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친박 당협위원장을 대거 바꿔 친정체제 구축에 나서려한다는 관측이다. 사진은 지난달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 대표(맨 오른쪽)가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최근 국회 주변에선 출처 불명의 리스트가 공공연히 돌았다. ‘퇴출이 유력한 새누리당 당협위원장들’의 실명이 적힌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도권에 기반을 둔 원외 친박 인사들로, 친박계 핵심 홍문종 의원이 사무총장 시절 발탁한 당협위원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받아 본 정치권 관계자들이 ‘김무성 살생부’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 대표가 친박 당협위원장을 대거 바꿔 친정체제 구축에 나서려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 본 친박 의원은 “명단이 사실이라면 거의 학살 수준이다. 김 대표는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옛 지구당위원장 격인 당협위원장은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선출 선거권을 갖는 대의원을 지명하는 데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권을 갖는 막강한 자리다. 특히 재·보궐 선거와 총선에서 스스로 공천 영순위가 되는 자격까지 갖게 된다. 이 때문에 당권을 잡은 계파는 당협위원장을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번 당협위원장 교체를 앞두고 친박과 친이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전국 원외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당무감사를 실시했다. 이를 기초로 교체 대상자를 추려내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의원 시절 일부 당협위원장 인선에 대해 쓴 소리를 가한 적이 있다. 지난 2월 홍문종 당시 사무총장이 서울 동작갑 지역에 옛 민주당 출신 손 아무개 씨를 위원장으로 선임하자 김 대표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고, 결국 그 뒤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김 대표 측은 “친박은 물갈이라고 주장하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바로잡겠다는 게 김 대표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친박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친박 성향의 당협위원장 교체 수순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김 대표가 원외에 이어 현역 의원들에 대한 당무감사에 나설 것이란 소문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총선 공천 탈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현역 의원 지역에 대해서는 당무감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친박 내에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친박과 친이 간 갈등은 당협위원장 인선을 주도할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 선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조강특위는 공석인 당협위원장뿐 아니라 당무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직 운영 상태가 부실한 곳은 교체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현재 당협위원장이 공석인 지역이 14개, 원외 지역 97개로 총 111개인데 이는 전체 246개 가운데 45%에 해당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당협위원장이 바뀌는 셈이다. 당무감사 착수 후 자진 사퇴하는 당협위원장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조강특위 권한은 더욱 막강해진다.
당초 김 대표는 이군현 사무총장,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정양석 제2사무부총장, 이한성·권은희·김현숙 의원을 조강특위 위원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은 한 명도 없을 뿐 아니라 모두 김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그러자 친박계가 들고 일어났다.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이 침묵을 깨고 전면에 나섰을 정도였다.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 구윤성 기자
조강특위 구성에서부터 비박에게 밀린 친박 내부는 폭발 일보 직전이다. 사무총장 시절 당협위원장 선출을 맡았던 홍 의원은 대놓고 김 대표를 비난했다. 홍 의원은 10월 14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당을 처음 맡아서 조강특위의 역할과 기능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김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홍 의원은 “저희 때 조강특위가 원외 당협위원장을 40여 명 모셨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공석이 된 자리에 임명한 것이다. 원래 있던 분의 목을 쳐내고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온 게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홍 의원 발언에 대해 김 대표 측 의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고 있지만 친박계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며 불쾌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김 대표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오히려 홍 의원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럼 부실하게 지역을 관리한 당협위원장을 그냥 내버려 두란 얘기냐”고 반문하며 “경쟁력 없는 당협위원장 지역은 총선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 총선 승리라는 대의명분을 친박계도 수용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당 대표를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해당 행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홍 의원은 반박하고 있다. 홍 의원은 “경쟁력 있는 당협위원장은 바로 공천이라는 공식으로 생각해서 우리 계파와 가까운 사람을 많이 심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김 대표가 공약으로 내건) 오픈프라이머리 정신에 어긋난다. 지금 조강특위를 구성하거나 운영하시는 분들이 잘못 생각한 것 같다”며 “언론에서는 친박-비박 구도로 쓰지만 그런 갈등은 심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인위적으로 위원장을 끌어내리거나 교체하거나 한다면 상당히 큰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친박 내부에선 이번 당협위원장 교체를 김 대표의 대권 스케줄 일환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친박 의원은 “김 대표 머릿속은 이미 2017년 대선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은 대세론을 확산시켜 사이가 껄끄러운 박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당협위원장을 우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재광 평론가 역시 “김 대표가 대권을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총선이다. 총선에서 질 경우 이는 ‘김무성 책임론’으로 직결된다. 그렇게 될 경우 김 대표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대표로선 친박계 저항이 심하더라도 (당협위원장 교체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