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6일 ‘태풍의 핵’으로 지목된 김경준 씨(41·구속)가 국내로 송환된 이후 검찰 주변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다. 수사 결과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검찰의 행보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BBK 사건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은 서초동 검찰 청사로 대책팀까지 파견하는 등 김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당 전체가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각 언론도 대선 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이번 사건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검찰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칼자루를 쥔 검찰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자 사건과 관련해서는 일체 언급을 삼가고 있어 겉으로는 별 무리 없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검찰도 ‘좌불안석’인 것으로 전해진다. 워낙 민감한 사건이다 보니 수사팀 구성이나 수사 마무리 예상 시점 등을 놓고서도 아주 복잡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 항소 법원에서 김 씨의 국내 송환이 결정된 후 검찰 내에서는 수사팀 구성 문제를 놓고 상당히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 부서에서 수사를 주도적으로 담당할 것인지 아니면 특별 수사팀을 구성할 것인지를 놓고 검찰 내부 반응이 엇갈렸던 것이다.
애초부터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윤곽이 잡혔으나 각각 다른 부서가 사건을 나눠 맡아 차분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등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수사팀 구성 방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자 일부 검찰 수뇌부 인사는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들에게 자문까지 구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대선 여론조사 1위를 줄곧 지켜온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사건의 연관성 여부를 수사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감, 그렇다고 김 씨 개인 범죄 입증에만 매달려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하는 쪽으로 대세가 모아졌다고 한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고소·고발됐던 ‘다스의 주식 차명 보유 의혹과 다스의 BBK 투자사기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혹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금융조사1부 어느 한 쪽으로 수사를 일임하는 것 자체가 다소 무리라는 결론에 이른 셈이다.
결국 특수1부장을 주임검사로 사실상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는 방안과 금융조사1부장을 주임검사로 특수부 검사를 파견해 병행 수사하는 두 방안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검찰은 고민 끝에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을 수사했던 특수1부장을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최재경 부장검사와 특수1부 소속 검사들이 골격을 이루고 3차장 산하 검사들을 보강하는 체제다.
그러나 이 특별수사팀을 놓고 검찰 내에서는 다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금융조사부 소속 검사들이 합류하긴 했지만 지난 8월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도 다스를 압수수색했던 수사 인력을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 자체가 일부 정치권이나 여론 등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
실제 일부 일선 검사들은 “말이 특수수사팀이지 실질적으로는 특수1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검찰 입장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는 검찰이 의도적으로 이 후보 쪽에 수사의 포커스를 집중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를 털어놓았다는 후문이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대선 후보 등록일인 11월 25일 전에 검찰 수사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검찰 내부에서 논란을 불렀던 대목이다.
지난 11월 2일 법무부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경준 씨 사건을 11월 25일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문병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정 장관은 “검찰에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한 바 있다. 이 같은 정 장관의 발언을 두고 검찰 일각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감안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실제로 김 씨가 갖고 있던 이면계약서 원본의 제출이 늦어지는 등 ‘변수’가 발생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예상했던 시기까지 수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정 장관의 ‘약속’ 자체가 무리였다는 점은 검찰 수뇌부 역시 어느 정도 ‘공감’하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 지난 11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간 수사 발표가 후보 등록 이전에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배경에도 법무부 장관의 언급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게 검찰 안팎의 해석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 역시 “(애초) 검찰도 조기종결 입장이었지만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 후보 관련 사건의 수사 종료 시점을 경선 직전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수사는 언제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김 씨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또 이 후보의 협조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며 “법무부 장관 입장에서는 늦어도 대선 후보 등록 전에 진실을 규명한다는 측면에서 수사 마무리 시점을 언급했을 수도 있으나 어쨌든 수사 종료 시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까닭에 검찰 안팎으로 혼선을 가져다준 책임도 있다”고 밝혔다. 수사 종료 시점을 놓고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만약 수사 결과 이 후보에 대한 일부 혐의점은 있지만 기소가 불가능할 정도라면 아예 수사 발표가 대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검찰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 후보에게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 한 결국 검찰이 이번 수사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일부 검찰 관계자들은 BBK 사건을 두고 “아무리 잘해도 본전도 못 건지는 수사”라는 말을 하곤 한다.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놓고 워낙 첨예하게 대립해온 터라 어느 일방에 유리한 수사 발표가 이뤄질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실을 드러내되 가장 후유증이 적은 방안을 찾는 게 검찰이 당면한 가장 큰 고민거리일 수도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