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육영재단의 운영권 분쟁은 당사자들간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간단히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설명을 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 이런 가운데 기존의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측근들과 함께 일했던 인사들이 박 회장 측과 갈라서면서 잇따른 폭탄발언을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나름의 근거들을 내놓고 있어 사건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밥그릇을 빼앗겼기 때문에 이를 되찾으려는 반작용’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찌됐든 박 회장 측 입장에서는 일종의 내부 고발자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이 된 셈이다. 박 회장은 이로 인해 향후 재단 운영권 행사에도 제약을 받을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제2 라운드를 맞은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을 취재했다.
2008년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8일 저녁 11시.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재단직원들은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지금 빨리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재단회관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야 했다. 박지만 회장 측에서 ‘용역’들을 동원해 재단회관을 점거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직원들이 80여 명. 이들은 회관 출입문을 승합차로 봉쇄하고 소화전에서 호스를 끌어다 배치하는 등 몸싸움에 대비했다. 같은 시각 박근령 전 이사장도 이사장실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밤새 회관을 지켰지만 온다던 용역회사 직원들은 결국 오지 않았다. 다만 회관 서편 주차장에 용역회사 직원들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게 확인됐다. 재단 직원은 “수싸움에서 밀릴 것을 우려해 아예 시도 자체를 포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음날 오전 9시에는 몇 명의 용역회사 직원들이 들어와 “현재 직원들의 재단 점거는 불법”이라는 내용의 유인물만 뿌리고 갔다.
대법원이 박근령 전 이사장에 대한 성동교육청의 이사장 승인 취소 신청에 대해 적법하다는 최종 판결을 내리고, 동부지방법원이 9명의 임시이사를 선임했음에도 이처럼 육영재단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일로를 치닫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들이 입장을 바꾼 탓이 크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박지만 회장의 측근인 정 아무개 씨를 도와 육영재단 접수에 일조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지난 2007년 11월에 있었던 물리적 충돌을 주도해 박근령 전 이사장을 내쫓고 육영재단 요직을 꿰차고 앉았으나 얼마 후 박 회장 측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지금은 되레 박 회장 측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10일자로 동부지검에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과 관련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의 핵심 내용은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은 박지만 회장의 주도로 2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며 △박 회장 측 인사들이 용역 및 폭력배들을 동원해 재단을 불법으로 점거했고 △임시이사 선임과정에서 공무원들과 사전 모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실들에 본인들도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고 시인하고 있다. 진정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중에는 일종의 양심선언이라 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데다, 박 회장과 인척 관계에 있는 인물이 진정서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돼 박 회장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2007년 11월 28일 첫 번째 물리적 충돌이 있던 날, 육영재단에 있었던 A 씨(위). A 씨는 현재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사건 이틀 전 용역들을 동원하기 위해 박지만 회장의 비서실장 정 씨가 전세버스 기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2007년 11월 28일 동원할 용역과 관련 | ||
모임에 참석한 11명에는 박지만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 아무개 씨, 정 씨의 선배이면서 정 씨와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건설사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 정 씨의 고등학교 후배 황 아무개 씨 등이 포함돼 있었으며 모임을 주도한 것은 정 씨였다는 것. 이 자리에서 정 씨는 용역들을 동원하기 위해 1인당 500만 원을 모금할 것을 제안했고 이 돈은 나중에 육영재단을 접수한(?) 후에 재단 월급을 통해 돌려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중 몇 명은 300만 원에서 500만 원가량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중 상당액이 3일 뒤인 28일 육영재단을 점거하기 위해 동원한 한센인들의 용역비 및 버스 대여료로 사용됐다는 것이 당시 모임 참가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돈을 낸 사람들의 통장에는 몇 달 뒤 육영재단에서 월급 명목으로 수백만 원이 입금된 사실도 확인됐다.
용역들이 동원돼 재단 직원들이 쫓겨난 후 25일 모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육영재단에 새로 간부로 채용되거나 승진했다.
또한 용역들을 동원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A 씨는 이후 박지만 회장 측에 의해 재단 고문으로 선임됐으며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A 씨는 28일 당일 육영재단 다툼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현장 사진에서도 A 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박근령 전 이사장은 실질적으로 육영재단 운영권을 박 회장에게 넘겨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박 회장이 육영재단을 운영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없었다. 사법부가 박 회장에게 육영재단의 실질적인 운영권을 부여한 것은 지난해 11월 박 회장이 추천한 임시이사 9명을 동부지방법원이 받아들이면서부터다(<일요신문> 863호 보도).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박 회장의 측근이었던 인사와 재단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용역 동원을 위한 사전 모의에 가담했고 현재 육영재단 감사실장인 황 아무개 씨는 “박 회장 측의 인사를 임시이사로 선임하게 된 근거가 된 3억 4200만 원에 대한 채권자로서의 자격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이 2008년 2월 어린이회관 기관장이었던 김 아무개 관장에게 빌려줄 때 썼던 3억 원의 차용증에는 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와 있지 않고 이 돈이 실제 육영재단 통장에 입금되지도 않았다는 것. 또한 당시 관장으로 취임한 김 전 관장도 “자신은 박지만 회장의 임명을 받았다”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할 만큼 둘 사이는 일종의 특수관계인이라는 게 육영재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채권자도 불분명한 데다 빌려줬다 하더라도 이 돈이 재단 통장에 입금된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횡령일 뿐 재단과 채권·채무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이에 따라 박 회장이 채권자로서 임시이사를 추천한 것은 애초부터 무효라는 주장이다. 현재 육영재단 경리부장은 김 전 관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황이다.
또한 재단 직원들은 박 회장이 법원에 신청한 임시이사 9명의 명단 중 5명이 2007년 1월 성동교육청이 법원에 제출한 명단과 같다는 점을 근거로 박 회장 측과 성동교육청과의 커넥션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단 접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입장을 뒤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모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박근령 전 이사장으로는 재단 운영이 불가하다고 생각해서 모의에 참여했으나 일이 성사되고 나니 자신들의 원래 측근만 갖다 앉히고 정작 원래 재단 직원들은 헌신짝 버리듯 내팽겨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박지만 회장 측 인사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반론을 듣기 위해 취재 과정에서 정 아무개 실장과 통화했으나 “재단직원이 아니어서 육영재단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 실장의 선배로 알려진 이 아무개 사장은 “(박 회장의 친인척) 박 씨 등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자신이 횡령 등으로 궁지에 몰리니까 박근령 이사장을 끌어들여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당시 (폭력) 사건에 박 회장이나 정 실장은 아무 연관이 없으며 모든 일은 박 씨가 꾸민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만 회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서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하고 문자메시지 등을 남겼으나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현재 육영재단 직원들은 얼마 전 선임된 임시이사들이 박지만 회장의 꼭두각시라며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또한 박 회장 측 인사들이 폭행 및 횡령 등으로 고소를 당한 상황이라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은 당분간은 마무리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육영재단 관계자들은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성동교육청의 책임이 크다고 보고 180억 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