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9일 ‘푸른한국’이 주최한 ‘23차 한반도 대운하와 지역경제 활성화 심포지엄’에서 이재오 상임고문 등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
최근 쇠고기 파동으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일각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 사업이 또 다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푸른한국 포럼(푸른한국)’이란 대운하 관련 단체가 여의도 정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잇따른 대운하 발언들이 그 시기나 수위 면에서 말을 맞춘 듯 비슷하다는 점에서 푸른한국이 모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재오 의원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여지껏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대운하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요신문>은 최근 들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푸른한국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대운하 사업은 민간 쪽에서는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정부 쪽에서는 국토해양부 산하의 ‘대운하국책사업단’이 주도하고 있다. 청와대 내에도 국가경쟁력 특위 내 대운하 관련 TF팀이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라는 것이 민간단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오히려 민간기관인 한반도대운하연구회가 지난 몇 년간 대운하와 관련한 이론적인 기반을 마련해왔으며 최근까지도 정부 측과 긴밀하게 협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환경 물길 잇기 연대’ 등 최근 들어 민간단체들이 여럿 생겨나기는 했지만 이들은 대운하 추진세력이라기보다는 대운하를 찬성하는 순수 민간 지원단체 쪽에 가깝다.
정부 측에서는 얼마전 사업단이 부활하면서 여러 부처로 나뉘어있던 업무가 사업단으로 거의 일원화됐다. 사업단은 얼마 전 경제성, 홍수 및 수질, 환경 등의 쟁점 사안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국책연구기관에 1년짜리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즉 민간단체가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면 이를 바탕으로 국책사업단이 실질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운하 사업에는 이 두 주체 이외에도 청와대 측과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사업을 진행하는 또 다른 ‘큰손’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푸른한국이라는 모임이 그것이다. 푸른한국의 실체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재오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종종 그의 정치적 사조직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사조직 논란과는 별개로 푸른한국은 그동안 꾸준하게 대운하를 연구해왔다. 내부모임은 물론이고 대규모 세미나 및 토론회를 열어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해왔다. 같은 민간단체인 한반도대운하연구회와 비교해본다면 대운하연구회가 ‘양지’에서 일했다면 ‘푸른한국’은 ‘음지’에서 일해온 셈이다. 또한 한반도대운하연구회의 수장은 서울시 부시장 출신인 장석효 씨로 그는 청계천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한반도대운하 TF팀장을 맡았다. 반면 푸른한국은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했던 이재오 의원 중심의 포럼이며 이 의원 역시 인수위 한반도대운하 TF팀의 상임고문을 맡은 바 있다. 인수위 대운하TF의 ‘투톱’이 조금은 다른 형태로 대운하의 양축을 맡고 있는 것.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푸른한국의 규모는 작지 않다. <일요신문>이 취재한 결과 푸른한국에는 현재 3000여 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중 2000여 명이 대학교수들이다. 이 가운데 주도적으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는 회원은 100여 명이다. 푸른한국은 지난해부터 대운하 추진을 위한 대규모 세미나를 해왔다.
모 학교법인 이사장인 박 아무개 씨가 포럼의 이사장을 맡고 있지만 상임고문인 이재오 의원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하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실제로 푸른한국에서 연구된 내용들은 일반적으로 이재오 의원이 직접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해 왔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운하를 추진하면 70만 개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푸른한국 측에서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대통령은 이것에 대해 상당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여권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엔 푸른한국 관계자들의 청와대 출입도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푸른한국의 또 다른 관계자도 대운하 관련 취재를 할 거면 우리보다는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쪽에 알아보라고 말해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지난 21일 여의도 모처에서 만난 푸른한국의 고위 관계자인 A 씨는 대운하 사업에 대한 확고한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푸른한국을 대운하 사업의 ‘싱크탱크’로 정의했다. 이 관계자는 대운하에 대해서 반대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운하라는 표현보다는 ‘하천 정비사업’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그는 “일제시대 이후 하천을 정비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국토 전반에 대한 정비사업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운하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물길잇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A 씨는 늦어도 2년 안에는 영산강과 금강의 하천 정비 사업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낙동강에 대한 정비사업이 이뤄지고 최종적으로 조령터널을 뚫어 물길 잇기를 완성한다는 것이 자신들의 계획이고 이를 위해 민간사업자들의 사업제안서를 6월까지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특히 영산강 정비사업은 내년 봄쯤이면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본다면 대운하 사업은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대운하 반대 여론이 심한 이유에 대해 “일부 반대론자들에 의해 대운하 사업이 단순한 대형토목공사로 비쳐져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심어졌기 때문이고 결국 홍보 부족”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운하는 반드시 추진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특히 이 관계자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운하를 반대해도 이재오 의원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의원은 대운하의 실질적인 동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류우익 비서실장,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비서관 등 청와대 요직 인사들이 대운하 추진론자들 아니냐”며 “대운하는 반드시 추진될 것이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대국민홍보에 들어가면 여론도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푸른한국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싱크탱크’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운하와 관련해서 잘 모른다”며 “오히려 정치적인 색깔을 가진 조직이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재오 의원도 대운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두 단체는 현재 자신이 속한 단체에 대운하의 ‘뿌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기자가 양측 관계자들을 모두 만나본 결과 이들은 향후 대운하 추진 일정이나 타당성에 대해서 거의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근거 사례도 비슷하고 주장하는 바도 거의 비슷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운하는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의지도 강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그러나 이를 추진하고 있는 권력 핵심부의 의지는 워낙 강하다. 때문에 이들 민간단체들도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과의 괴리가 커도 너무 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물길잇기든 하천정비든 어떤 형태로 대운하를 추진하든 정부는 최소한 국민을 먼저 설득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은 정부가 꼭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광우병 사태의 본질도 결국은 국민과의 의사소통 부재에 있었음을 정부 일각에서는 또 잊은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