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가를 뒤흔들었던 입법로비 의혹을 수사한 검사는 이같이 말했다. ‘야당 표적수사’ 논란으로 수사팀이 정치적 공세에 몰린 상황이 수사에 가장 큰 어려움이 됐다고 토로했다. 철도비리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동수의 새누리당 의원들도 재판에 넘겨졌지만 야당 의원들은 “여당 의원들 혐의가 발견되자 ‘숫자맞추기’를 한 것”이라며 검찰을 더욱 몰아세웠다. 하지만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 관계자들은 “수사를 진행할수록 오히려 이들 의원의 비리 제보만 늘어났다. 사실 현역 의원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재판에 넘겼어야 할 정도로 혐의가 중한 제보도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입법로비 사건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원들의 개인혐의가 상당수 발견된 비리사건이라는 것이다.
지난 8월 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취재진들이 서종예 입법로비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신계륜 의원의 출석을 기다리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수사대상에 오른 세 명의 의원 중 A 의원의 경우, 수사에 착수한 뒤 검찰로 각지의 제보가 밀려들었다. 검찰은 사소한 투서 성격의 제보를 제외하고 구체적인 수사가 가능할 수준의 제보만 4건이 있다고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제보만으로 혐의가 있다, 없다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당연히 수사에 착수했어야 할 정도의 제보들이 쏟아졌다”며 “경험에 비춰 상당한 혐의가 발견될 만한 내용이었지만 수사 확대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A 의원이 생각보다 적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며 “A 의원의 경우 돈을 받고 부탁을 들어주고 하는 데 있어서 별로 부담을 갖지 않는 타입의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도 모르는 새 주변에 ‘단서’를 많이 준 것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B 의원의 경우 비리도 비리지만 ‘여자 문제’와 관련된 정보가 계속 들어왔다고 한다. 일부 제보의 경우 상당히 구체적인데다 상대 여성의 신상정보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서는 여자 문제가 엮인 B 의원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다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B 의원 역시 꽤 로비 첩보가 많이 들어왔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B 의원은 어떤 형식으로든 검찰에 불려갈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여자 문제와 관련한 첩보가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그런 첩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역 의원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그런 것까지 기소내용에 포함시킬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특정 의원에 대한 ‘망신주기’ 식으로 수사가 흐르는 모습이 보일 경우 검찰에 대한 역풍이 일 가능성도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수사가 야당을 겨냥한 ‘표적수사’이자 정치권 경색을 노린 검찰의 사정수사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입법로비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자 조정식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야당탄압저지대책위’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입법로비 혐의로 유일하게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진 김재윤 의원은 검찰 수사에 항의하며 한 달간 옥중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했던 임관혁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사법연수원 26기)이 수사를 맡자 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새정치연합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개인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민성 서울종합예술학교(서종예) 이사장이 구속을 면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에 대한 허위제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이사장이 금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구속을 피하기 위해 검찰과 딜을 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이 같은 주장을 특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김 이사장이 구속을 원치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이 없다”고 했다.
다만 김 이사장의 야당 의원들에 대한 진술이 진짜일 수는 있어도 그가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검찰은 이번 입법로비 수사 과정에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아닌 새정치연합 의원들만 로비 대상이 된 데 대해 의구심을 품고 수사에 임했다고 했다. 관련 상임위가 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이어서 야당 의원들 쪽으로 로비가 몰린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원들에게까지 로비가 간 상황에서 정부에 입김이 미치기 더 쉬운 새누리당 의원들을 배제했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후일을 도모할 여지를 남기기 위해 야당 의원들만 선택적으로 제보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한 로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검찰은 김 이사장의 통화내역과 계좌내역 등을 추적했지만 의심이 갈 만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정치권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김 이사장은 폭넓게 로비를 벌이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에 적합한 인물 목록을 정해두고 특정 타깃을 정해 로비를 벌이는 방식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맨 처음 로비 대상에 오른 것이 환노위원장인 신계륜 의원이고, 이후 교육부와의 조율이 필요해지면서 신학용 의원까지 로비 대상에 포함됐다고 한다. 김재윤 의원의 경우 입법 과정에서의 역할보다는 진행상황을 전해주는 등 주변 역할에 치중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이사장은 현금도 많이 들고 다녔지만, 지역 행사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인 후원자”라고 평했다. 필요할 때마다 서종예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로서도 자체적으로 동원하기 쉬운 노인들로 행사장이 채워지기보단 활기 넘치는 젊은 학생들이 동원되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권은 검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회의원의 특권인 입법권에 대한 견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데 대한 우려와 함께 의원들의 ‘돈줄’인 출판기념회까지 감시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검찰은 일단 이번 사건의 경우 “출판기념회가 뇌물을 건네기 위한 ‘창구’로 사용됐기 때문에 들여다 본 것”이라며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출판기념회를 수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몸을 사리는 중이다. 정치자금 수확의 계절인 9월, 입법로비 수사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한 달 동안 개최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는 단 한 건도 없는 상황이다.
조정수 언론인
박상은 의원은 어떻게 돼가나 정황 많은데 물증 없어 ‘벽’에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서는 세월호 사고 이후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팀장 송인택 1차장검사)의 해운비리 관련 수사 도중에 불거진 박상은 의원(65)의 사건을 두고 여러 말들이 쏟아졌다. 박 의원에 대한 언론 포화가 이어지자 전 비서였던 장관훈 씨(43)가 “급여 일부를 후원금으로 납부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경제특보였던 김 아무개 씨도 자신의 급여를 인천 소재 건설회사에 대납하도록 했다고 폭로하며 사태를 확산시켰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언론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많았고, 실제로 수사에 들어가자 제보도 쏟아져 들어온 것은 맞다. 하지만 입증 단계로 들어서면서부터 큰 벽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초 운전기사가 가져온 돈 5000만 원을 지방선거 공천을 노린 이 지역 정치인의 로비자금일 것으로 보고 은밀히 수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의원 측에 신고된 액수를 밝히지 않고 물었을 때 그쪽에서 액수를 다르게 말하더라. 자기가 쓰려고 챙겨둔 돈이었으면 액수를 모를 수 있겠나. 속으로 ‘걸렸구나’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언론에 신고된 액수가 보도되자 박 의원 측은 이에 “착오였다”며 상황에 맞춰 다시 대응에 나섰다. 게다가 운전기사는 돈의 출처가 의심된다며 가져오긴 했지만 누구로부터 받은 돈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검찰은 “추가 제보자가 나오지 않으면 이번 수사는 망가진다”고 우려했다. 검찰 수사가 주춤해졌단 사실을 안 박 의원 측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이인규 변호사(사법연수원 14기)를 선임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 변호사는 “구속될 가능성은 전혀 없고, 검찰이 기소를 포기할 가능성도 높다”며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무죄 가능성이 100%”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분위기는 오히려 서울중앙지검에서 야당 의원들에 대한 입법로비 의혹 수사를 진행하면서 반전됐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통상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경우 ‘표적 수사’ 논란을 없애기 위해 관행적으로 실시해 온 ‘여야 숫자맞추기’로 박 의원에 대한 수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고, 박 의원 측에서도 “야당 의원들 수사에 숫자를 맞추려고 한다면 무죄 가능성이 높더라도 기소할 수도 있다”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철도비리 수사를 진행하면서 조현룡·송광호 의원이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3 대 3’ 여야 동수가 맞춰졌다. 결국 박 의원은 ‘방탄국회’ 논란까지 거친 끝에 검찰에 자진출석한 뒤 구속됐고, 이후 정치자금법 위반 등 10가지 범죄 혐의가 적용돼 구속 기소됐다. 박 의원은 재판 과정에서도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