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화상을 입고 입원한 경비원 이 씨. MBC 뉴스 캡처. 큰 사진의 경비원 모습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1평 남짓한 좁은 H 아파트 경비원 초소. 지난 7일 분신을 시도한 이 아무개 씨(53)가 얼마 전까지 식사를 하고 잠을 자며 업무를 보던 공간이었다. 그마저도 입주민들이 주문한 택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공간은 더욱 좁아 보였다. 지난 15일 기자가 찾은 H 아파트의 초소에는 이 씨의 동료 경비원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 씨의 동료 A 씨는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몇몇 유별난 입주민이 있어 그렇지 뭐, 좋은 입주민들도 많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불길이 치솟던 당일 이야기가 나오자 A 씨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A 씨의 한숨에 모든 설명이 들어있는 듯했다. A 씨는 “이 씨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활달하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 아파트는 좀 나은 것 같다며 감사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근무지를 옮기면서부터 많이 힘들어했다”며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그 어르신이 한번 잔소리하면 한 시간을 넘게 하시니까. 10분만 같은 소리를 들어도 힘이 들지 않나. 그날도 사람들이 한참 출근하는 시간인데 30분이 넘도록 이 씨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고 하더라. 분에 못 참으니까 차에 들어가서 분신하려고 한 거지”라고 말했다.
이 씨는 1년 전 압구정 H 아파트에 취업했다. H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의 정년은 60세로 다른 아파트에 비해 짧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든 휴가와 야근 수당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 씨는 감시 순찰 업무는 물론 환경미화, 택배정리, 고지서 배분, 심지어 대리주차까지 모든 업무를 감당했다. 하지만 입주민 B 씨(여·74)의 도를 지나친 모멸적인 언행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 씨의 동료 경비원 A 씨는 울화가 치미는지 “5층에서 먹으라고 음식을 던지는 게 개 돼지한테나 하는 행동이지. 이 씨가 우울증 약까지 먹으면서 버텨왔다는데…”라고 토로했다.
결국 이 씨는 지난 7일 해당 근무지를 배정한 관리자를 원망하는 내용과 함께 “여보, 이 세상 당신만을 사랑해. 먼저 세상 떠나니 나를 찾지 마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단지에 주차된 차안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조용했던 H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분신사건에 입주민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H 아파트에 2년간 거주했던 하 아무개 씨(29)는 “다른 아파트에서도 살아봤지만 H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는 경비원들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딸 정도 나이 되는 아가씨가 장을 보고 차에서 내리면 경비원 아저씨가 달려가 장바구니를 받아들고 차문도 닫아주는 걸 몇 번이나 목격했다”며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H 아파트 경비원 노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는 김길환 분회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씨는 한차례 수술을 끝냈지만 여전히 말은 못하고 있다. 이 씨 가족들이 급히 병원으로 왔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가족과 유독 친밀했던 이 씨는 평소 한 할머니 때문에 근무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은 있었지만 가족이 걱정할까 더 이상은 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 씨 아들은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대학교 휴학까지 했다. 현재 해당 아파트 입주민은 경찰 조사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이 상황과 선을 긋고 있다”고 말했다.
격무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매일같이 ‘참을 인’자를 새겨야 한다는 아파트 경비원은 다른 아파트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씨가 근무해온 압구정 H 아파트(왼쪽)와 지난 13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원들이 H 아파트 정문 앞에서 경비노동자 분신사고와 관련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박은숙 기자·연합뉴스
본래 경비원의 업무는 감시와 순찰 등에 한정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택배보관, 주차단속 등의 업무도 경비원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화단 조경 정리와 고지서 배부 등 온갖 잡일도 경비원의 몫이다.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지만 점심 저녁 1시간 30분씩 보장돼 있는 휴식시간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휴식시간을 가진다 해도 근무지와 휴게실이 같은 곳이기 때문에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휴게시간은 임금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파트 경비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경비원 대부분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50대에서 60대인데다 비정규직인 경비원들은 민원이 들어올 경우 심하면 해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격무에 시달리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지난 13일 H 아파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용불안이 경비원들을 격무에 시달리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근로계약서에 민원이 들어오면 해고를 당하게 돼있다. 모든 업무를 하지만 계약서에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라고 되어 있다. 계약서상으로는 업무가 경미한 것으로 돼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은평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경비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서 고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갑-을 관계를 넘어선 ‘병’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근로기준법 보호를 온전히 받지 못한다. 1일 8시간 및 주 40시간의 근로시간과 연장근무로 인한 가산 수당 등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비노동자는 중식과 석식 시간이 임금 산정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근무지가 곧 휴게실이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휴게장소가 업무장소에서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으면 사실상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례도 있다. 주민의 안전과 편의가 경비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대가로 보장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과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고 강조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무인경비업체 직원도 서글프다 비상벨 눌러 가보니 속옷차림 업소녀 “놀다가~” 빌라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나 고급 아파트의 경우는 고령의 경비원을 채용하는 대신 무인경비 업체를 통해 전문 경비인력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큰 무인경비업체의 경우 대부분이 무술 유단자로 이루어져 있고 감시, 순찰 업무 외 잡무는 담당하지 않아 얼핏 처우가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도 나름의 애환이 있다고 토로한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5분 대기조의 역할이다. 고객이 비상벨을 누르면 언제 어디서든 5분 내로 달려가야 한다. 고 씨는 “무인경비업체의 차량도 법적으로 비상차량으로 분류되지만 사람들이 길을 잘 비켜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5분 내 도착이 어렵지만 급한 마음에 무리를 하다 보니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사고가 날 경우 사고 차량 파손비는 대부분 직원이 물어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 씨를 서럽게 하는 것은 일부 입주민들의 냉대였다. 고 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문 2개를 통과해야 했다. 한겨울에 한번 데스크를 지키다 너무 추워 잠시 몸을 녹이러 문 안에 서 있었는데 주민이 지나치게 나무라서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그걸 지켜보던 다른 입주민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핫팩을 한 박스 들고 와서 주고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무인경비업체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는 강남지역에서 근무했던 김 아무개 씨(42)도 당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특히 강남 유흥가에 나가는 ‘업소 언니’들이 모여 사는 빌라촌에는 유독 스토커들이 많아 진땀을 빼는 일이 잦았다. 김 씨는 “강남의 경우 스토커 때문에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체포를 할 권한은 없기 때문에 가서 현장을 정리하는 정도로 끝난다. 스토커들은 굉장한 집착을 보이는데 경찰에 매번 신고하기 미안한지 경비업체를 호출한다”고 설명했다. 밤새 일을 마치고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온 ‘강남 업소 언니’들을 달래 주는 것도 무인경비업체의 일이다. 김 씨는 “가끔 비상벨을 눌러 찾아가보면 ‘놀아 달라’고 하는 고객들이 있다. 놀리려고 하는 건지 속옷차림으로 문을 열어 당황시키는 경우도 있다. 술이 깰 때까지 문 앞을 지키고 현장을 정리하는 것도 경비업체 직원들의 일이다”고 털어놨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