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먹계의 대부로 불렸던 조일환 씨가 25일 천안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 | ||
지난 17일 조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동대문 인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복도 저편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들어가보니 그곳에서는 홍성선 목사의 인솔하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거구의 노인이 눈에 띄었다. 바로 조 씨였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때마침 조 씨가 선교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얼마 전 새로 마련한 사무실의 개업예배가 있던 날이었다. 이 자리는 일주일 후 있을 조 씨의 목사임직을 위해 교회 관계자들이 특별히 마련한 자리기도 했다.
주먹계에서 손을 씻은 후로 조 씨는 전도와 청소년 선도활동에 앞장서왔다. 그는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거나 발을 들여놓으려는 청소년들을 일일이 만나고 다니며 화려함 뒤에 숨겨진 조직의 어두운 실상 및 그 비참한 말로에 대해 생생히 증언해왔다. 특히 조 씨는 전국 곳곳에서 일진급 학생들을 데려다가 그가 속해 있는 전국무술인연합회원들과의 2박3일간 합숙을 통해 조직생활의 이중성과 실상에 대해 깨우쳐주는 ‘범죄체험센터’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주먹계의 대부’ ‘천안곰’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갱생의 길을 걸어온 조 씨지만 일흔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개과천선을 했다지만 전직 보스와 목사는 쉽게 매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 씨는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
조 씨가 늦은 나이에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적잖은 고난과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비참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던 그가 주먹 하나로 전국을 평정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그가 늦은 나이에 주변의 모든 유혹을 떨쳐버리고 새 삶을 선언하는 데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민족적 울분을 토하며 33명의 ‘아우’들과 함께 손가락을 자르는 일명 ‘단지 시위’를 단행하기도 했던 그는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등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특히 새 삶을 선언한 후에도 좀처럼 멈추지 않는 수사기관의 감시는 그의 숨통을 옥죄었다고 한다.
처음 성경을 접하게 됐던 당시에 대한 조 씨의 회고는 이렇다.
▲ 조일환 씨가 청소년범죄예방과 교도소 교화를 목적으로 내놓은 홍성의 1만여 평의 대지와 그 위에 세워진 목회자수양관. | ||
조 씨는 출소 후에도 과거 조직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 재미’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세상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욕심이 많다보니 이런저런 사업을 했고 그 와중에 여러 문제에 얽혀드는 바람에 수감생활도 반복됐다.
하지만 조 씨를 기독교에 귀의시키려는 주변의 노력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 번째, 2004년 수원 구치소에서 1평 남짓한 독방에 수감됐을 때 조 씨는 그간의 삶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회개하게 됐다고 한다. 고혈압과 당뇨, 협심증 등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절박한 시점이었다. 성경책을 끼고 살며 기도를 하던 조 씨는 그 후 건강회복과 가석방이라는 기적 같은 일들을 체험하게 되고 신앙인으로서 새출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목사가 되면 조 씨가 가장 역점을 둘 분야는 바로 전도다. 그는 “사실 현재도 조직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이 셀 수 없이 많아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우들만도 1만 5000여 명이니까요.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로서 너무 안타까워요. 이들이 바로 일차적인 전도대상입니다. 쉽진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는 ‘청소년범죄예방’과 ‘교도소교화’를 체계적으로 펼칠 겁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 씨는 이 일을 위해 오래 전부터 적잖은 사비를 들여 준비를 해왔다. 그 중 하나는 홍성에 조 씨 소유로 된 1만여 평의 대지를 기꺼이 내놓은 것이다. 아무리 뜻있는 일을 위해서라지만 최소 200억 원이 넘는 재산이기에 상당한 고민을 했다는 것이 조 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교회 권사인 아내는 기꺼이 호응해줬지만 자제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는 게 조 씨의 얘기다.
조 씨는 “이 땅은 사실 내가 노후를 위해 별장이나 지을까 해서 마련해 둔 것이에요. 하지만 지난날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물욕을 버리고 헌납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우선 젓갈백화점을 차리려고 건축해둔 1000평 상당의 3층짜리 건물을 아무 조건없이 내놓았죠. 이곳은 은퇴하신 원로목사님들과 오갈 데 없는 무임목사님들을 모시는 ‘목회자 안식의 집’으로 사용할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조 씨는 또 “청소년범죄예방 및 선도사업을 담당하게 될 ‘청소년 평화의 집’도 거의 완공상태에 있다”고 덧붙였다.
조 씨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후원해 온 군산호렙산교회 홍성선 목사는 “오랜 주먹생활로 쌓아온 선·후배 등 수많은 인맥들이 이제는 조 씨가 전도해야 할 대상이다. 조 씨가 과거에는 ‘주먹왕’이었지만 이제 ‘전도왕’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어두운 과거는 그가 남은 생을 정말 가치있게 살아가는 데 더없이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라며 강한 기대를 나타냈다.
불과 17세 때 주먹과 배짱 하나로 주먹계를 평정했던 조 씨는 “이제는 주먹들도 과거처럼 살아선 안된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새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