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공방이 재차 불거질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 스스로도 사건의 ‘3%’를 복원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듯이 모든 의혹이 명쾌하게 풀린 것은 아니다. 실체적 진실에 완벽하게 접근하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일단 검찰은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BBK의 실질 소유 관계를 입증할 이면계약서의 위조 여부 그리고 다스의 지분 소유 및 다스의 BBK 투자 과정 등 모든 핵심 의혹에 대해서 증거에 따라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사 결과 중 일부는 김 씨 주장에 모순점이 있거나 진술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을 역으로 받아치는 논리 중심으로 구성된 측면도 있다. 더구나 증거가 없거나 결과를 내기 애매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을 유보하거나 고려 대상에서조차 제외했다는 점에서 개운치만은 않다.
특히 검찰이 방대한 계좌 추적과 BBK 관련 인사들의 진술 등으로 확보한 증거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거 이 후보의 언론 인터뷰와 명함 등 외부 ‘물증’을 수사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한 점은 수사 결과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린 대목이다. 더구나 의혹의 중심인 이 후보가 두 차례의 서면 조사 말고는 수사 선상에서 비켜서 있었다는 점도 분명 아킬레스건이다. 검찰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점들을 되짚어봤다.
BBK는 누구 회사?
검찰이 이 후보와 BBK가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음에도 실제 소유자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 후보가 BBK 주식을 소유한 흔적이 없고, 김 씨가 제출한 한글 이면계약서 역시 논리적·형식적으로 하자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BBK는 이 후보와 무관한 회사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결론의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김 씨가 미국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조사 과정에서 “BBK는 본인이 지분을 100% 가진 회사이며 이 후보는 지분이 없다”는 진술을 했다고도 밝혔다.
또한 김 씨가 2001년 2월 EBK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EBK증권중개는 LKe뱅크의 자회사로 편입하되, BBK는 계속 자신의 지분 100%를 유지한다’는 사업구상을 기재한 자필 메모까지 입수해 공개했다.
반면 검찰은 이 후보가 BBK를 자신의 회사라고 말했던 언론 인터뷰나 이 후보의 명함 등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BBK가 김 씨 소유라는 점을 여러 증거를 통해 확인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렇다고 검찰이 BBK 주식 소유 분포나 이면 계약서상의 모순점에 근거해 이 후보와 BBK의 관계를 ‘단언’한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주식 소유 외에 다른 우회적인 방법으로 BBK와 이 후보가 ‘이해관계’를 맺고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 씨가 처음에 이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 시점인 2000년 2월 21일 당시 e캐피탈이 BBK주식 98.4%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후보가 BBK주식 61만 주(100%)를 LKe뱅크(김경준)에게 49억 9999만 5000원에 매각한다’는 계약서 내용에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입증했다.
분명 검찰의 시각대로 주식 소유 관계를 계약서 내용과 비교해 보면, 계약서 작성 당시 주식 소유자도 아닌 이 후보가 주식을 매매한다는 계약서의 내용은 상식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뒤늦게 문제의 이면계약서를 작성한 시점이 2000년이 아니라 그 이듬해라고 진술을 바꿨다).
그러나 김 씨 측 오재원 변호사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씨가 말한 ‘소유’는 사실상 이해관계가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한 점 역시 그저 지나칠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결국 검찰이 파악한 주주 명부 등 구체적인 자료로는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소유 관계가 있었다는 게 김 씨 측의 주장인 셈. 검찰의 전언대로라면 김 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해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오 변호사에 따르면 지분 소유를 떠나 이해관계가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BBK 소유와 관련, 검찰에서 언급한 김 씨의 진술 내용과 검찰 수사 결과 발표 후 변호인을 통해 알려진 김 씨의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개운치 않은 부분이다.
검찰은 김 씨가 BBK가 자신의 소유라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 씨 측 오 변호사는 김 씨가 BBK를 자기 소유라고 인정했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조서상의 한두 구절을 보고 검찰이 (김 씨가 BBK를 소유했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전체적인 취지가 그렇지는 않다”며 반박한 바 있다.
▲ <일요신문> 2000년 11월 12일자에 실린 이명박 후보의 인터뷰 기사. 당시 이 후보는 BBK에 대해서 자신이 세운 회사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 ||
다스의 돈 흐름에 대한 수사 결과 도 석연치 않은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다른 혐의와는 달리 소극적인 결론이 났다. 검찰은 이 후보가 다스를 소유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다스와 관련된 의혹은 여전히 ‘잠재적 뇌관’으로 지적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도곡동 땅 매각대금 중 17억 9200만 원이 다스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8월 도곡동 땅 지분 중 이 후보의 형 이상은 씨의 지분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낸 뒤 한 걸음 진전을 본 셈이다.
이번 수사에서 다스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 17억9200만 원은 이 상은 씨 지분의 매각 대금 중 일부. 이 씨의 지분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이전의 검찰 수사 내용에 따르면 이 씨가 제3자의 돈을 다스에 투자한 것이 된다.
그러나 검찰은 다스에 투자된 돈이 최종적으로 이 후보 쪽으로 유입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만 발표했을 뿐 이 씨의 도곡동 땅 지분을 실제로 소유했던 제3자가 누구인지, 또 다스로부터 이 제3자에게 자금이 흘러들어간 흔적이 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도곡동 땅의 이 씨 지분을 제3자 것으로 애매모호하게 규정했듯 다스로 유입된 제3자 지분의 땅 매각 대금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역시 물음표로 남겨둔 셈이다.
다스 190억 투자 여력?
다스가 2000년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할 당시 자금의 여력이 있었다고 검찰이 밝힌 점에 대해서도 일부 이견이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다스가 투자한 190억 원의 출처를 거래업체에서 받은 납품 대금 등 회사 자금이라고 규정했다.
다스의 감사보고서 등을 보면 2000년 기준 다스의 매출 총이익은 82억 원. 1700여억 원의 매출액에 비하면 이익률이 낮은 편이다. 이마저도 세금과 급여 등을 제외하면 당기순이익은 30여억 원에 불과했다. 2000년 말까지의 이익잉여금은 96억 원. 당기순이익이 아닌 매출 총이익에 이익잉여금까지 합하더라도 190억 원이라는 투자금과는 차이가 크다.
더구나 이 이익잉여금은 기업발전적립금, 기업합리화적립금에 29억 원만 사용됐고, 나머지는 다음해로 이월됐다. 오히려 다스가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한 그 해에는 건설자산 취득, 기계장치와 공기구비품 구입만 130억 원가량을 썼다.
당시 회사 내부시설 확충 등으로 많은 회사 예산을 지출한 상황에서 과연 다스에 얼마나 투자 여력이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경준은 설득의 귀재?
다스의 BBK 투자과정에 대한 검찰의 설명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검찰은 다스가 김 씨의 투자 설득을 듣고 이사회 등 내부 절차를 거쳐 투자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스가 처음으로 BBK를 통해 15억 원 상당의 뮤추얼펀드를 매입한 시점인 2000년 4월에는 이미 김 씨와 이 후보가 LKe뱅크를 공동설립해서 함께 사업을 하고 있던 때다. 사무실도 같은 곳을 쓰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 중 유독 김 씨만이 이 후보의 친형과 처남의 회사인 다스에 투자 설득을 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다스의 경우는 아니지만 지난 2001년 BBK에 50억 원을 투자했다가 떼인 (주)심텍은 김 씨와 이 후보를 고소하면서 이 후보 소유 부동산에 가압류 신청을 한 바 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텍의 고소장에는 이 후보가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또다른 투자금 존재?
이 후보가 미국 LA 연방법원을 통해 김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마다 금액이 달라졌던 부분도 이번 수사에서 해명되지 않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아예 수사 범위에서 빠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실제 이 후보는 서면 조사에서도 구체적인 손해 금액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후보가 BBK 주가 조작으로 피해를 본 액수는 35억 원 선. LKe뱅크에 출자한 30억 원과 하나은행이 BBK에 투자한 풋옵션 5억 원을 변제한 액수를 합친 것이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 및 이번 대선 후보 등록 당시 공직자 재산 신고 때마다 LKe뱅크의 재산 가치를 30억 원으로 신고했다.
문제는 미국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공개된 반환 청구액수가 35억 원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다. 실제 이 후보가 여섯 번의 소장 제출을 통해 밝힌 청구액은 최소 65억 원에서 최대 170억 원까지다. 35억 원과 비교해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일곱 배에 이르는 액수다.
이처럼 청구액수가 이 후보의 ‘알려진 피해액’과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