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류혁상)는 지난 1월 17일 자신의 범죄를 폭로한 김 아무개 씨(80)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청부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전직 세무공무원 이 아무개 씨(77·구속)를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씨의 지시로 청부살인을 기도한 윤 아무개 씨(54) 등 3명을 살인미수와 범죄수익 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범행 대가를 받도록 도운 노 아무개 씨(33)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전했다.
사건의 주범인 이 씨는 2001년 4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친인척 등 27명의 명의로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이르는 국유지를 불법 취득하고 이를 이용해 국가로부터 부당한 방법으로 거액을 보상받은 혐의로 지난해 기소된 상태. 여기에 최근 청부 살해 혐의까지 드러남으로써 이 씨가 짊어져야 할 죄값이 결코 가볍지 않으리란 게 검찰 측의 시각이다.
마치 ‘봉이 김 선달’처럼 국유지 사기로 일확천금을 꿈꾸던 이 씨가 살인미수 혐의까지 받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검찰이 전하는 살인청부 범행의 전모를 뒤쫓아 가보았다.
사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5월 3일 전남 목포시 용해동에 있는 목포지원 앞. 한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 김 씨는 목발에 의지한 채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그 때 도로 한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김 씨를 들이받았다. 김 씨는 사고로 무릎뼈가 부서지는 등 전치 9주의 중상을 입고 오랫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현재 그는 양쪽 다리를 모두 못 쓰게 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종합보험에 가입된 렌터카를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고는 보험회사를 통해 단순 과실 교통사고로 처리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씨는 단순히 운이 나빠 사고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당한 교통사고는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인 살인 시도였고 그 뒤에는 전직 세무공무원 이 씨와의 끈질긴 악연이 숨어 있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씨와 피해자인 김 씨는 1980년 중반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김 씨는 이 씨가 차명 등으로 보유하고 있던 국유지를 제3자에게 매도하는 일을 중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씨와 민사소송 등 각종 분쟁을 자주 벌이게 됐다는 것. 이러던 가운데 김 씨는 1993년 이 씨의 국유지 불법매각 행위 등을 포착하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광주지검에 제공했고 결국 이 씨는 구속되고 말았다. 두 사람의 기나긴 악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이 씨는 국유지 불법취득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9년 12월 31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하지만 국공유지를 이용한 이 씨의 불법 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잠시 백수생활을 하던 이 씨는 2000년 4월 재정경제부가 ‘불법취득 국유지 특례매각 및 환수보상지침’을 내려 보낸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악용해 제2의 범행을 저질렀다.
원래 재정경제부의 지침은 불법 매각된 국유지인지 모르고 이를 매입한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 이 씨는 불법 매각으로 사실상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국유지 가운데 아직 국가에 환수되지 않은 땅을 자신의 친인척이 실제 매수자인 것처럼 가장한 뒤 특례 매각을 통해 약 190억 원의 환수보상금을 받아 챙겼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김 씨는 2003년 9월경 이 씨의 국유지 불법 특례매각 행위를 중단시키고 처벌해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국가기관에 제출했다. 이에 감사원이 국유지 특례매각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에 착수함으로써 이 씨의 불법 행위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김 씨의 진정으로 인해 이 씨는 또 다시 자신의 범행이 들통 나게 됐던 셈이다.
이 씨로서는 이 같은 김 씨가 곱게 보였을 리 만무. 나중에 검찰 조사과정에서 이 씨는 사사건건 자신의 국유지 사기 행위를 방해하는 김 씨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결국 눈엣가시 같던 김 씨를 ‘응징’하기로 마음먹은 이 씨는 2004년 4월경 평소 토지거래 관계로 알고 지내던 윤 씨에게 ‘김 씨를 살해해주면 현금 5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를 하게 된다. 검찰 관계자는 “주점을 운영하고 있던 윤 씨가 폭력 등 전과가 있는 데다 배짱도 있어 보여 일을 시킬 만한 인물로 이 씨가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부탁’을 받은 윤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인 황 아무개 씨(40)에게 범행에 가담할 것을 제의했고 이에 황 씨는 자신의 고향 후배 정 아무개 씨(34)를 끌어들이게 된다. 이들 세 사람은 교통사고로 위장해 김 씨를 살해할 것을 모의한 뒤 한 모텔에서 합숙까지 하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승용차를 렌트한 후 목포로 이동해 관광객처럼 위장하고 김 씨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감시했다. 그러던 중 사건 당일 오후 황 씨가 홀로 도로를 건너던 김 씨를 발견하고 수신호로 김 씨의 이동 상황을 정 씨 등에게 알려줬다. 정 씨는 이에 따라 승용차를 운전해 김 씨를 들이받고 일반적인 교통사고처럼 감쪽같이 위장했던 것이다.
범행 후 윤 씨는 이 씨에게 사고 사실을 보고한 후 당초 범행 대가로 약속했던 현금 5억 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씨는 김 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대가 지급을 거부했다.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한 윤 씨는 이 씨에게 돈을 계속 요구하며 ‘만약 그 돈을 주지 않으면 모든 사실을 폭로할 테니 함께 교도소에 가자’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보냈다. 결국 이 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시가 3억 원 상당의 토지 48필지를 윤 씨에게 살해 청부의 대가로 넘겨주었다.
검찰이 김 씨 살해 청부 사건을 파악하는 단초가 된 것은 지난해 8월 이 씨의 은신처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한 통의 협박편지였다. 당시 이 씨는 국유지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중 잠적해 광주 시내의 한 주택에 은신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씨는 100박스 정도의 국유지 불법 취득 관련 문서들과 각종 서류들을 은신처에 꼼꼼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이것이 역으로 검찰에게는 이 씨의 모든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문서로 요긴하게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협박편지 하나만으로 범죄를 추적하기는 어려웠다. 단지 협박 내용이 담긴 편지만 존재할 뿐 피해자가 누구인지, 정확한 범행 수법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검찰은 이 씨가 자신을 고발한 김 씨를 대상으로 청부 살해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김 씨는 ‘살해 위협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검찰 측의 질의에 “린치를 당하거나 사적 보복을 당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 씨 자신도 ‘교통사고의 진상’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부 살해 수사가 자칫 난항에 빠질 수도 있던 상황에서 ‘김 씨 사건에 서너 명이 관련돼 있고 범행이 교통사고로 위장됐다’는 제보가 검찰로 들어왔다. 검찰은 전남 지역 교통사고 관련 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2004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파악해냈다. 이후 끈질기게 수사를 벌인 결과 윤 씨 등이 살해 시도를 단순 교통사고로 교묘하게 위장하려 한 정황을 밝혀냈다.
검찰 조사에서 윤 씨 등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이 씨가 지시한 것을 우리들은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살인청부 정황이 밝혀졌음에도 이 씨는 살인청부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처음에 이 씨는 “윤 씨가 먼저 나를 찾아와 눈엣가시 같은 김 씨를 해결하겠다”고 말하기에 “그럼 해봐라”고 했을 뿐이라고 윤 씨 등의 주장을 반박했다고 한다.
또한 그 후엔 “윤 씨가 먼저 일을 벌여놓고 나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며 이전과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관련자 진술과 주변 상황을 모두 고려했을 때 이 씨의 사주에 의한 범행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광주=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