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학자 천정환 박사(왼쪽), 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정승재 회장 | ||
수형자의 ‘섹스권’은 최근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도 거론될 만큼 교정학자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주제다. 과연 국내 교도소에서도 부부의 성생활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게 되는 걸까.
범죄학자 천정환 박사(50)는 지난 11월 16일 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가 주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 “수형자에게도 투표권뿐만 아니라 성생활권 등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이색 주장은 당시 토론장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의 보편적 국민정서로 보자면 ‘거부감’을 주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범죄자의 교정시설 수용에 대해 ‘죄에 대한 응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에 수형자가 교도소에서 일반 사회와 같은 성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가족을 가진 모범수형자들을 위해 부부접견제도의 하나로 ‘부부만남의 집’을 1999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13평 규모의 단독주택을 교도소 내에 설치해 일정 요건을 갖춘 수형자와 그 배우자나 부모, 가족이 1박2일 동안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한 것. 안양·대구·대전·광주교도소를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 10개의 교도소에서 부부만남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천 박사는 이 같은 시설들이 수형자들의 섹스권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법무부 자료를 보면 2005년의 교도소 수용인원이 5만여 명이었는데 이들 가운데 300여 명에게만 부부만남의 집 이용이 허락됐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배우자가 아니라 부모나 자녀를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결국 부부만남의 집을 이용한 인원이 교정시설에 수용된 전체 인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수형자의 섹스권과는 무관한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 박사는 “수형자와 그 배우자의 성생활권을 박탈하는 국가의 잘못된 교정정책 때문에 행복추구권이 정면으로 침해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헌법상의 원칙인 혼인 순결조항에 따라 배우자가 수감돼 있는 상황에서 간통과 같은 불법적 방법 말고는 성생활을 할 수 없기에 섹스권 박탈은 수형자와 그 배우자에 대한 국가의 간접적 성고문이며 성폭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정승재 회장(45)은 “기본적으로 수형자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섹스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를 한다”고 말했다. 교도소 내에서 성욕의 제약으로 인해 동성애, 계간 등이 성행하고 있는데 섹스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
하지만 정 회장은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갑작스럽게 제도를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순차적으로 섹스권에 대한 법 적용의 테두리를 넓혀 나가는 것이 현재 국내 상황에 적합하다는 것.
아직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교도소 수형자들이 섹스권과 흡연권, 참정권 등에 대해 제약을 받는 것을 ‘응징’ 차원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 이러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 수형자가 사회에서와 비슷한 권리를 누린다면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정 회장의 지적이다. 따라서 가정이 있는 모범수 위주로 부부간의 섹스권을 우선 인정해주면서 부부끼리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안정적인 수감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수형자의 섹스권은 성폭력범죄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하게 제한돼야 하며 이러한 생각이 대부분 교정학자들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16일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고려대 법학과 이상돈 교수도 “수형자의 성생활권을 존중하지만 성폭력범죄 등 가정파괴범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천 박사는 “사형수를 포함해서 모든 수형자의 섹스권이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식욕과 성욕은 가장 기초적인 욕망으로 섹스권도 헌법에서 보장한 행복추구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수형자와 사형수도 최소한의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기에 섹스권을 제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천 박사는 매주 토요일 오후 교도소 내에서 수형자가 사회의 배우자나 애인과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법적으로 제도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수형자에게 성생활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규정들 역시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적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천 박사에 따르면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 수면욕을 인정해 수형시설에서 식사를 주고 잠을 자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욕에 대해서도 성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중론자’인 정 회장은 식욕과 성욕은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지만 다른 테두리의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으면 죽음과 곧바로 연계되지만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 회장은 교도소 내에서 신체적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범죄 억제력을 키울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교도소 내부와 일반 사회가 별반 차이가 없으면 범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모든 수형자들에게 섹스권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정 회장은 수형자의 섹스권 등 권리를 인정하는 문제는 먼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 공론화과정을 거쳐 법제화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한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부부만남의 집의 수용한계로 인해 하루에 한 가정밖에 신청을 못하는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부부만남의 집을 전국의 교도소로 확장하고 대상자도 점차적으로 늘리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법감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현행 제도의 개선을 통해 수형자들의 성생활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수형자의 성생활권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김재범 씨(34·회사원)는 “부부만남의 집이 있다면 그 제도를 개선시키면서 모범수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 낫지 중범죄자들 모두에게 성생활권을 확산하는 것은 반대”라며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교도소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주영 씨(여·31·시민단체 활동가)는 “교도소는 수형자들을 가두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끔 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며 “죄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하지만 가정을 지킬 수 있게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