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의 설득력엔 진정성이 있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말은 어느 말보다 힘이 세다. | ||
직장인에게 ‘말하기’는 영원한 숙제다. 참고서가 있으면 숙제는 좀 더 수월할 터. 살아있는 참고서라면 금상첨화다. 좀 먼 곳이긴 하지만 여기 흑인 출신의 초짜 정치인에서 말 한마디로 스타덤에 오른 정치인이 있다.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 달변가 빌 클린턴조차 칭찬한, 마음을 움직이는 ‘오바마식’ 말하기 기술. 트렌드 매거진 <앙앙> 이 전하는 말 잘하는 비법을 소개한다.
덴젤 워싱턴을 연상시키는 외모, 말끔한 스타일, 정확한 발음과 시원한 음색. 그가 매력적인 인물임은 6882㎞ 떨어진 우리나라의 작은 TV 모니터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다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일단 그의 연설을 들어보라고. 그의 입을 거치면 미국도 그냥 강대국이 아니라 ‘벽난로 앞에 둘러앉은 가난한 이주민의 나라이자 꿈을 좇는 모든 아이들의 나라’라는 낭만적인 타이틀을 거머쥔다. 그의 연설엔 감동이 있다. 현란한 수사를 사용해 쉼 없이 말을 쏟아내는 달변가가 아니더라도 감동을 주는 말을 할 수 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피치의 힘, 여기엔 특별한 기술이 숨어 있다.
◇단순하게, 더 간결하게!
제대로 말할 것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의 말은 쓸데없이 길어지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사람은 가장 쉬운 언어로도 그 말을 압축해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오바마의 연설은 쉽다. 힐러리보다 더 짧고 더 명료하다. 힐러리가 오바마의 현란한 말솜씨에 대해 “행동이 말보다 중요하다”고 트집을 잡자, 오바마는 이렇게 반박했다. “말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나에겐 꿈이 있다’(킹 목사의 명언)도 말이고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뿐이다’(루스벨트)도 그저 말이다.” 오바마의 한판승. 긴 변명보다 짧은 한마디 문장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한다.
◇당신 자신이 ‘말’이다
말은 인격이다.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이며, 당신이 곧 당신의 말이다. 사람들이 오바마의 말을 믿는 건 그가 이라크 전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주장을 펼쳐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희망을 이야기할 때도 이런 식이다. “어머니는 10대에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떠났다. 나는 이곳, 클리블랜드의 많은 아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의해 길러졌다. 그들은 돈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교육시켰고 희망을 갖게 했다.” 스스로 역경을 이겨낸 자가 역설하는 희망에 대해 누가 감히 의심을 품을까.
◇거듭된 언급으로 강조
오바마 특유의 반복적 언어는 청중의 감성을 자극한다. ‘고대한다’(We can not wait)를 사용한 연설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좋은 직장을 얻을 날을 고대한다” “우리는 건강보험을 고칠 날을 고대한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끝날 날을 고대한다”…. 열 번 이상 반복되는 이 메시지는 듣는 사람에게 더욱 간절함을 느끼게 하고 연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 우린 할 수 있다!”(Yes, we can!) 환호하는 청중. 같은 말도 반복하다보면 정말 그런 것처럼 믿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먹히는 말’을 하기 위해선 듣는 사람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반복해 강조하라.
◇싱싱해야 팔린다
우리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류의 정치인 연설에 하품부터 하는 건 그 틀에 박힌 표현력의 전형성 때문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로 시작되는 자기소개가 지루하고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 소개팅이 김새는 것처럼. 오바마라는 초선의 상원의원을 ‘전국구’의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게 한 건 바로 다음 연설 덕분이다.
“나는 진보적인 미국도 보수적인 미국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나는 백인의 미국, 흑인의 미국, 아시안의 미국, 히스패닉의 미국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저 우리 모두의 미국이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젊은 흑인인 만큼 진보적인 입장으로 흑인 인권 옹호를 운운할 것이라 믿던 사람들의 예상은 시작부터 빗나갔다. 상대의 예상을 깨는 발언, 새로운 표현으로 듣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것. 언어의 연금술사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말하기 전 30초 동안 침묵을 지키는 식의 색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청중의 관심을 유도해볼 것. 유재석이나 김제동 등 개그맨의 언어유희를 관찰하는 것도 표현력을 키우는 한 방법이다.
묘사를 잘하는 사람의 말을 듣다보면 절로 그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만약 오바마처럼 능숙하게 묘사할 수 없다면, 말을 할 때 “상상해보라”는 말을 사용해라. 상상을 요구 받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먹히는 말’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이다. 듣는 사람이 화자의 언어를 통해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시각적인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담긴 말은 어느 말보다 힘이 세다. 학생보다 촌지에 관심 있는 선생의 ‘공부하라’는 말보다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는 선생의 ‘공부하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똑같은 말이라도 그 진심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도 달라지는 법이다. 상대 입장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그를 설득할 것. 단 실컷 단점을 지적한 후에 ‘다 아껴서 하는 말이다’고 덧붙이는 것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 쉽다. 본인의 입장을 설명하기 전에 상대 입장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먼저 밝힐 것.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니, ~하라”던 예수의 성경 말씀이 시공을 초월해 아직까지 ‘먹히는’ 이유다. 본인이 직접 연설문을 쓰고 ‘우리’를 강조하는 오바마의 설득력도 이 진정성에 있다.
◇부메랑처럼 던져라
자신의 주장만 열거하는 것보다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겠어요?” 같은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볼 것. 커뮤니케이션에서 질문은 청자의 반응을 요구하며 반응은 당연히 상호 교류로 이어진다.
듣는 사람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설득 당한다는 불쾌감 대신, 함께 입장을 만들어간다는 데 대해 안도한다. 이때, 상대가 반응할 시간을 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
지난 슈퍼 화요일, 일리노이 주에서 열린 오바마 연설의 핵심은 바로 ‘워싱턴을 바꿔야 한다.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였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질문하고 느긋하게 그 반응을 즐겨라.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라
그 이야기를 청자에게 하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다. 말하고자 하는 배경이 없으면 메시지는 영향력을 잃고 가치는 하락한다. 그 메시지가 듣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인지 타당성을 먼저 조사하고 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한 다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문제에 대해 듣지 않으려 한다. 또 상관이 있더라도 그 이유를 모른다면 말은 하나마나다. 여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오바마를 비롯한 많은 정치가가 연설하기에 앞서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대화의 시간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부지런한 사람이 말도 잘한다.
에디터=이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