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의 인사 파동 논란이 커지면서 4월 총선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 김용철 변호사는 이종찬 민정수석을 ‘삼성 떡값’ 인사로 거론하기도 했다. | ||
정치권 관계자들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핵심 인사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또다시 낙마할 경우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본격화되고 있는 4월 총선 정국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출범 초부터 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 넣고 있는 2차 인사파동 속으로 들어가 봤다.
2차 인사파동은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과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이 각각 새 정부 초대 방송통신위원장과 국정원장에 내정되면서 서막이 올랐다.
두 사람의 인선 소식을 접한 야권은 ‘형님 인사’ ‘사정라인 영남 편중’ 논란을 부추기며 공세를 시작했다. 정치 공방전 양상으로 전개되던 두 사람의 인사 논란은 야권의 검증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갖가지 비리 의혹이 쏟아졌고 급기야 사퇴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최 내정자의 경우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아들의 재산세·국민건강보험료 상습 체납 의혹, 97년 대선 여론조사 유출 의혹,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권력유착 행적 등 각종 의혹이 불거져 야권과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사퇴 압박에 직면해 있다. 특히 언론계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6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최 내정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비롯한 대대적인 집단 행동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천명해 최종 인선까지 적잖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는 재산형성 과정과 차남의 병역 면제 의혹, 두 아들의 증여세 포탈 의혹이 불거진 데다 설상가상으로 ‘삼성 떡값’ 수수 의혹까지 터져 2차 인사파동 정국의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제단은 김 내정자에 대해 “평소에 정기적으로 금품을 수수했으며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금품을 전달한 사실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내정자의 경우 두 아들에 대한 증여세 6000여만 원을 내지 않았다는 의혹도 야당 측이 주목하고 있는 문제다. 김 내정자는 2006년 8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 문제가 제기됐을 때 납부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으나 일부분인 126만 원만 납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내정자의 국회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장남(33)은 예금 2억여 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차남(31)은 전세권 2억 2000여만 원 등 모두 2억 6000여만 원을 소유하고 있지만 장남의 경우 2006년부터 2년간 사법연수원에서 받은 수입은 3300여만 원, 차남의 경우 수입은 2004년 우송대·서원대로부터 받은 450만 원뿐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초 7일로 예정된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삼성 떡값’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의 증인 출석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다가 결국 무산됐고 청문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5일 추가로 폭로한 ‘삼성 떡값’ 명단에는 김 내정자 외에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도 포함돼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야권은 떡값 명단이 공개되자 일제히 충격적인 사실이라며 철저한 검증을 촉구하는 한편 당사자들의 자신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권력기관의 수장들이 오랜 기간 재벌로부터 떡값을 받아왔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라고 밝혔고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세 명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직접 사실 진위를 밝히고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들에 대한 임명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사 청문회와는 별도로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검팀도 조만간 김용철 변호사를 불러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특검팀은 김 변호사를 상대로 사제단이 지목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삼성 측이 ‘떡값’을 전달한 시기와 방법, 장소 등 구체적인 로비 정황을 파악할 계획이다. 특검팀은 김 변호사로부터 로비와 관련된 구체적 진술과 증거자료를 확보한 뒤 이종찬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 등 로비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어서 상황에 따라서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나온다. 특검팀은 사제단이 지난해 11월 12일 발표한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국가청렴위원장 등 검찰 전·현직 고위 간부들과 관련된 폭로 내용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기로 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고 민주당은 인사 논란을 ‘제2의 인사파동’으로 몰아가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기는 동시에 총선정국에서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김하중 이만의 변도윤 내정자 등 추가로 인선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고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해서는 ‘사퇴 카드’로 이 대통령과 새 정부를 거세게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무산된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해 불거진 의혹을 파헤치는 동시에 ‘삼성 떡값’ 진위 여부도 철저히 따져 물어 인선 부적격으로 몰고 간다는 방침이다. 아예 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최 내정자에 대해서는 악화되고 있는 여론을 등에 업고 반드시 사퇴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민주당과 야권의 전방위 압박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장관 인사파동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두 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낙마를 요구했지만 이번에도 밀리면 그야말로 2차 인사파동으로 이어져 걷잡을 수 없는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인사 파동이 장기화될 경우 여론이 악화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6일 사제단의 폭로 배경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정면 대응 방침을 정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과거에 보면 마녀사냥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면서 나중에 보면 정치세력과 연계돼 있든지 겉으로는 양심행위를 하면서 속으로 보면 정치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면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새 정부의 온전한 출범을 막는 조직적 세력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국민들 사이에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산된 김 내정자 청문회와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12일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청문회 연기는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김 내정자 청문회를 둘러싼 양당의 기싸움은 치열한 정치공방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주당이 최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17일 진행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안 원내대표는 “최 내정자에 대한 흠집내기를 통한 총선에서의 반사이익을 위해 일정을 늦추자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최재성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인사청문회법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증인 출석 요청 등의 일정을 잡으려면 17일이 그나마 최선”이라면서 “부적절한 인사를 임명해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청문회를 거부, 정당정치를 부인하고 집권당으로서의 책무마저 땅에 내팽개친 한나라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장관 인사 파동에 이어 2차 인사 파동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난 이 대통령이 실타래처럼 꼬여가는 집권 초 정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실험대에 오른 그의 용인술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