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기 방식은 ‘VIP’(대통령을 의미하는 정치권의 은어)와 관련 있는 사람이라며 피해자에게 접근, 청탁 등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갈취하는 식이다. 대통령과 관련된 이면 사업을 벌여야 하니 투자하라는 식의 사기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실행단장이라며 채용을 미끼로 피해자 3명에게 453만 원을 뜯어낸 최 아무개 씨(54)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화물차 운전기사인 최 씨는 개성공단을 오가는 동료 운전기사들로부터 공단 출입허가 절차 등의 정보를 들은 뒤 이를 바탕으로 사기를 쳤다. 김 아무개 씨(32)는 지난 4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원비서관실 행정관’이라고 찍힌 명함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각종 사기를 벌여 2억 3400만 원을 뜯어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박 대통령의 개인사 특성상, 가족 사칭보다는 ‘측근’이라고 사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권에 따라 나름 사기범들의 적응력도 진화하는 셈이다. 어쨌거나 비선 실세 논란이 계속되는 박근혜 정부의 이면을 보여준 사례라 할 만하다.
역대 정권에서 벌어진 청와대 관련 사칭 사건은 대통령의 친인척을 빙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정권 실세로 알려졌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나 그 측근을 빙자한 사기 사건이 자주 등장했다. 2008년 11월 10대 청소년이었던 양 아무개 군 등 2명은 이 전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사칭해 국회의원들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다 덜미를 잡혔다. 2009년에는 “이 전 의원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며 이 전 의원과의 친분을 사칭해 8억 7500만 원을 뜯어낸 사기꾼이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인척 관계를 빙자해 사기를 벌인 59건을 공개하고 주의를 당부하는 일까지 있었다. 권력에 줄을 대고 특혜를 보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널려 있는 셈이다. 사기꾼들은 이런 어수룩한 냄새를 잘 맡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직도 지난 정권의 이름을 사칭하며 사기를 벌이는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사기꾼들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이 여전히 유착관계에 있다며 “힘을 써줄 수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별 대단한 사기 방식도 아닌데 이런 사기에 피해자들이 줄줄이 넘어가곤 했다. 사기꾼들은 피해자의 독촉이 오면 “VIP가 바쁘다”며 되레 면박을 주면서 위기를 넘기곤 했다. 검찰의 한 부장검사급 관계자는 “정말 단순한 사기 방식인데도 매번 이런 사기꾼들이 활개를 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며 “이런 단순 잡범들이 계속 범행에 성공한다는 것이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조정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