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단가가 낮은 위조 문건은 온라인 전송만으로 거래가 끝난다. 그러나 보다 정밀한 위조 문건은 단가가 높아지고 제3자를 통해 은밀하게 전달된다. 임준선 기자
지난 9월 서울지방경찰청에 검거된 위조범 김 아무개 씨(50). 김 씨가 다루는 ‘품목’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한 타인의 신분증(운전면허증), 이혼기록이 삭제된 혼인관계증명서, 취업준비생의 가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등 공·사문서를 망라했다. 김 씨에게 위조를 의뢰한 이들은 한 건당 많게는 600만 원을 건네기도 했다. 김 씨는 뻔뻔하게도 의뢰자에게 수수료를 받아먹고 나서 ‘위조 의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추가로 돈을 갈취하기까지 했다.
주목할 점은 김 씨가 국내 고객들에게 위조를 의뢰 받았지만, 그의 활동 무대는 한국이 아닌 중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현지의 위조범들과 연계해 온라인 광고를 활용, 국내에서 고객들을 확보한 뒤 실제 작업은 중국에서 했다. 이 때문에 김 씨를 제외한 위조범 일당들은 여전히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탓에 현재까지 수배 중이다.
담당 수사관은 “아직 극소수는 남아있을 수 있지만, 사실상 국내에서 활동하는 위조범은 이제 거의 없다”며 “대부분 위조범들은 국내서 고객을 확보하지만, 해외의 위조범들과 연계해 활동 중이다. 특히 중국은 워낙 위조 범죄가 발달한 터라 위조범들의 주요 활동 무대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위조범들은 수두룩했다. 금융권이 몰려있는 서울 여의도 일대와 장한평, 을지로 등 인쇄소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전문 위조범들은 활개를 쳤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위조범들은 최근 사이 거의 멸종됐다고 한다.
전문 위조범들이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긴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결국 ‘위험성’과 ‘경제성’ 측면으로 풀이된다. 오랜 기간 위조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수사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서 공·사문서 위조에 대한 단속과 형량이 굉장히 세졌다. 위조범 입장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국내서 활동을 이어가기는 참 쉽지 않다. ‘범죄 이민’을 감행한 셈이다. 특히 중국은 그야말로 위조범들의 천국이다. 많은 경험과 상당한 기술을 보유한 숙련공들이 많다. 낮은 인건비 덕에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위조 품목들을 생산할 수 있다. 또 해외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국내의 고객 확보가 가능하다. 굳이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내서 활동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해외에 근거지를 둔 이들의 영업 방식은 간단하다. 일단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위조 문건 제작과 관련한 광고성 글을 뿌린다. 일반인들도 이러한 광고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의뢰인이 위조범에 특정한 문건을 요구하면, 위조범은 일단 1차적으로 의뢰인이 요구한 문건의 몇 가지 샘플을 전송한다. 참고로 전문 위조범들은 신분증과 공·사문서는 물론 실제 사기행각에 이용되는 구권, 채권, 외화, 예금잔액증명서 등을 포함해 갖가지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
의뢰인 입장에서 1차적으로 위조범이 보내온 샘플이 마음에 들면, 위조범은 중국 현지서 본격적으로 위조 작업에 들어간다. 비교적 단가가 낮은, 조잡한 수준의 위조 문건은 온라인 전송만으로도 거래는 끝난다. 보다 정밀한 위조 문건의 경우, 단가는 높아지고 제3자를 통한 은밀한 배송을 통해 전달된다.
위조범들의 기술과 수법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요즘 트렌드는 ‘진짜를 활용한 위조’다. 즉 100% 위조가 아닌, 실제 문건을 교묘하게 활용해 위조 문건을 제작하는 사례다. 예를 들어 각종 사기행각과 비자발급요청 첨부서류로 잘 활용되는 ‘소득금액증명서’가 대표적이다.
과거 위조 소득금액증명서는 진품을 참고한 샘플을 구비해 놓고 제작됐다. 하지만 요즘엔 진품 증명서마다 독자적인 번호가 찍히고 있다. 각 기관에서는 국세청을 통해 번호조회를 손쉽게 할 수 있어 위조 문건을 걸러내기가 수월해졌다. 이 때문에 최근엔 액수가 적은 진품 소득금액증명서를 실제 발급한 뒤, 증명서 내 금액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수법이 판을 친다고 한다. 이럴 경우, 문서 번호는 여전히 진짜이기 때문에 적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가짜 예금잔액증명서를 활용해 사기행각을 벌이다 적발된 경우는 또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들고 다닌 거액의 예금잔액증명서는 ‘형식상’으로는 진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위조범들은 실제 계좌에 거액을 입금한 뒤, 잔액증명서를 발급하고 의뢰인에 건넸다. 그리고 바로 입금한 돈을 빼낸다. 위조범은 단지 몇 시간만 의뢰인에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긴 셈이다. 잔액증명서는 오직 실시간 거래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경우다. 이를 담당한 수사관은 실제 문건은 ‘진짜’이기 때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대부업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는 후문이다.
재직증명서 위조에는 아예 실제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 장기 비자를 받기 위해 부족한 재직 경력을 메워야 했던 한 범죄자는 위조범에 의뢰해 가짜 재직증명서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해당 재직증명서를 실제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에 부탁해 발급 받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실질적으로 해당 기업에 문의를 하기 전까지는 정교함을 넘어 양식 자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
앞서의 수사관은 “대부분 위조 문건 거래는 온라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먹튀’도 빈번하다. 또 많은 값을 치렀음에도 물건 수준이 마음에 안 든다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위조범 대부분은 해외에 머물 뿐 아니라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신고를 해도 검거가 쉽지 않다. 아예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미국 한인타운 위조범 활개 “천만원만 내면, 장기비자 뚝딱” 위조 문건이 활용되는 경우는 무척 다양하다. 여러 유형의 위조 범죄 가운데 최근 경찰이 유독 눈여겨보고 있는 곳이 미국 한인 타운이다. 현재 미국 한인 타운 내에는 각종 비자 첨부 서류를 다루는 전문 위조범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얻기 힘든 비자가 미국의 장기 비자라 했던가. 단순 여행 비자를 제외하고 미국의 각종 장기 비자를 얻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정상적인 업무가 아닌, 성매매, 불법 대부업, 국제 사기 등 음지에서의 행각을 염두에 둔 예비 범죄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지에서 활동하는 비자 위조범들의 손만 거친다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진다는 후문이다. 많게는 1000만 원에 달하는 위조 비자 패키지가 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다. 간단하게는 체류 심사의 기준이 되는 소득증명서, 각종 재산 증명서류, 재직증명서 위조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미국 현지의 위조범들은 본인들의 비자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2년 전, 비자 위조 서류를 통해 미국 입국을 꾀했던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경찰에 의해 무더기로 적발된 바 있다. 한국인보다 미국 입국이 어려웠던 조선족들은 현지 위조범을 통해 미국 비자 발급에 성공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이 전한 수법은 이러했다. 위조범들은 정상적인 비자 발급이 불가능한 조선족들이 한국 상류층의 가사도우미로 많이 일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경우 사회적 배경이 있는 상류층 인사들의 이력과 위조한 동의서만 있다면, 의외로 손쉽게 미국의 노동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위조범들은 이 틈을 적극 활용했다. 최근엔 예능인 비자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는 다른 종류의 비자 발급이 어려운 의뢰자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즉, 의뢰자를 예능 종사자로 분한 뒤, 각종 국내 활동 경력 사안들을 위조해 첨부하는 경우다. 한 위조범은 국내에 보도된 한 설치예술가의 기사를 바탕으로 가짜 기사를 만들어 비자 서류에 첨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현재 국내 경찰은 이러한 미국 현지의 비자 위조범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미국 현지의 대사관과 미국 이민국 등과 공조해 적극 수사에 임한다는 방침이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