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력 대선후보 6인 중 불교 신자가 없어 세 확산을 위해 불심 잡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아래는 왼쪽부터 정동영, 이회창, 이명박. | ||
그렇다면 대선후보 개개인의 진짜 종교는 과연 무엇일까. 현재 대선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유력 후보 6인의 종교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우선 불교 신앙을 지닌 후보가 없고 가톨릭 신자들(이회창·정동영·문국현·권영길)의 경합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반면 기독교 신자는 단 한 명(이명박)뿐이어서 상대적으로 세 결집에 유리한 입장이다. 불교 신앙을 지닌 유력 후보가 없다는 점은 뒤집어보자면 이번 선거에서 ‘불심’을 놓고 뜨거운 격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대선후보 중에서 종교와 관련된 구설수에 가장 많이 오른 사람은 아마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일 것이다. 그는 강남의 대표적 교회 중 하나인 신사동 소망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있으며 서울시장 재직 기간에도 주요 교회 초청 행사에 단골로 참석해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내 보였다. 소망교회에는 이 후보의 부인인 김윤옥 씨와 형 이상득 국회부의장도 함께 다니고 있다.
이 후보에게 기독교는 모태신앙이다. 어머니 채태원 여사(64년 작고)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가 매일 새벽 4시에 다섯 형제들을 깨워 기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 이 후보도 자신의 저서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에서 “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이 기독교인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평소 이 후보는 “나를 지켜준 것은 기독교 신앙이며 그 신앙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지나친 ‘신심’이 종종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2004년 ‘서울시 봉헌’ 발언이 대표적인 예.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후보는 이 발언으로 다른 종교인들의 거센 반발을 사는 등 곤욕을 치렀다.
최근 이 후보는 또 다시 종교와 관련된 논란에 휩싸였다. 교회 권사인 부인 김윤옥 씨가 불교 법회에 참석해 ‘연화심’이라는 법명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기독교 행사에 참석한 이 후보가 이를 부인하면서 ‘법명 거짓말 논란’이 불거졌던 것. 한나라당 측은 “김윤옥 씨가 정식으로 법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고, 그러한 사정을 설명하던 이 후보의 말이 와전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파문은 유력 종교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대선주자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선친을 비롯해 자신과 자녀 등 3대가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울라프. 부인 한인옥 씨(세례명 세실리아)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집 안에서는 자녀들을 세례명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이 후보의 개인 승용차에는 항상 성경이 놓여 있다고 한다.
대선 레이스에 가장 늦게 뛰어든 이 후보는 종교계 행보보다는 민심 탐방에 더욱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후보는 11월 14일 ‘민심대장정’ 길에 부산 범어사에 들러 ‘대성’ 주지스님에게 ‘정치적 도움’을 요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범어사는 이 후보가 지난 2002년 대선 때도 방문해 당시 이슈가 됐던 천성산 터널에 대한 공약을 밝힌 곳이기도 하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부인 한 씨는 이 후보를 도와 전국 사찰을 돌며 적극적으로 불심 잡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한 씨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도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도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다윗. 정 후보는 원래 무교였으나 가톨릭 신자인 부인 민혜경 씨(세례명 엘리자벳)와 결혼한 뒤 입교했다. 요즘은 선거 때라 뜸하지만 평소 가톨릭이 주관하는 행사에 자주 참석할 정도로 신심이 깊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과거 서울 서초동에 거주할 때엔 양재·서초·강남 성당 세 곳을 돌며 미사를 드렸지만 홍은동으로 이사한 뒤부턴 인근 성당에 다니고 있다. 특히 부인 민 씨는 평소 성당의 봉사활동에 열심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1월 5일 서울교회 강연회에 참석한 정 후보는 “장가를 잘 갔다고 생각한다. 장가를 간 다음날 새벽부터 만 12년 동안인 지금까지 아내는 새벽마다 눈물의 미사를 드려왔다”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밝혀 시선을 끌었다. 정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서 아침마다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등 기독교 표심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 후보는 불교계와도 인연이 깊은 편이다. 지난 2005년 말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나 정치일선에 복귀할 당시엔 전남 백양사에 4일간 머물며 정국구상을 가다듬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선 불교계 표심을 잡기 위해서 선대위 ‘어른’으로 백양사 ‘지선’ 스님을 영입했고 16대 국회 불교의원 모임 회장을 맡았던 조성준 전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부인 박수애 씨도 가톨릭 신자다. 문 후보는 원래 기독교 신자였으나 여동생의 영향으로 개종한 경우. 문 후보의 여동생은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평소 성당 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문 후보에게 성당에 다녀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평소 아끼던 동생의 뜻이기에 그후 문 후보는 호기심 반, 여동생을 추억하는 마음 반으로 성당에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다 유한킴벌리 사장 시절에 공장 맞은편에 있는 성당에 다니면서 가톨릭에 귀의를 하게 됐다. 성당을 통해 사회활동도 하면서 영세를 받기 위해 1년 정도 교리공부도 했다고 한다.
문 후보는 “당시에는 교리 공부를 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밝혔다. 현재 문 후보는 각 종교계의 원로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는 등 종교계의 표심을 잡기 위해 뛰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세례명 가롤로)와 부인 강지연 씨(세례명 안젤라) 역시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정동영 후보 부부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가톨릭 신자인 권 후보의 영향 등으로 기독교 성향의 부인 강 씨가 가톨릭을 선택했다고 한다. 평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부부가 함께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후보의 종교계 행보는 미미한 편이다. 교계 지도자들을 방문하기보다는 시민사회단체의 대회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최근 권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종교 목회자들의 납세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종교계로부터 엇갈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감리교 권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과거 한동안 교회에 나가기도 했다. 노환으로 별세한 어머니가 생전에 ‘아들이 교회에 다니길’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반면 부인 김은숙 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법명 진여심)다. 집안에서 불교를 믿어 모태신앙으로 입문했다는 게 이 후보 캠프 관계자의 설명이다. 부인 김 씨는 97년 대선 등 선거 때마다 이 후보를 대신해 각지의 사찰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던 터라 불교계 인맥이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대선에서 조용히 내조 중인 김 씨가 향후 불심을 잡기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