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한인회장에 대한 자격시비가 일고 있다. 사진은 취임사를 하는 김 회장의 모습. | ||
이런 가운데 교민 2만 5000명이 살고 있는 태국에서 최근 신원이 불분명한 인물이 한인회장에 당선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태국 현지 교민들은 ‘한인회장은 앞으로 정치적으로 주목되는 자리인데 신원이 불확실한 인물은 문제가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태국 교민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임 한인회장 자격시비에 대해 취재했다.
태국 한인회는 1964년에 만들어진 제법 유서가 깊은 단체로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등 전임 대통령들도 방문한 바 있다.
태국 한인회 정관에 따르면 한인회장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입후보할 수 있다. 한인회장은 후보등록과 선거운동 기간을 거친 후 100여 명으로 구성된 한인회 대의원 선거인단의 투표로 선출된다. 40년이 넘는 동안 별 물의없이 회장을 선출해오던 한인회가 지난 12월 선거에서 잡음에 휩싸였다.
후보등록 전만 해도 연임이 유력했던 전임 회장이 출마를 포기하는 바람에 여러 명이 출마 의사를 밝혀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선거전이 될 것으로 교민사회는 기대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이 후보등록을 했고 결국 단독출마한 그 후보가 투표 없이 회장에 당선됐다.
회장에 당선된 인물은 16년 전 태국으로 건너온 김 아무개 회장. 김 회장은 오래 전 태국 땅을 밟았으나 주류 한인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태국 태권도 협회 등 일부 직능단체에 이름을 내건 적이 있긴 했으나 김 회장이 태국 내 한인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한인회 회장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다.
문제의 발단은 김 회장이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태국국적(태국주민번호 3 5XXXXXXXX 8XX)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후보자격이 없는 인물이 회장에 당선된 셈이다. 엄밀히 따지면 태국사람이 한인회장이 된 셈.
태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태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영주권을 획득한다 해도 큰 혜택이 없기 때문에 주로 ‘워크퍼밋’을 발급받아 생활하고 있다. 시민권 및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2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인회 측은 단독출마인 데다 김 회장의 생김새나 말투 등으로 봐서는 한국 사람이 분명해보였기 때문에 김 회장의 신원에 대해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특별히 신원조회 등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이 당선된 이후 교민들 사이에서 김 회장이 태국국적 소유자며 따라서 한인회장이 될 수 없다는 자격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또한 김 회장에 대한 갖가지 투서가 한인회에 날아들었다. 선거과정에서 출마할 의사를 드러낸 다른 사람들을 협박했다는 소문도 그 중의 하나. 김 회장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김 회장에 대한 제보를 여러 차례 받은 <일요신문>은 ‘그런 일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태국 한인회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돼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 놀랍게도 대한민국 전산망에는 김 회장에 관한 자료가 없었다. 국내에 살다가 외국으로 이민을 간 경우에도 과거 본적 등이 남아있는 법인데 김 회장의 자료는 아예 찾을 수 없었다.
김 회장이 실수를 했을 수도 있지만 후보등록 때 제출한 중요한 자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따라서 김 회장이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기입했거나 아예 대한민국에 살았던 적이 없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 같은 연유 때문인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김 회장이 ‘대만 국적을 가지고 밀입국했다’ 혹은 ‘한국에서 전과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정체를 숨기고 다닌다’는 식의 황당한 소문마저 돌았다.
김 회장이 관련한 의문은 이뿐만 아니었다. 태국 현지 교민인 A 씨는 “김 회장이 데리고 다니는 사람 중 상당수가 ‘건달’이었다”고 주장했고 그는 또 “김 회장은 특별한 직업도 없으면서 돈을 물 쓰듯 했다”고 전했다.
“이번 회장선거에서도 대의원에게 적지 않은 돈을 뿌렸으며 태국국적도 돈으로 취득했다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현지 사정기관 파견 직원에게 상당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자연스럽게 김 회장의 ‘돈줄’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으나 그와 관련해선 확인된 사실은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소문이 한인회장 내부의 파벌 다툼에서 벌어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선거 후 한인회 주도세력이 갈리면서 불만을 품은 세력이 지나치게 소문을 확대시킨다는 주장이다. 태국국적 취득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다음은 한 태국 교민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다.
“특히 이번에 단독출마로 신임회장이 되신 김○○ 님은 각종 악성루머와 반대로 고전을 겪다가 많은 교민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일을 맡게 된 분이다. 그동안 한국의 일류대학 혹은 주재원 출신의 점잖은 교민회장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당선된 김 회장님은 태권도를 하신 분으로 학력이 짧다. 한때 건달이었노라고 출마 당시 솔직하게 시인하기도 했다. 적법한 방법으로 성실하게 일해서 성공한 기업인이다. 태국국적 취득에는 사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김 회장 측 관계자는 “김 회장이 한국을 떠나온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과거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김 회장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는 인사들이 신분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한인사회에서는 이유야 어쨌든 한인회장의 신분이 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A 씨는 “한인회장은 대통령이 태국에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나아가 영접하는 인사라는 점에서 신원 등이 확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신원과 과거 행적이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오는 4월 아세안 정상회담 차 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A 씨는 “김 회장에 대한 갖가지 소문이 설사 한인사회의 파벌 다툼이 빚어낸 음해성 루머라 할지라도 신원이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 부분 만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미연에 차단하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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