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옛사위인 이재철 씨의 폭로로 인해 불거진 신성해운의 로비 의혹 사건이 딱 이런 모양새다. 국세청은 2004년 세무조사에서 신성해운이 220억 원을 탈루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77억 원만 추징했다. 통상적으로 50억 원이 넘어서는 탈세·탈루 행위에 대해서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관례지만 국세청은 검찰에 고발하지도 않은 채 세무조사를 흐지부지 마무리했고 이 씨는 이 과정에서 권력기관을 대상으로 한 신성해운 측의 광범위한 로비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에서 세무조사를 축소하기 위해 청와대 국세청 경찰 검찰 등에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렸다고 진술했다. 이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추징금이 턱없이 적게 부과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8일 이 사건을 조사부에서 특수 2부로 재배당하면서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검찰 외부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일각에서는 고위공직자를 배제하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란 전망도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권력형 게이트로 주목받다 소리없이 수그러들고 있는 ‘신성해운 세무조사 축소 로비 의혹’. 그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을 이 사건의 주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짚어봤다.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옛사위 이재철 씨의 폭로로 불거진 이번 사건은 이 씨와 함께 사건에 연루된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출신 로비스트 K 씨 등 2명이 구속되면서 반환점을 돌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 누가 로비를 받았는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로비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비를 했다는 사람들만 구속수감됐을 뿐이다.
아직까지 사건이 조사 중이고 당사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런 이유라면 이 씨와 K 씨를 일찌감치 구속수감한 것도 납득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대로 수사가 종료된다면 결국 사건은 이 씨와 K 씨의 ‘배달사고’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사건을 두 사람의 배달사고로 마무리한다면 국세청이 어떤 이유로 신성해운의 세무조사를 축소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번 신성해운 사건과 관련해 이 씨가 작성한 로비대상자 명단에는 장인인 정상문 청와대 전 비서관, 국무총리실 파견 경찰관인 K 씨, 검찰 고위 간부인 또다른 K 씨, 국세청 전 고위공직자인 L 씨, K 씨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씨는 정 전 비서관과 관련해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있었던 2004년 4월 회사에서 1억 원을 받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서울 사당동 정 전 비서관의 집에서 (장모님한테) 직접 건넸다”고 검찰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또한 그는 “신성해운 K 상무를 통해 국무총리실 사정팀 파견 경찰관 K 씨에게도 3000만 원을 줬으며 이는 국세청 고위 간부 L 씨에게 선처를 부탁해 준 대가”라고 말했다.
검찰 간부의 존재도 눈에 띈다. 이 씨는 “신성해운 간부 K 씨가 검찰 간부에게 로비를 했다. 정 전 비서관도 검찰의 도움을 받아 사건 해결을 도왔다”고 말했다.
또한 신성해운의 공동대표였던 서 아무개 씨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0년부터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국세청과 검찰에 억대 금품 로비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씨가 로비대상자로 지목한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먼저 청탁을 받았다고 의심을 받는 국세청 전 고위 공직자 L 씨는 최근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이렇다 할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L 씨에 대한 계좌 추적에서도 특이 사항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핵심에 있는 정 전 비서관도 이재철 씨와 대질신문까지 벌였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고 한다.
이 씨가 신성해운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여러 로비 대상자들에게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지목한 신성해운 K 상무에 대해선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이 씨나 서 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검찰 관계자의 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 측의 특별한 해명이 없다. 이와 관련 이 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다”고 최초 진술서랑 다른 발언을 했다고 알려진 부분은 눈길을 끈다. 일각에선 검찰이 당초 구속수사하기로 했던 이 씨 아버지를 불구속 기소 쪽으로 가닥을 잡은 점과 연계시켜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굳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구속수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이 씨의 부탁을 받고 국세청 고위 간부 L 씨에게 세무조사 축소를 의뢰했다는 경찰관 K 씨는 강원도 모 지방 경찰서로 발령 받아 사실상 ‘징계성’으로 좌천됐다.
결국 국세청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신성해운에 대한 추징액 등을 축소한 사실은 이미 드러났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 로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벌어졌는지에 대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로비 대상에 거론된 사정기관 직원들에 대한 책임 소재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이런 비판을 의식해 특수부에 사건을 넘긴 후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로비 리스트에 오르내린 기관의 몇몇 하위 직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10위권 내의 중견 해운회사가 청와대 국세청 정치권 검찰 등에 광범위한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이 일부의 우려처럼 ‘용두사미’로 끝날지 아니면 특수부로 옮긴 만큼 성과를 낼지 각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