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최대의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로 관심을 받았던 ‘위브 더 제니스’가 시행업체인 ‘해피하제’의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 ||
두산건설이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 범어네거리 한 모퉁이에 짓고 있는 이 주상복합 아파트 ‘위브 더 제니스’는 4만 10㎡(약 1만 2103평)의 부지에 지하 7층, 지상 54층짜리 건물 9개 동 총 1494세대가 들어서는 초대형 단지다. 최소 크기가 148.7㎡(45평형)에다 평당 분양가가 1300만 원에서 2600만 원 사이며 총 분양가는 1조 600억 원에 이르러 분양 당시부터 대구지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13가구를 분양하는 펜트하우스 분양에는 대구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몰려 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상복합 단지는 처음부터 관심만큼이나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시행을 하던 ‘(주)해피하제’가 시행경험이 전혀 없이 이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였던 데다 승인 과정에서 관련자가 잇따라 실형을 선고 받고 일부는 출국금지까지 당했다. 최근 회사의 실질적 사주인 박명호 씨가 3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되고 관련자들이 구속 수감됐다. 특히 검찰 조사 과정에서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고위 인사의 이름이 흘러나오면서 대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2004년 2월 설립된 ‘해피하제’는 대구지역에서 건축 설계업을 하던 박명호 씨(50)가 자신의 부인을 대표이사로 내세워 만든 시행업체다. 2004년은 대구지역의 건설경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로 박 씨는 당시 건설 호황을 틈타 대구 지역에서 가장 금싸라기 땅인 수성구 범어네거리 일대에 초대형 주상복합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이 회사를 만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업을 두고 “사실상 박 씨가 가지고 있는 돈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시작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해피하제는 군인공제회로부터 2500억 원이 넘는 돈을 프로젝트 파이낸싱형식으로 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박 씨가 처음 대구시에 사업계획서를 신청한 것은 2005년. 하지만 일정이 생각처럼 순조롭지 못했다. 특히 이곳은 대구지역의 주요도로인 달구벌대로와 동대구로가 교차하는 데다 지하철 2호선 역세권이라 건물이 완공될 경우 교통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또한 워낙 그 규모가 컸던 탓에 일조권 침해 논란까지 일으키며 교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몇 차례의 교통환경영향평가 재심이 이뤄지면서 사업승인이 난 것은 물론이고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면서 용적률도 기존의 450%에서 730%로 크게 상향조정됐다.
게다가 해피하제는 심의 과정에서 500억여 원을 들여 아파트 입구에서 지하철 범어역까지 지하보도와 수성구청 맞은편에 도서관을 건립, 구청에 기부채납키로 하는 서류를 보완해 제출했고 이후 심의가 통과됐다. 이를 두고 당시 대구지역 건설업계에서는 특혜 시비가 일기도 했다. 구설수에 휘말려 있던 이 사업은 결국 박 씨가 회사돈을 횡령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이 사업이 각종 심의에서 수차례 반려됐음에도 불구하고 승인이 이뤄진 부분에 주목했다.
처음 수사 당시만 해도 검찰은 박 씨가 해피하제 측으로부터 상여금 명목으로 50억 원, 또 자신이 중심이 돼 설립한 D건축설계회사로부터 설계비 명목으로 54억 원 등 총 104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했으나 실제 횡령액이 300억 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박 씨가 임의대로 사용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박 씨가 자신의 회사나 다름없는 두 회사의 돈을 편법을 사용하면서까지 빼내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점이다. 검찰 측은 이 부분에 착안해 사업 승인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가 있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수사 결과 로비 의혹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사업심의가 수차례 반려되자 인허가를 원활히 해주겠다며 3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된 철거전문업체 D 개발 대표 K 씨(48)가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관련 공무원들로 하여금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한 점’이라고 밝힌 대목은 공무원이 로비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 하지만 K 씨가 돈을 어떤 용도로 누구에게 사용했는지 대해서는 아직까지 수사 중이다.
전 정권의 고위인사들이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검찰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 먼저 검찰이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비서관이었던 K 씨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전 비서관이었던 P 씨에게 10억 원가량이 흘러들어갔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시행사와 P씨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K 씨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이틀 전에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특수부 관계자는 “P 씨가 돈을 받은 시점이 그가 비서관을 그만둔 이후여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며 “현재 K 씨가 해외로 도피했기 때문에 일단은 내사 중지 상태이며 도피한 K 씨는 기소중지 했다”고 말했다. K 씨와 함께 비자금 전달책으로 의심받고 있던 S 씨도 잠적했으며 현재 수배 중이다. 또한 이 관계자는 박 씨와 친분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참여정부 유력인사 L 씨와의 연관 여부와 관련해서는 모르겠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10명 정도를 출국금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지역 유력인사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부분. 검찰은 박 씨에 대해 지난달 7일 법원에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해 결국 불구속 기소됐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영장실질 심사가 있기 직전 대구시장과 현역 국회의원, 유력 여당 인사, 대구지역 유력 언론계 인사들이 한꺼번에 박 씨에 대한 법원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영장 기각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탄원서를 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해피하제는 지난 2005년부터 공식적인 기부채납 이외에도 대구지역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적지 않은 돈을 내놓았다. 대구시가 주최하는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와 관련한 후원금뿐 아니라 방송사, 신문사 행사에도 적지 않은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해피하제의 광고대행을 맡은 회사는 대구지역 유력 정치인 S 씨의 동생이 운영하는 광고대행업체다. 시민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부 언론사 간부들도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탄원서 관련 지역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관련자들은 “탄원서인 줄 몰랐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대구 지역 시민단체와 건설업계 사이에서는 전 정권의 고위층과 지역 유력인사들이 엮여있음에도 이번 사건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