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준의 국내 송환 과정에 모종의 시나리오가 있었던걸까. LA 구치소 수감 동기 신씨의 편지엔 이런 정황이 담겨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 ||
김 씨의 송환에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통합민주신당 측은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게 될 상황.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BBK 사건 관련 여부를 원점에서부터 수사해야 할 특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기획입국설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역시 ‘특검정국’에서 수세적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당초 김 씨의 송환 과정에 모종의 ‘컨트롤 타워’가 있다는 의혹은 그저 소문 수준에서 그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자체 조사와 일부 언론을 통해 미국 LA 구치소에서 김 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동료의 편지가 공개되고, 여당 후보 측 관계자들이 이 동료를 접촉한 일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김 씨 입국 배경에 적잖은 의문이 있다는 흐름으로 바뀐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몇몇 여권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김 씨와 특별 사면 및 형량 협상을 했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김 씨 송환 의혹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검찰 또한 꽤 빠르게 법리 검토 작업까지 끝마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검찰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LA 구치소에 수감됐던 당시 김 씨가 과연 어떤 인물들과 접촉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선 구치소 접견록을 살피는 게 급선무. 하지만 검찰이나 한나라당 측이 과연 김 씨의 구치소 접견 기록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시점에서 기획입국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줄 열쇠를 쥔 인물은 김 씨가 수감됐던 LA 구치소의 같은 방 동료였던 신 아무개 씨다.
국내에서 강도상해 혐의를 받다 지난 97년 미국으로 도주한 신 씨는 지난 2006년 체포돼 김 씨와 같은 방에서 1년간 수감됐다가 지난해 10월 말 국내로 송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단 체포 이후 신 씨의 행보에서부터 적잖은 의문이 발견된다. 특히 구치소 같은 방에 수감된 범죄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순차적인 송환이 이뤄진 점부터가 석연치 않다.
법무부 현황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범죄인 인도 청구에 의한 국내 송환이 1년에 5~8명 정도 선에서 이뤄졌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검거된 적잖은 범죄인 인도 청구 대상자 중 같은 방에 수감됐던 신 씨와 김 씨가, 그것도 대선 직전 한 달 차이를 두고 송환이 결정됐다는 점을 그저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다소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신 씨 송환 당시 가족들이 통보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부분도 미스터리한 점이다.
국내로 송환된 후 신 씨가 지난해 11월 김 씨에게 전달한 편지의 내용도 의문스럽다. 특히 “자네가 ‘큰 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이곳 분위기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적은 내용은 신 씨가 김 씨와 연관된 모종의 계획에 따라 국내로 송환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김 씨의 송환이 순차적으로 이뤄졌을 수 있다는 의혹의 개연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신당 측 인사들이 신 씨와 접촉을 시도한 것도 분명 의문을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신당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고 정동영 당시 후보와 동향인 두 명의 변호사가 국내에서 신 씨와 접촉했고 이 가운데 한 변호사는 무료 변론을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 씨 및 가족들과 접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신 씨를 알게 된 배경과 변론을 자처한 계기에 대해서는 일체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신 씨 외에 김 씨와 LA 구치소에서 함께 수감됐던 또 다른 동료의 입에서 김 씨 국내 송환 과정에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국민일보>는 김 씨와 수감 동료였던 지게타 씨의 녹취 CD를 보도했는데, 여기서 지게타 씨는 “지난해 3월부터 한국 정부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면회를 자주 왔고 김 씨가 자신에게 ‘일이 잘 풀리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거래를 제안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지게타 씨의 증언이 과장되거나 아예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김 씨 기획입국설의 설득력을 더하는 단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 LA 현지와 검찰 주변에서는 신당 측 현직 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 김 씨를 자주 접촉하면서 송환 과정을 주도했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설’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신당 측 인사와 그 측근들은 ‘기획입국설’ 자체에 대해 이명박 특검을 앞두고 벌어지는 ‘물타기’라고 반박하고 있다. 본질이 아닌 사안을 부풀려 특검의 예봉을 피하려는 정치공세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획입국설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밝힌 검찰은 이미 그 전부터 김 씨가 한국으로 송환된 배경을 집중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검찰은 대전구치소에 있던 신 씨를 지리적으로 가까운 성동구치소로 이감 조치했음에도 소환 조사 대신 수사 검사가 직접 은밀하게 구치소를 여러 차례 찾는 ‘트릭’까지 쓰며 한나라당 등이 제기한 의혹의 사실 관계를 대부분 체크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일각에서는 김 씨에 대한 확인 과정만 남았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검찰 주변에서 신당 측 관련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임박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같은 수사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검찰이 자신감을 갖고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 수사를 검찰 조직의 자존심과 연결시켜 보려는 시각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신당 측의 BBK 수사 검사 탄핵 발의, BBK 특검에 반발하는 내부 기류가 수사 속도와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또 한 번 정국을 뒤흔들 만한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검찰의 향후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