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0일 중국에서 체포된 정명석 씨의 국내 송환 소식을 들은 신도들이 인천공항에 운집해 있다. | ||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홍콩과 중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한국 여신도 5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의 추적을 받아오던 정 씨는 지난해 5월 초 베이징에서 중국공안에 체포됐다. 그리고 중국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아오다 우리 정부의 범죄인인도청구요청에 따라 지난 2월 20일 국내로 송환됐다.
1999년 한 여신도의 폭로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정명석 성폭행 의혹 사건’은 그간 양측의 숱한 고소·고발로 얼룩져 흑백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진흙탕 싸움의 양상을 보여왔다. 무려 10여 년간 ‘성추문’ 의혹의 중심에 자리해온 정 씨와 관련, 선교회 측에서는 ‘음해’라고 주장하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왔다. 반면 정 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선교회에서 탈퇴한 회원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단체 ‘엑소더스’와 함께 선교회 측에 강하게 맞서 왔다.
공방의 핵심은 한 종교단체의 수장인 정 씨가 과연 여신도를 상대로 성폭행 및 엽기적인 성행각을 벌였는지 여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 씨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과 엑소더스 측의 주장과 선교회 측의 주장이 그동안 첨예한 대립해 왔는데 정 씨가 구속됨에 따라 법정으로 옮겨갔다. 공방전의 주체도 자연히 검사와 정 씨의 변호인단으로 바뀌었다.
<일요신문>은 현재 법정 공방의 핵심이 되고 있는 주요 내용들을 당시 법정에 참석한 사람들의 증언과 양측 관계자들을 통해 짚어봤다.
정 씨에 대한 공판은 첫 회부터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 기자는 지난 5월 9일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했으나 정 씨 측에서 비공개재판을 요청, 개정 5분여 만에 퇴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 담당 검사는 “재판은 피고인의 권리(이익)를 우선시해 이뤄지는 것으로 피고 측에서 비공개를 요청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받아들이고 있다”며 “피고가 자신의 명예 및 권리 등을 위해 비공개를 요청하면 법원에서 결정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사건은 불가피하게 성적으로 노골적인 내용들이 언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피고 측의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였으며 앞으로도 비공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말했다.
우선 공판 분위기에 대해 담당 검사는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로 양측 간에 날을 세운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느냐는 질문에는 “현재 진행 중인 상태라 뭐라 언급할 순 없지만 검찰로서는 (유죄를 입증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기소한 것 아니겠나”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한편 선교회 측에서는 “6월 말 정도에는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변호인들에 따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결과는 두고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공판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나왔을까.
4월 14일 정 씨 측 변호사는 법정에서 “JMS라는 단어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동서 크리스찬 연합이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또 “검찰이 정명석을 교주라 칭하는데 기독교 목사에게 교주라는 말은 합당하지 않다”며 “목사, 총재, 총회장목사, 노회장으로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선교회 측 대변인 배재용 목사는 “JMS는 JESUS MORNING STAR의 약자로 공식명칭이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언론 등에서 마음대로 갖다 붙인 것”이라며 “기독교복음선교회가 맞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서는 비공개로 진행되기 전 피해자라 주장하는 한 노인의 돌출행동이 있었다. 한 할머니가 “정명석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선 것. 판사가 발언자는 누구냐고 묻자 노인은 “피해자다. 내 나이가 72세인데 45세된 아들이 정명석에게 맞아 정신이상이 됐다. 내 아들 살려내라”며 울부짖다 퇴정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이날 공판에는 피해여성이 정 씨 측 변호인들의 신문을 받던 중 오열하다 기절하는 상황이 벌어져 여성에 대한 신문이 잠시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엑소더스 측 관계자는 “정 씨 측 변호인단이 피해여성들이 마치 쇼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변호사들은 증인에 대한 인권모독은 하지 말라는 판사의 경고를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선교회 측에서는 증인으로 나온 여성들의 태도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선교회 관계자는 “초기 공판 당시 증인심문을 할 때 피해자 증인심문이 먼저 이뤄지는 것을 두고 편파적이라는 불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래도 어느 한쪽의 얘기를 먼저 듣다보면 그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법정에서 울고불고 하니…. 더구나 피해여성들의 진술은 대부분 말도 안될 뿐 아니라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후에 우리 쪽 증인들이 나와서 잘 증언을 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4월 18일 공판에서 검사는 정 씨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고자 제출한 자료들을 설명했다. 특히 담당검사는 정 씨가 2001년 해외로 나간 후 단 한 번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출입국 자료를 제출하며 ‘(도피가 아닌) 해외선교였다’는 정 씨 측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도피 의혹에 대해서도 배 목사는 “(총재님은) 그 기간 동안 기도와 선교활동, 집필에 힘쓰는 등 해외선교에 주력하셨는데 ‘도피’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4월 21일에는 홍콩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들이 증인으로 출석, 오후 늦게까지 재판이 진행됐다. 피해여성은 증언 중 정 씨에게 “너만 입 있는거 아니야, 이 나쁜 ×아”라는 말을 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4월 23일 공판에서는 정 씨가 한 여성에게 속옷을 선물한 적이 있느냐에 대한 법정검증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날 검찰은 정 씨가 속옷을 선물한 것을 증명해주는 정 씨의 음성파일을 증거로 제출했으나 정 씨가 “내 목소리가 아니다”라며 검증을 거부, 결국 검증은 철회됐다.
▲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정명석 씨. | ||
정 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들이 화상증언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 화면이 아닌 법정증언대에 세워 얼굴을 보고 직접 심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판사는 “모든 성폭행사건 전담재판은 화상으로 증인심문을 한다”며 기각했다.
엑소더스 측은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직접 대면하는 것을 꺼릴 뿐 아니라 그럴 경우 심리적으로 위축돼 증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정 씨 측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수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 목사는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직접 얼굴을 보고 자유롭게 심문을 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겠나. 화상으로는 아무래도 효과적인 질문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우리 측 변호인들이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공판에서는 처음으로 ‘합의’라는 얘기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엑소더스 측에 따르면 정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피고인은 합의할 권리가 있는데 검사가 합의를 방해하고 있다. 판사님이 중재를 도와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엑소더스 측 관계자는 “그렇게 결백하다면 왜 합의 얘기를 꺼내는가. 검사가 할일 없어서 합의를 못보게 막겠는가. 법정에서 당당하게 무죄를 가리지 못하고 검사가 행사하는 당연한 직무범위까지 간섭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선교회 측 배 목사는 “이런 일로 계속 시간을 끌면서 서로의 활동에 지장이 있으면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합의’란 말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원만히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다. 누가 합의를 방해하고 그런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당사자들 간의 문제 아니겠나. 우리 측에서는 빨리 이 사태를 정리했으면 하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실제로 ‘합의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 해당 변호사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정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측은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한 종교집단 내에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정 씨. 그는 과연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성범죄자인가. 희대의 성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정 씨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