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 해병대 초병을 차로 치고 총기를 탈취한 용의자가 12일 용산경찰서에서 인천지방경찰청으로 이첩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조 씨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찰 또한 이와 유사한 ‘결론’을 내린 상황이다. 하지만 그의 치밀한 도피과정과 경찰의 수사를 교란시킨 수법 등을 보면 우발적 범행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총기 탈취 사건 미스터리를 뒤쫓아가봤다.
우선 의문을 사는 것은 ‘충동적 범행’이었다는 조 씨의 주장이다. 우발적으로 강도 범행을 위해 총기를 탈취하려 한 것이지 사전 계획은 전혀 없었다는 것. 경찰 조사 과정에서 조 씨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횡설수설하는 등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 ‘우울증에 의한 충동적 범행’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하지만 그의 범행 수법과 도주 과정을 보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듯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조 씨는 이미 10월 초 범행에 사용한 코란도 차량을 훔쳤고 이 차량에 ‘대리운전’ 스티커를 달고 다녔다. 더욱이 조 씨가 범행 장소로 선택한 강화군 초지리 황산도 어시장 인근은 범행 후 검문을 피해 강화군을 신속하게 벗어나기 쉬운 곳이다. 조 씨는 범행 후 신속하게 대리운전 스티커를 제거하고 훔친 번호판을 변조하는 등 지능범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조 씨의 도주 경로 인근에 그의 작업실이 있던 점, 범행 차량을 신속하게 소각시킨 점 등도 이번 사건이 사전에 계획된 범죄일 수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조 씨는 총기를 탈취한 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 들러 범행 차량의 보조범퍼를 떼어내고 총과 탄통을 작업실에 있는 종이박스에 숨겨 놓았다. 범행에 사용한 회칼은 신문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차량은 작업실에서 5㎞ 떨어진 화성시 장안면 풍무교 인근 논바닥으로 몰고 가 불태웠다. 그 뒤 자신의 작업장에 돌아와 미리 세워둔 다른 코란도 차량에 총기 등을 싣고 도피행각을 벌였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과연 이처럼 체계적으로 ‘뒷수습’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범행 현장에 모자, 안경 등을 흘리고 갔지만 지문이 전혀 남지 않았던 점, 멀리 부산에서 ‘자수 의향’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점 등도 조 씨가 치밀한 계획 아래 범행과 도피 행각을 벌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조 씨가 이 편지에서 글씨를 왼손으로 쓰고 범행 현장에 남은 자신의 피를 타인의 피라고 주장한 것은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 총기탈취 용의자를 체포한 장광 용산경찰서장이 검거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
조 씨가 이번 사건 후 서울 종로의 한 상점에서 귀금속을 판 사실은 확인됐다. 하지만 이 귀금속의 원래 조 씨의 것인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사업 실패로 월세를 8개월이나 못 내고 있던 조 씨가 1100만 원어치가 넘는 귀금속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 귀금속의 출처에 대한 보다 면밀한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게다가 조 씨가 사건 직후 귀금속을 서둘러 판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싹트고 있다. 물론 조 씨의 주장처럼 자수하기 전에 신변 정리를 위해 귀금속을 판 것일 수도 있지만 도피생활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경찰관계자도 “아마도 조 씨가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귀금속을 판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조 씨의 집에서 발견된 엽총과 전기충격기, 조 씨의 경찰 진술 내용 등을 놓고 또 다른 범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석세공업을 하는 만큼 호신용으로 엽총과 전기충격기, 가스총 등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조 씨가 ‘서든어택’ 등의 살상게임을 즐겨온 데다 평소 칼을 휴대하고 다닌 점, 스스로도 강도 행각을 위해 총기를 탈취하려 했다고 밝힌 점, 총기 탈취 뒤에 주도면밀하게 증거인멸을 했던 점 등으로 보아 그가 또 다른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 씨가 경찰 조사 때 주장한 것처럼 지난 1년 동안 칼을 가지고 다녔고 날씨에 따라 우울증이 심해져 범죄 충동이 일어나는 성격 장애를 지니고 있다면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공범의 존재 여부도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수사 상황을 고려할 때 공범은 없으며 단독범행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조 씨의 범행 및 도피 과정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은 그의 후배 K 씨뿐이다. 조 씨는 “범행 당일 차량을 소각한 뒤 혼자 걸어서 작업실로 돌아와 후배 K 씨를 불러 박스 옮기는 작업을 돕도록 한 뒤 돌려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경찰 조사 결과 K 씨는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조 씨가 단독으로 해병대 병사 두 명과 격투를 벌여 총기를 탈취하고 군·경의 검문을 피해 완벽하게 도피까지 했다는 ‘사실’에 대해 석연치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 씨가 왜소한 체구를 지닌 데다 전과조차 없던 점으로 보아 범행 과정에서 최소한 조력자가 있었거나 도피를 도운 제3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