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 참배를 거부했던 한 목사는 호텔에 감금돼 있다가 추방당한 사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기독교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북교류가 시작된 이래로 북한을 방문한 목사들과 장로들은 어림잡아도 10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독교 인사들의 방북은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하 조그련)’이라는 단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조그련’은 겉으로는 기독교 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기독교 인사들의 방북을 통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은 방북 인사들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 당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진 목사 사건을 계기로 목사들의 북한 방문 실상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제적 지원 실태를 추적해봤다.
1949년 생겨난 ‘기독교도연맹’을 모체로 하고 있는 ‘조그련’은 북한의 교단정치 기능을 장악해 왔는데 김일성이 종교말살정책을 추진하던 1965~1974년 기간에는 사라졌다가 1974년 재등장했다. 그 후 평양신학원을 개원하고,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을 시도하며 국제종교회의에도 참석한 ‘조그련’은 1990년대부터 남한 측 기독교계와 접촉을 시작했다.
북한을 다녀온 일부 목사들과 교계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그련’은 일종의 선전·선동기관이라고 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순수한 종교기구가 아니라 북한 정부의 한 정치기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연맹을 이끌고 있는 강영섭 목사 역시 북한 정부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북한 선교를 담당해온 한 단체의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말했다.
“북한 주민들의 복음화를 위해 많은 분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와 지원활동을 하는지 알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가 참 조심스럽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그련’이 애초부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한처럼 폐쇄적인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매번 인권문제가 빠지지 않고 거론되곤 하는데 인권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바로 ‘종교’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서 ‘조그련’을 설립했고 이를 공식적인 통로로 내세워 겉으로는 마치 주민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조그련’은 북한 정부의 한 기관으로 복음보다는 당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다.”
진 목사는 “‘조그련’에 전달한 돈은 5만 달러가 아닌 3만 8000달러로 다음 달 18∼20일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리는 ‘조국 평화통일 기원 남북교회연합 기도회’ 행사를 준비하는 비용”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동안 북한 정부의 산하기관에 건네진 돈이 공식행사 준비나 불쌍한 북한주민들을 돕는 데 사용된 적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에 진 목사가 ‘조그련’에 돈을 건넨 것과 관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북 목사 등을 통해 북한 측에 돈이 건네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교회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조그련’을 통해 전달한 돈은 무려 683억 원으로, 이후에도 매년 수십억 원씩을 지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북한을 다녀온 한 목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돈을 가져가지 않으면 북한에서 못 오게 한다”면서 “목사들 입장에서는 원활한 행사진행과 포교활동을 위해 달러를 소지하고 갈 수밖에 없다. 갈 때마다 달러를 강영섭 위원장에게 건네는 목사들을 상당수 목격했다. 개인이 얼마씩 소지했고 얼마를 건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목사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상당한 금전지원이 이뤄진 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의 증언을 한 목사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방북 목사들 사이에선 북한에 얼마간의 달러를 전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한 목사는 “국내 대형교회 목사가 북한의 과기대 설립과 군부대 전자통신사업에 막대한 지원을 했다”는 말까지 했다.
또 한 중견 목사는 “햇볕정책 아래에서 정부와 교계의 뜻있는 목사들이 나서서 많은 지원을 해왔지만 북측이 변한 건 하나도 없다. 그동안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방북을 해온 목사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연 무엇이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다른 교계 일각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멈출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민족 화합을 추진하고 동포를 돕기 위한 종교계 인사들의 그런 노력과 지원마저 없었다면 북측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을지 모른다. 형식적이든 그들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북한 땅에서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가 이뤄지고 기도회가 열린 것은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 대단한 성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방북 목사 등을 통해 북측에 건네지는 지원금이 북한 정부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교계 관계자들이 ‘조그련’을 통해 계속 교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측에서는 이와 관련 “한기총 측에서 북한선교에 대한 일정 부분을 지원·협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당 목사들이 소속된 교단들과는 별개다. 따라서 방북 목사 문제와 관련돼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직접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 북한 선교단체의 관계자는 “목사들의 방북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는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부분이고 어찌보면 월권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그들도 지원금의 상당 부분이 북한 정부로 들어간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그련’을 거치는 이유는 이 단체가 북한 측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적인 통로기 때문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방북 목사와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는 일부 목사들에 따르면 북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절을 하도록 강요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목사들이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참배를 했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에서 철저히 금기시하는 ‘우상숭배’나 ‘기독교적인 양심’ 문제를 떠나 이념적인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참배를 거부했던 한 목사는 호텔에 감금돼 있다가 추방당한 사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다녀온 뒤에도 일부 목사들은 후유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 동상 참배나 지원금 등을 거론하거나 공개적으로 문제삼았다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로부터 공갈과 협박을 당한 목사들도 있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북한에 대한 정부와 교계의 지원’을 비판했다가 수년 동안 감시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목사는 “북측에 ‘한국교계인명주소록’이 건네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한 적이 있는 자신은 소위 ‘적대 목사’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는 충격적인 말까지 했다.
방북 목사들을 통한 대북지원의 순수성과 부작용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종교계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부분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러지 않아도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에 이번 일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