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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 내정자는 앞서 1984년부터 1987년까지 3년간 주한 미대사관 정무 담당 1등서기관으로 일했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의 열기가 드높았던 때다. 당시 그녀의 역할을 보여주는 비화 한 토막.
1985년 5월 일단의 대학생들이 서울 시청 주변에 있던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전두환 정부는 미 대사관 측에 학생들을 압박하기 위해 전기와 수도를 끊고 물리력으로 진압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때 스티븐스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단전과 단수는 인도적 문제이니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한다. 나아가 그녀는 여학생 농성자들을 위해 생리용품 공급을 주선했다.
스티븐스는 이때 연세대 삼민투 위원장으로 배후에서 미 문화원 점거 농성사건에 관여하고 있던 박선원 현 청와대 외교안보비서관(45)을 알게 됐다. 이른바 ‘자주 외교’의 핵심 실세로서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주무르고 있는 박 비서관과 그녀 사이의 인연이 20년이 훨씬 넘는 셈이다. 스티븐스 내정자는 최근 한국 지인에게 미문화원 농성 사건 때 박 비서관이 미국 대사관에 접촉을 시도했는데 그때 처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티븐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얘기다. 1984년 가을, 학생 운동의 본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에는 연일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다. 학생들의 농성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정부는 최루탄에만 의지한 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정부와 학교 당국, 학생 사이에 대화는 단절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스티븐스는 한국 정부의 불만 표시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학생회관을 찾아 학생 운동 지도부와 면담했다. 당시로서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스티븐스는 그 후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부산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당초 막 초짜 딱지를 뗀 여성 외교관에게 정치를 담당시키는 데 대해 무척 망설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간부들의 우려를 불식하고 민주화 현장을 누비면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가 김대중, 김영상, 김종필 등 이른바 ‘3김’(金)을 비롯한 재야인사들 뿐 아니라 학생, 종교인, 학계인사 등과 폭 넓게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한국말 구사 능력과 함께 한국에 대한 애정 덕분이었다.
스티븐스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그로부터도 오래전인 1975년 3월이다. 그녀는 미국 프레스콧 대학을 졸업한 뒤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예산의 예산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했다. 그녀는 이 곳에서 2년 동안 하루에 두 시간씩 영어를 가르쳤다. 금발머리의 장신인 스티븐스의 일거수일투족은 단연 시골마을에서 화제였다.
예산중학에 남아 있는 공무원 인사 기록 카드에 나타난 그녀의 이름은 ‘심은경’ 본관은 미국의 ‘Arizona’(애리조나)였다. 그녀에게서 영어를 배웠던 제자들은 첫 시간에 서툰 한국어로 인사한 뒤 칠판에 ‘심은경’이라고 또박또박 쓰던 그녀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말은 상당한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한국에 대한 인연은 이것 뿐 아니다. 1978년 국무부에 들어간 그녀는 워싱턴에서 한국의 한 언론사에 있었던 한국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스티븐스는 지금도 스스로 김치를 담아 먹으며 워싱턴 외곽에 있는 애넌데일이라는 한인 상가 밀집촌에 종종 나타나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함께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애넌데일의 한 한국인 상점주인은 현지 한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븐스가 저녁 늦게 평범한 점퍼 차림으로 찾아와 한국식으로 만든 여러 가지 빵을 사가기도 한다”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설날에는 떡국을 먹어야지요’라고 인사를 건넬 정도로 한국인을 배려한다”고 말했다.
미국 직업 외교관들은 우리와 달리 소수만이 대사가 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대사가 되지 못하고 은퇴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직업 외교관들에게 대사 자리는 꿈이다. 스티븐스가 미국 직업 외교관의 꿈인 대사, 그것도 그녀가 사랑하는 한국 주재 대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가장 직접적 요인은 스티븐스가 1980년대 서울에서 정무 1등 서기관으로 있을 때 경제 담당 1등 서기관으로 일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의 인연이다. 힐은 올 가을이면 한국에 부임한 지 3년이 되는 알렉산더 버시바워 현 대사의 후임으로 자신의 옛 한국 대사관 동료였던 스티븐스를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스티븐스는 코소보 특사를 맡았던 힐 차관보에 이어 국무부 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로 코소보 사태를 다룬바 있다.
또 다른 요인은 힐 차관보와 버시바워 대사의 갈등이다. 힐과 버시바워는 1997년 국무부에 같이 들어온 동기이긴 하지만 버시바워는 힐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화려한 외교관 생활을 지냈다. 힐에게 버시바워는 함부로 다루기 힘든 버거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격이 강한 힐이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스티븐스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는 점에서 한국을 잘 이해하는 스티븐스가 발탁됐다는 관측도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는 나라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들은 대부분 그 나라 말을 익힌다. 하지만 주한 미국 대사들은 한국말을 익히지 않는 것이 당연시 되어 왔다.
스티븐스가 올 하반기에 부임하면 첫 여성 미 대사일 뿐 아니라 처음으로 한국말을 구사하는 대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스의 내정은 단순히 여느 주한 미 대사 내정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스티븐스는 지난 해 말 미국 국무부 송년회 자리에서 주한 대사 내정 사실을 통보받고 1980년 대 한국에서 보냈던 외교관 생활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스티븐스가 한미 관계에 어떠한 업적을 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형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