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새벽 경찰의 강제진압작전 중 화재로 여섯 명이 사망했던 용산 참사 현장. 폐허가 된 건물이 참혹했던 당시를 보여 주는 듯하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이번 참사를 부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의 진술이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경찰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과격시위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철거민들은 합당한 보상없이 진행된 몰아내기식 철거 작업과 경찰의 과잉대응이 원인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놔도 정치권의 비난은 피해가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착공을 앞당기기 위해 지자체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용산참사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쟁점들을 쫓아가봤다.
1 대기업 입김설 부상
사태를 빨리 수습하기 위해 경찰 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했다는 것은 경찰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도심 시위에서 몇 년 만에 화염병이 등장하는 등 사태가 커질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경찰 투입이 너무 이른 감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세입자들은 공권력 투입에 앞서 충분한 설득작업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철거민들이나 야권에서는 무엇 때문에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을 서둘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시공사들의 로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화재가 난 건물 일대의 용산 4구역은 총 3개의 대형 건설사가 시공 사업을 벌이고 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중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던 한 건설사가 관련 공무원들에게 공사를 빨리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이 건설사는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권가 정보통들 사이에선 한때 부도설까지 나돌기도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 건설사는 철거민들 때문에 분양시기가 늦춰지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철거 재개발의 경우 공사 기간을 상당히 늦춰 잡는 것이 건설업계의 일반적 관행이다. 하지만 이 건설사는 자금 유동성 문제로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모종의 로비를 해 공사를 앞당기도록 관련 공무원들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령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부의 이 같은 주장은 진위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로비설에 등장하는 아무개 공무원은 모 건설사에서 오랫동안 임원을 지냈던 ‘건설맨’ 출신이라고 한다. 특히 그는 인허가와 관련된 핵심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주장.
검찰도 이런 내용을 이미 인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수사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경찰 조기 투입에 대해 김석기 내정자는 국회 행자위에 출석해 “점거농성자들은 경찰뿐 아니라 도로행인을 향해서도 화염병 염산병 벽돌 등을 무차별 투척했다”며 “시간을 지체하면 무고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해서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 불 어떻게 시작됐나
도대체 불은 어떻게 옮겨 붙은 것일까. 이번 참사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시위를 벌인 철거민들과 경찰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에서 시작된 불이 망루에 있던 시너통과 LPG 가스통으로 옮아가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선 철거민과 경찰 모두 부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철거민 측에서는 “시너에 불이 옮아 붙은 것은 전적으로 경찰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철거민 천 아무개 씨(45)는 “망루에서 철거민들이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그런데 그 화염병이 물대포에 맞고 튕겨서 시너 쪽으로 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자신들이 준비한 화염병이 불씨가 된 것은 맞지만 물대포를 사용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더 직접적인 불씨가 됐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세입자인 임 아무개 씨는 “무력진압 과정을 녹화한 영상이 있다”며 “그것을 보면 처음 불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영상도 망루 내부의 상황은 나와 있지 않아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 측에서는 망루에서 대치중이던 철거민들이 경찰 쪽으로 시너를 뿌린 뒤 화염병을 던졌는데 그 불이 망루 내부에 있던 시너 통으로 옮아 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청에서는 지난 21일 철거민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성명서를 내고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의 불길이 외벽에 옮겨 붙었고 망루로까지 번졌던 것”이라며 “철거민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경찰특공대원 김양신 경사도 21일 “발화되는 순간을 직접 봤다. 망루 3층에서 2층으로 던져진 화염병 2개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불이 붙어 크게 번진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 일부 목격자들 사이에서는 철거 용역회사 직원들이 농성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건물 3층에서 폐타이어와 나무를 태운 것이 대형화재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 22일 사건 당시 건물 옥상 망루 안의 농성자들이 갖고 있던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났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망루 안으로 진입해 검거작전을 벌이자 철거민이 위층으로 쫓겨가는 과정에서 불이 붙었다”며 “쫓기면서 화염병을 실수로 떨어뜨렸거나 무의식적으로 던졌을 수도 있지만 화재의 책임은 분명 망루에 있던 농성자들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3 전철연이 노하우 전수?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가 이번 사건에 얼마나 개입했느냐도 초미의 관심사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중앙지검에서는 실제 이해관계가 있는 세입자들과 이번 사태를 확산시킨 전철연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일보>는 지난 21일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이 지난 19일 건물기습 점거에 앞서 인천 남구 도화동에서 망루를 설치하고 점거농성을 벌이는 예행연습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서울중앙지검에 구성된 ‘용산참사’ 수사본부(본부장 정병두 1차장)가 이달 초 인천 도화동에서 용산 철거민들이 전철연 측으로부터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는 요령을 배우고 경찰의 진압작전에 대항하는 방법까지 ‘예행연습’을 했다는 한 철거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검찰은 또 철거민들이 지난 15일 용산 재개발지역 N 빌딩을 점거하려고 했지만 장비 부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일정을 늦췄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전철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전철연 관계자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사건 현장에서 만난 전철연 관계자들은 취재협조를 구하는 기자들에게 ‘어느 신문 기자인가’를 자주 확인했으며 취재에도 거의 응하지 않았다. 또한 사건 현장 뒤편에 위치한 4구역 대책 사무실에 대한 출입도 통제하고 있었다. “대언론 창구를 단일화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취재진들은 대체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의견을 보였다.
전철연의 개입 여부와는 별개로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도 검찰이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특히 경찰의 주장대로 철거민의 대응이 실제로 위협적이었는지와 철거민들에 대한 충분한 사전 설득작업이 이뤄졌는지 여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게 야당 측의 지적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