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경찰에 적발된 이른바 조폭-장애인단체 등 ‘연합세력’의 건설 이권 갈취사건. 지난 10월 29일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 2반은 건설사를 협박해 아파트 건설현장 경비계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자릿세 등을 갈취한 혐의(공동공갈)로 조직폭력배 8명과 장애인단체 회원 2명 등 10명을 구속하고 5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의 ‘동거’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지난 4월 초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검단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인테리어 업체들을 괴롭히고 자릿세를 받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기존 조폭 관련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조폭들의 다툼은 주로 폭력 사태를 유발하는 게 보편적이었고 하나의 조직이 움직이면 경찰 수사망에 포착돼 어렵지 않게 이들을 검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조직폭력단의 움직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아서 인테리어 업자들의 피해 증언을 토대로 수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조직폭력단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10개 파의 15명이 합류해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서울, 목포, 수원, 군산 등지에서 활동하던 조폭들 가운데 서로 평소 알고 지내던 각지의 폭력조직원 1~2명씩이 함께 연합해 팀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장애인을 끌어들이고 경호업체와 손을 잡는 방법으로 이권을 챙겨왔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렇게 꾸려진 연합세력은 지난 2월부터 인천 구월동 L, H 아파트 건설현장 사무실에 나타나 실력 행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구월동에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인 9200여 세대가 입주하는 건설현장이었다. 이러한 노다지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던 이들 세력은 조직폭력배와 장애인을 동원해 위력을 과시하며 건설사로 하여금 자신들과 연계돼 있는 경비업체와 강제로 계약을 체결토록 했다.
이들은 예전과는 다르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건설사 관계자의 집에까지 쫓아다니면서 반복적으로 괴롭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들이 추천하는 경호업체와 계약을 해달라고 요구하며 상대방이 지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압박했던 것.
이들은 이러한 방법 말고도 장애인들을 동원해 현장사무소와 정문에서 시위를 하도록 하는 수법도 썼다. 건설현장 인부들은 인부들 나름대로 특정 시간 내에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입장이기에 정문의 시위대들 때문에 공사 차량이 원활하게 통과하지 못하고 공사기일이 늦춰지자 현장사무실에 가서 항의를 했다. 결국 장애인들의 시위로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질 것에 대한 부담감과 끈질긴 괴롭힘, 공사장 인부들의 압박을 받은 건설사 관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해당 경호업체와 경비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경비계약이 체결되면 건설현장은 곧바로 이들의 ‘구역’이 돼버렸다. 이들은 자신들과 손잡은 경호업체로 하여금 직원 30여 명을 동원해 현장 출입문에서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도록 했다. 공사 현장의 모든 출입이 이들의 손에 좌우되게 된 것이다.
그런 다음 이들은 돈이 나올 수 있는 인테리어 업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전에 자신들에게 ‘보호비’를 상납한 인테리어 업체는 그냥 통과시켰지만 그렇지 않은 개인사업자나 신규 인테리어 업체에는 자릿세와 보호비, 예치금 등을 내야 한다고 협박했다. 만약 내지 않을 경우에는 공사현장에 차량이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를 했다.
이러한 횡포 속에서도 인테리어 업자들이 영업 방해로 고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준공검사 전에 시범적으로 인테리어 시공을 하는 이른바 ‘구경하는 집’ 공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었다. 인테리어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해진 시기를 놓치게 되면 사전점검 때 입주자들과 계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구경하는 집’을 지어야 했고 공사차량이 못 들어오면 시간에 맞춰 공사 마무리를 할 수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들 연합세력은 이러한 업체의 약점 등을 이용해 자릿세, 경호비 등의 명목으로 구월동 재건축 아파트 공사에서 1650만 원을 갈취하는 등 최근까지 같은 방법으로 인천 서창동 I 아파트, 검단 D 아파트, 불로동 K 아파트, 서울 역삼동 H 아파트, 구로 G 아파트 등 9개 건설현장에서 모두 8억 2000여만 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철거, 새시 설치, 인테리어 등 각종 이권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소규모 단위로는 다른 세력과의 경쟁에서 이권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폭력조직, 장애인단체, 경비업체 등을 망라한 연합세력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연합세력은 평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서로 유대관계를 맺고 이권을 위해 손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현장에서 폭력조직원이 직접 철거나 새시 등의 사업을 운영하는가 하면 건물을 철거할 때 장애인단체를 끌어들여 돈을 갈취하는 등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를 이어왔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조직이 ‘모든 현장은 우리가 접수한다’, ‘곰(경찰)이 뜨면 휠체어 탄 장애인만 앞세운다’, ‘깡패는 깡패가, 장애인은 장애인이 막는다’, ‘수사기관에 정보를 유출하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작업한다’는 등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놓고 범행을 저질러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들의 행동강령이 문서화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조직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강령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강령아래 폭력조직과 장애인단체, 경호업체가 이권을 위해 손잡은 제2, 제3의 연합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인천지역 대형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또 다른 피해사실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들에 의해 발생한 피해가 결과적으로 고스란히 입주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테리어 업체가 이들에게 돈을 갈취당할 경우 그 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결국 인테리어비를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수법으로 인해 일부 현장의 인테리어비가 50% 정도 비싸게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검거를 통해 건설현장에서의 ‘가격 거품’이 조금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