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특기강사 A 씨와 친구 B 씨. 이들은 지난 4월 길을 가다 우연히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습득했다. 평소 컴퓨터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이들은 습득한 신분증을 자신들의 전공(?)에 맞게 이용할 방법을 논의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그 사람의 이름으로 온라인 중고물품 매매 사이트에 가입해 사진을 올려놓고 돈만 받아 챙기는 것이었다. 평소 온라인 거래의 특성을 잘 아는 이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수법이었다. 이들은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만들어 행동에 들어갔다.
온라인 매매사이트에 중고노트북을 판다고 매물 사진을 올리자 여러 사람으로부터 구매 요청이 왔다. 그 중 40만 원에 노트북을 사겠다는 정 아무개 씨에게 자신의 대포폰 번호와 통장번호를 가르쳐줬다. 판매자와 통화까지 한 구매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송금했으나 돌아온 것은 노트북 무게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가벼운 박스였다. 박스 안에는 쓰레기, 빈병, 기저귀 등이 있었고 심지어는 ‘볼일’을 보고 이용한 휴지까지 담겨 있었다.
A 씨와 B 씨는 이런 방법을 이용해 총 24명에게서 700여 만 원을 가로챘다. 혹시나 자신의 신분을 들통날 것을 우려해 중간에 대포통장은 4번, 대포전화는 6회에 걸쳐 변경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혀 2개월이 넘는 도피 끝에 검거됐다.
수사결과 피해자들 중 상당수의 여성들은 사기를 당하고서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노출된 만큼 보복당할까봐 신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피해자는 “신고 후 집에 소포가 배달될 때면 무엇이 들어있을지 몰라 두려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대포통장을 4개나 개설하는 동안 모든 은행에서 신분증의 사진과 본인 사진을 대조해보지 않은 것도 기가 찰 노릇”이라며 “관련법만 있으면 같이 잡아넣고 싶다”고 말했다.
이 형사는 이번 사건에는 첨단 수사 기법이 동원됐기 때문에 검거 경위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 사이버수사대가 첨단 기법을 동원했을 정도로 스물두 살 청년들의 범죄수법은 교묘했던 셈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사문서 위조, 사기, 공문서 부정행사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주운 신분증으로 수백만 원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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