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 ||
하지만 5년 전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인물들의 사정은 그리 녹록지 못한 모양이다. 특히 ‘음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도왔던 이른바 ‘후견인’들은 각종 소송에 휘말리며 일부는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언론의 미움을 샀기 때문일까.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여전히 많은 언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최근 일어났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기내 소동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물심 양면으로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한몫 거들면서 그 중 일부는 참여정부 때 각종 의혹에 휘말리는가 하면 또다른 일부는 세간의 시선에 몸조심을 해야 했다. 정권교체 이후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영욕의 지난 5년을 마감한 ‘노의 후원자들’. 그들의 ‘그날 이후’를 취재해봤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다. 태광실업은 나이키에 신발을 공급하는 업체로 박 회장은 지난 2007년 노 전 대통령의 방북 때는 중소기업인 수행단 일원으로 함께 방북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대선 때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 씨에게 5억 원을 준 사실이 드러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04년 9월 3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부지 매입 과정에서도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휴켐스를 인수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특혜 의혹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에는 휴켐스의 지분을 야금야금 늘리면서 20%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했다. 지난 2006년 박 회장이 인수했을 당시 휴켐스의 주가는 주당 5000원을 갓 넘었던 것이 최근에는 2만 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 적어도 3배 이상, 금액으로는 수백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베트남 등지에서도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최근에는 동남아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박 회장에게 유쾌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 지난해 12월 기내에서 소동을 피워 검찰에서 벌금 1000만 원에 약식 기소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엄중한 법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 ‘검찰이 결정한 처벌이 가볍다’며 그를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수사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그 때마다 수사를 받지 않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56)도 노 전 대통령의 후견인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사실 노 전 대통령과 문병욱 회장의 관계는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것 말고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다만 문 회장이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03년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보아 그가 노 전 대통령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지난 2003년 10억 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회사 돈 13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뒤 김성래 썬앤문 부회장과 공모해 홍기훈 N제약 회장에게 2억 원, 이광재 씨에게 2000만 원 등 3억 5000만 원의 불법 자금을 정치권에 제공한 혐의로 2005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었다. 물론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일반인들로서는 받기 어려운 여러 특혜를 입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문 회장은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후인 지난달 5일 다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 2006년 “문 씨가 2002∼2005년 그룹 계열사인 미란다호텔의 레저시설 공사, 라마다 서울호텔 객실 공사, 양평TPC 골프장 조성 공사 등의 과정에서 시공업체 등으로부터 가짜 세금계산서를 받는 등의 방법으로 비용을 부풀린 뒤 117억 원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한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문 씨는 또 라마다 서울호텔 유흥주점의 여성 접객원에게 봉사료를 주는 것처럼 장부를 조작, 12억 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문 씨는 지난 2005년 집유 판결을 받은 만큼 이번 기소 내용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집행유예가 취소돼 복역해야 하는 입장이다. 문 회장은 이 사건이 검찰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 혜택도 받지 못했다.
문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귀향 이후 한번도 봉하마을을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왼쪽부터)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강금원 창신실업 회장, 이기명 노무현 후원회 회장. | ||
강 회장은 최근까지도 노 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 직후 봉하마을로 찾아가 부부 동반 만찬을 가졌으며,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휴가차 강 회장 소유의 충주 시그너스 골프장에 찾아가 4일간 골프장 영빈관에 머물며 강 회장과 골프를 쳤다. 퇴임 이후 첫 휴가를 강 회장과 함께 보낼 정도로 돈독한 사이임을 과시한 셈이다.
15년간 노무현 후원회의 회장을 맡아 온 측근 중의 측근 이기명 씨는 인터넷 언론 ‘라디오21’의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지난 2004년 노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용인 땅을 위장 매매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무죄로 판명났다. 이기명 씨는 내뿜는 독설만큼이나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기도 했다.
그는 현재 기고나 집필 활동을 통해 참여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정치 칼럼집을 냈다. 친노의원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라디오21과 노 전 대통령이 만들고 있는 웹사이트를 연동해 네티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부산지역 후원회장이었던 이영로 씨도 노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후원자였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돈이 떨어져 진짜 어려울 때 부탁하면 단돈 100만 원이라도 아낌없이 도와주는 선배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4년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캐기 위한 특검 수사에서 이 씨는 노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부산 지역 모 건설업체로부터 7억 원이 넘는 불법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이 씨는 뇌경색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수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씨의 근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 씨의 부인인 배 아무개 교수는 지난해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재밌는 사실은 이른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라고 불리는 위의 인물들이 한사코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박연차 회장 측은 “기자들과는 더 할 얘기가 없다”며 최근 근황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으며, 문병욱 회장 측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여의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5월 이후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현 정권의 본격적인 사정 작업이 시작된다는 말이 떠돌고 있어 앞으로 이들의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강 회장 방문을 이런 시각과 연관지어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권불10년’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박혁진 기자 phj197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