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교육감선거가 오는 30일 사상 첫 직선제로 치러지면서 온갖 해프닝을 쏟아내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 뭐? 정당공천이 없다고?
2006년 12월 국회입법을 통해 16개시·도 교육감은 기존 교육계 내부선거(일명 간선제)에서 주민 직선제로 선출방식이 바뀌었다. 기존 간선제에서는 투표인 수가 제한된 까닭에 금권, 관권선거가 판을 쳤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현역 교육감에게 크게 유리했다. 이런 단점을 바로잡고 ‘교육자치’ 이념을 살리기 위해 직선제가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선거를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일단 2007년 2월(부산)~2009년 2월(경기도) 사이에 첫 직선제 교육감을 뽑은 후 2010년부터는 지방선거 때 교육감을 함께 뽑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번 서울시교육감의 임기는 1년 10개월로 초단기다.
교육이 정치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감선거는 현재 정당의 공천, 정치단체의 지지선언 등을 금지하는 등 철저하게 정치색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서울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정치계의 줄을 잡으려고 안달이 나 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A 후보의 캠프를 보자. 여기에는 최소 3개 정당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민주당, 교육정책이 이명박 대통령(MB)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지지한 한나라당, 여기에 자유선진당까지 A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나와 있다.
참신성을 바탕으로 예비후보 시절 다크호스로 주목을 받았던 B 씨는 당초 한나라당의 지지를 기대했으나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A 후보를 지지하기로 방침을 결정하는 바람에 크게 낙담했다. 여기에 자금난과 ‘보수 대 진보’의 이념대결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자진사퇴했다. 한나라당은 A 후보와 B 씨, 그리고 C 후보를 놓고 고민했으나 A 후보가 약점은 많지만 자금, 조직력, 인지도 등에서 앞선다고 판단해 보수단일화를 결정했다. 만일 교육감선거에서 ‘반 이명박’ 진영이 승리한다면 MB정권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A 후보는 비밀리에 청와대의 부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있는 것은 C 후보다. YS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C 후보는 7월 초까지 ‘자신의 선거 운동을 뒤로 한 채 국회에서 살았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사연인즉 한나라당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가깝기 때문에 박 전 부의장이 당대표가 되면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부의장이 당대표가 됐지만 한나라당은 A 후보 지지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촛불집회의 영향으로 한나라당 및 MB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하자 보수진영 후보들은 ‘대외적으로는 오히려 파란색(한나라당 상징 컬러)을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정치계 줄대기는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D 후보는 전교조, 진보신당,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의 지지를 발판으로 삼고 있다. 전교조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완화하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내세울 경력으로 전교조 출신이 아닌 대학교수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A 후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D 후보는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MB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내세우며 표몰이를 하고 있다. 여기에 E 후보는 전교조 출신이지만 ‘반 이명박, 반 전교조’를 기치로 내걸었다. 정치적으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B 씨는 “이번에 정치는 무서운 동네라는 것을 실감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렴한 이미지로 교육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B 씨는 지난 3월 선거를 준비하면서 한나라당 서울시의원 등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 라인을 통해 들어온 선거전문가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다’는 식으로 일을 추진하면서 시작부터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정치적으로 휴지기다. 4월 총선이 끝난 후 놀고 있던 선거꾼들이 정말이지 많은 루트를 통해 캠프로 찾아왔다. 하지만 대다수가 ‘돈’과 관계가 있다. 뭐 내가 몇 십만 표를 갖고 있으니 유세차량이나 인쇄업자 선정권을 내게 달라는 식이었다. 아예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B 씨는 7월 초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 평생 어렵게 모은 3억 원 이상의 종자돈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돈보다도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사퇴를 발표하자 선거꾼들을 중심으로 꾸린 지역조직이 반발, 2시간이 넘는 청문회까지 겪는 고초를 치렀다. “A 후보를 지지하면서 10억 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다”는 식으로 근거없는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평생 존경받는 교육자로 살았는데 견디기 힘든 수모를 당한 것이다. 예비후보 기간에도 노골적으로 활동자금을 요구하던 지역일꾼들은 위로금까지 요구했고, 결국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C 후보 쪽으로 옮겨갔다. 사퇴와 함께 A 후보를 지지한 B 씨는 A 후보의 캠프로 합류했으나 이 때문에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A 후보 측은 타후보들로부터 ‘선거법위반’ 공세를 받고 있다. 현역 교장 등 학교조직을 통한 관권선거와 각종 향응 및 금품제공 등의 혐의가 선관위에 신고돼 있다.
인터넷 파워가 센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D 후보를 지지하는 관련자가 불법선거 의혹으로 고발당했고, ‘노사모’ 출신의 한 네티즌은 B 후보가 상당한 재산가이고 한나라당 공천에 떨어진 후 교육감선거에 나왔다는 거짓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선관위에 적발돼 사법처리를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 선관위도 헷갈리네~
기본적으로 교육감 직선제 시스템에도 큰 문제가 있다. 선관위는 기존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관련법규를 토대로 이번 선거의 지침을 마련했다. 공식 선거운동비용이 34억 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 확정됐는데 이것부터가 문제다. 나중에 법정선거운동비용은 보전받지만 최소한 개인돈 34억 원이 있든지 아니면 이를 차용할 능력이 돼야 교육감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후원금 문제도 그렇다. 서울시 선관위는 처음에는 교육감 후보자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후원회를 통한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선거규모가 큰 탓에 비용문제가 발생하자 7월 초부터 개인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정치 후원금과는 달리 소득공제용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고, 또 금액에 제한도 없다고 했다. 수십억 원을 받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향후 뇌물수수 등의 우려가 있으니 ‘알아서 소명자료를 남기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후원금을 받으라’는 ‘엿장수 지침’을 내렸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서울시교육감은 엄청난 자리다. 서울시내 1200여 초·중·고등학교의 교장 임명권을 갖고 있고, 부산시 전체예산(6조 7372억 원)과 맞먹는 6조 1574억 원을 집행한다. 서울 시내에 학교를 신설하고, 없애는 것도 모두 교육감의 권한이다. 더욱이 MB의 교육자율화 정책으로 인해 그 파워는 예전보다 더 커지고 있다.
아무개 후보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유력정치인에게 정치자금 10억 원을 댈 테니 자신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재 교육감선거에서 선거법에 위배되는 각종 자금이 흘러다닌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선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교육감을 간선제로 뽑아야 한다’거나 ‘2010년 지방선거 때는 교육감도 정당공천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선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