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계획에 따라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해 공원 조성 공사를 착수했고 운동장 안에 있던 기존 풍물시장을 동대문구 신설동의 새로운 풍물시장으로 이전시켰다. 연합뉴스 | ||
당시 현장에 80여 명의 상인들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진압작업이 얼마나 전광석화같이 벌어졌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현장에 있었던 한 상인은 당시 상황을 “70~80년대 백골단이 되살아난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들이 과거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백골단’처럼 쇠파이프, 각목 등으로 동대문 풍물시장을 지키고 있던 상인들을 진압했다고 주장하며 “20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풍물시장 ‘정비 작업’ 현장의 책임자였다는 서울시 가로환경개선반의 K 주임은 “특별정비를 몇 번 해봤는데 이렇게 사고 없이 잘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며 “아무 탈 없이 잘 했다”고 흡족함을 표하기도 했다. 과연 그날 풍물시장에서는 아무일도 없었을까.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계획에 맞춰 S 용역업체를 동원해 동대문운동장 내부의 철거를 단행한 것은 지난달 16일 새벽이었다. S 용역업체는 지난 26일 신설동에 새롭게 조성된 ‘서울풍물시장’의 관리업체. 지난 2007년 9월 서울시에서 실시한 제한 입찰에 의해 관리위탁업체로 선정된 후 풍물시장의 관리, 이전, 가로정비 등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S 업체 관계자는 “지난 14일 서울시 측의 요청을 받고 용역인원을 모집해 16일에 550여 명의 용역인원을 풍물시장으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쇠파이프와 각목 등을 동원한 폭력사고가 있었는지 서울시와 상인들 간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크고작은 사고가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현장에 있었던 상인 조기준 씨(60)는 이날 정비작업 이후 한쪽 눈이 실명되고 말았다. 조 씨는 용역업체 직원에게 오른쪽 눈을 얻어맞아 안구 뼈가 골절되고 시신경이 절단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정문으로 밀어닥친 용역업체 직원들을 피해 달아나던 조 씨의 뒷덜미를 누군가가 잡아당겼고 자신의 앞으로 쫓아온 사람이 무엇인가로 자신의 눈을 때렸다고 한다. 그순간 바로 기절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 쪽 눈은 멀어있었고 손가락은 골절 상태였으며 온몸에는 타박상 자국이 가득했다고 한다. 눈을 뜬 곳은 운동장 옆 야구장 공사판이었다. 조 씨는 “반항한 적도 없고 도망치다가 맞았다”고 주장했다.
▲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 정비작업에 투입된 용역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 ||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 씨 아버지의 바로 옆 가게에서 일해 이 씨와 평소 안면이 있다는 A 씨. 익명을 요구한 그는 “운동장에 누군가 쓰러져 있기에 가봤더니 이 씨였다. 얼굴이 많이 부어서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자세히 보니 영민이었다”라며 “근처에 서 있던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사람이 죽어 가니 구급차 좀 불러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급차에 실린 시간은 거의 40분이 지나서였다. 차에 실릴 때도 정신을 못 차리기에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용역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인과 가족들은 중상자가 5명, 경상자가 15명이다. 전체 인원이 80여 명이었다는 점에 비쳐보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이 중에는 장애 5급자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서부터 임산부도 있었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50~60대 노인과 부녀자들이었다.
그러나 서울시 측에서는 당일 구타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가로환경개선반의 K 씨는 “공권력(경찰)의 경우야 방망이를 들고 있을 수 있었겠지만 용역원들은 그럴 수가 없다. 용역원들이 그랬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용역원들이 사용한 것은 방패와 헬멧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K 씨는 상인들이 부상당한 원인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몇 사람이 포위망을 뚫고 도망을 갔고 그것을 쫓고 하다보니까 쓰레기 같은 데를 휘젓고 갔다”며 “그런 과정에서 다치지 않았나 본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상인들이 결사적으로 도망을 쳐야 할 만큼 당시 상황이다급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 철거 작업에 투입된 용역원들에게 폭행 당해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고 주장하는 조기준 씨. | ||
당시 현장에 있었던 A 씨는 “상인들에 대한 폭행이 분명히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노실사)’의 관계자 박 아무개 씨도 “풍물시장 용역에 영등포역과 서울역 쪽 노숙인들이 다수 참여했다”며 “다소 껄렁껄렁한 젊은층의 노숙인들이 상인들 폭행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풍물시장 철거작업에 다녀왔다는 한 노숙인은 “서울역에서 동원된 노숙인과 영등포역에서 동원된 노숙인 간의 다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역 인력과 영등포역 인력을 구분하기 위해 S 업체에서 사용한 것은 ‘조끼’와 ‘모자’였다고 한다. 서울역 인력들에게는 조끼를 입히고 영등포 인력들에게는 모자를 씌워서 용역업체 직원들 간의 ‘충돌’을 막으려 했던 것. 그러나 이런 미연의 작업도 소용없었는 듯 막상 철거작업에 들어가자 양 조직이 서로 상대 측을 상인들의 가족으로 오인하고 치고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운동장에 투입되기 전 “동대문 안에 상주하고 있는 것은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악덕 상인들이다. 인정을 가질 필요 없다”라는 교육까지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법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서울시의 당일 ‘정비 작업’은 하자가 없다. 서울시는 행정대집행(행정법 의무 불이행자를 대신하여 관청이 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닌 ‘직접강제’의 형식을 따랐기 때문.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강현호 교수는 “직접강제는 행정대집행과는 달리 계고기간이나 영장이 필요 없고 일몰시에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교수는 폭행이 있을 경우는 서울시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폭행은 당연히 위법이고 그 작업을 진행한 서울시 측에서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서울시에서 고용한 용역업체의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폭행을 당한 상인들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가로환경개선 부서의 책임자 방태원 단장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상인들의 상해 사실을 ‘자해’ 정도로밖에 여기고 있지 않아 그 여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