‘어떤 일을 즐겨 하거나 또는 그 일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환승족’(수도권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 환승할인이 되는 버스만 골라 타는 사람), ‘멀티잡스족’(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들쭉날쭉한 부동산 정책이 빚어낸 ‘까까족’이란 단어도 있다. ‘집을 살까 말까 망설이며 이것저것 재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증후군’은 ‘어떤 자극에 대해 정상 범위를 지나친 반응’을 뜻하지만 최근엔 ‘휴대전화중독증후군’(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한 상태), ‘동창회증후군’(동창회에 나갔던 아내가 자신보다 못했던 친구가 잘사는 모습을 본 후 남편을 원망하는 현상) 등처럼 우리 사회의 특정 현상을 병증에 빗대어 사용되기도 한다.
‘~남/~녀’는 ‘느끼남’(생김새나 말투, 행동 등이 너무 느물거리는 남자), ‘짝벌남’(지하철 등에서 다리를 짝 벌리고 앉는 남자), ‘된장녀’, ‘개똥녀’ 등처럼 특정인이나 특정 행동을 비하하는 뜻을 담은 경우가 많다. 우리의 전통 ‘장’이 특정 인간형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 된장녀에서 유추해 만든 신조어인 ‘고추장남’은 멋을 부릴 줄 모르고 사소한 것에도 돈을 아끼는 남자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귀차니즘’(귀찮은 일을 몹시 싫어하는 태도나 사고방식), ‘언니즘’(언니주의·오빠, 누나, 형, 언니 등을 모두 언니라고 부르자는 주장)의 경우처럼 특정 단어와 주장을 뜻하는 ‘이즘(ism)’이 붙어 만들어진 신조어들도 적지 않다.
신조어에 대해 이 정도 ‘공부’했으면 이제 다시 글 앞머리의 ‘젊은 여성의 얘기’를 한번 ‘해석’해보자. 다음과 비슷하게 뜻풀이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온돌족’(변화를 거부하고 이전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제 길거리에서 잘생기고 인기 있는 남자를 봐서 즐거운 감상을 했잖아. 그런데 고가 브랜드의 상품을 무조건적으로 선호하는 사람인지 온몸을 고가 브랜드로 치장한 거야. 그래서 갈수록 비호감일 것 같더라고. 내가 사치를 즐기고 허영이 많은 여자는 아니잖아. 하여간 그래서 비웃음 한번 날려주고 내 갈 길 갔지.”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