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정인봉 변호사, 김유찬 씨, 정봉주 전 의원, 김경준 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
네거티브 선거에서 타깃은 언제나 1등 후보였다. 17대 대선에서도 1등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MB)가 심하게 공격받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 폭로가 난무하는 가운데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관전하는 유권자들도 뭐가 뭔지 모를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MB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고꾸라진 쪽은 MB 저격수들이었다. 대선 기간 내내 온갖 파문을 일으키며 불발탄을 쐈던 MB 저격수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07년 2월 15일 박근혜 후보 진영에 몸을 담고 있던 정인봉 변호사가 국회에 ‘보따리’를 짊어지고 들어섰다. 보따리에 담긴 것은 일명 ‘이명박 X파일’. 정 변호사는 이전부터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밝힐 수 있는 X파일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왔고 이 X파일은 대선 구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한 변수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정 변호사의 X파일은 ‘뻥파일’로 불릴 만큼 내용이 없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이명박 후보의 지난 96년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 사건을 다시 들고나온 것뿐이었다. 이 후보는 정 변호사가 ‘폭로’한 내용과 관련해 98년 의원직을 자진 반납했던 터였다.
정 변호사는 이 후보가 경선에서 상대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를 꺾자 한나라당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후 자유선진당에서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받은 정 변호사는 한나라당 박진 후보와 통합민주당 손학규 후보 등이 격돌했던 종로구에 출마,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낙선했다. 그후 소식이 끊겼던 정 변호사는 지난 6월 25일 모 신문사의 기고문을 통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X파일이 아닌 ‘조언’을 들고 나왔다. 정 변호사는 이 기고문에서 “대통령이 된 후 무슨 일을 하였는가 냉정히 생각해 보고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경제에 몰두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변호사는 현재 자유선진당에서 특별한 직책 없이 일을 돕고 있다.
정 변호사의 뒤를 이어 MB 저격수로 등장한 인물은 이 후보의 전 비서관이었던 김유찬 씨. 김 씨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정 변호사가 ‘X파일’을 공개한 바로 다음날 등장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김 씨는 이 후보가 자신에게 1996년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위증을 해주는 대가로 1억 2050만 원을 줬으며 이 후보가 상암 DMC 빌딩사업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4월에는 자신의 주장을 엮은 이른바 <이명박 리포트>를 직접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의 저격도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해 8월 10일 김 씨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무고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 1월 31일 재판부는 김 씨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무고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각각 징역 10월과 징역 4월을 선고했다. 김 씨는 지난 5월 22일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해 각종 의혹들을 제기해왔던 지만원 씨의 ‘그날 이후’도 관심을 끈다. 지 씨는 이 후보와 이상득 의원이 이복형제이며 이 대통령의 실제 어머니는 일본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의 군면제 사유로 알려진 기관지 확장증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 쪽이 기관지 확장증 후유증 등을 알리며 지 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힘으로써 지 씨는 지난 2007년 8월 검찰에 구속됐고 같은 해 12월 22일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의 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지 씨는 현재 각종 TV 토론회 등에 출연하며 또다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비록 대선 후보를 비방해 구속까지 됐던 지 씨지만 그의 입담은 여전히 거침이 없다. 지 씨는 ‘5·18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 ‘5·18은 특수부대의 공작’ 등 비방글을 인터넷에 지속적으로 올려 5·18 유족 관련 단체들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다. 지 씨 역시 이 후보의 저격수로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인물이다.
뭐니 뭐니 해도 MB 저격수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김경준 씨다. 이명박 후보를 끌어내리기 위해 상대 후보들까지 나서서 적극 활용했던 BBK 의혹의 당사자로 17대 대선이 네거티브, 흑색선전으로 물든 최악의 선거였다는 평가를 내리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1999년 BBK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 김 씨는 이후 2001년 1월 이명박 대통령과 LKe뱅크라는 인터넷 증권회사를 설립했다. 김 씨는 같은 해 7월부터 10월까지 옵셔널벤처스코리아라는 회사를 인수해 319억 원의 투자금을 모은 후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됐고 그곳에서 “나는 이명박의 하수인일 뿐”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김 씨 귀국 후 실시된 검찰조사에서 김 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대선 이후 꾸려진 BBK 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내밀었던 “이명박이 BBK투자자문의 주식 61만주(100%)를 LKe뱅크에 매각한다”는 내용의 한글이면계약서도 ‘가짜’로 판명났고 BBK 주가조작도 김 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났으며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역시 김 씨의 회사로 밝혀진 것이다. 대선 직전까지도 이 후보를 물고늘어졌던 김 씨는 지난 6월 27일 공판에서 “대한민국 국민과 판사, 검사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께 끼친 피해에 대해 한없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한 뒤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김 씨는 “국가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기자들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 김 씨는 지난 5일 법원으로부터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김 씨의 귀국에 힘을 얻어 BBK의 실소유자가 이명박 후보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폈던 정동영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박영선 의원 등은 모두 한나라당으로부터 고소·고발 조치를 당했지만 대부분 취하되었고 이 가운데 정봉주 전 의원만 재판까지 받고 얼마 전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 전 의원은 지난 7월 4일 BBK 사건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법정구속은 면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아직도 받아야 할 재판이 남아있다. 정 전 의원이 특검 후에도 승복하지 않고 “검찰이 증거자료를 감췄다”고 맞섰던 탓에 BBK 수사팀 검사들로부터 8억여 원에 이르는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기 때문. 정 전 의원은 계속되는 재판 준비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