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매출 1조 원에 고용인원 4000명. 출범 11년째를 맞는 강원랜드의 현 주소다. 빠른 성장 이면에는 갖가지 잡음도 적지 않았다. 잇따른 비리 사건으로 인해 ‘비리랜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정권 교체기에는 으레 낙하산 논란이 강원랜드를 흔들었다. 지난해 임명된 임원들도 대부분 정치권의 외풍을 타고 내려온 인사들이었다.
강원랜드 관계자들은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잡음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강원랜드의 고질적인 병폐가 무엇인지 집중 해부해봤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케너텍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검찰의 전방위적인 비리 수사를 받은 것을 비롯해 감사원 감사, 사행성통합감독위원회의 총량규제,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금폭탄 등 각종 내우외환에 휩싸이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강원랜드 내외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강원랜드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계파 간 갈등이나 낙하산 인사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조만간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원랜드 전·현직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강원랜드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에서 부는 외풍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카우’인 데다 임직원들의 급여 수준이 높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떨어지는 낙하산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라고 한다.
강원랜드 한 직원은 “가만히 있어도 수익이 저절로 나다보니 전문성 등이 없어도 쉽사리 적응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유독 낙하산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낙하산 인사는 곧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가 아니면 입사 초창기 멤버라고 해도 임원진으로 승진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2000년 스몰카지노 개장 뒤 뇌물수수(12명)와 수표 절취(4명), 대마초 소지 및 흡연(2명), 회사기금 유용 및 횡령(4명), 카지노칩 절취(1명), 불법 도박장 개장(1명) 등 각종 범죄로 구속 기소된 직원만 26명에 이른다.
정권이 교체되면 강원랜드에는 대규모 낙하산이 투하된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측이 전리품을 챙기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지난해 3월에도 임원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강원랜드 이사진 17명 가운데 사내 이사는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관료 출신과 지역유지 등으로 정치권에 줄을 대 내려온 사람들이다. 특히 이 중에는 현 정권 최고 실세들의 줄을 타고 내려온 낙하산 인사도 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카지노 산업에는 ‘비전문가’들이다. 임원 구성이 이렇다 보니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임원진은 물론 팀장이나 과장급까지 정치권이나 정부의 입김이 거세다. 지난 6월에는 2007년 대선 당시 여당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 2명이 부장급과 상무급 인사로 임명됐다.
레저 관련 연구활동을 책임지는 자리에는 대선 당시 충북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정보기관의 고위 공무원 출신이 취임했다. 공개모집과 인사위원회라는 절차를 거치지만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비단 현 정권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도 낙하산 인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외풍이 워낙 심하고 그 영향이 직원들에게까지 미치다 보니 직원들도 능력보다는 줄대기를 잘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줄대기는 곧바로 파벌싸움으로 이어진다. 일단 전선이 형성되면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각종 ‘카더라’ 통신과 투서가 난무한다.
“강원랜드의 가장 큰 문제는 카더라통신이다. 별의별 소문이 다 있기 때문에 본인이 보고 듣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직 강원랜드 직원이 한 말이다. 상대 계파를 죽이기 위해 없는 말도 만들어서 사정기관 등에 흘리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가령 한 임원이 어떤 사업을 추진하면 이 임원과 반대 계파에 있는 인사들이 ‘저 임원이 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한다. 실제로 강원랜드와 관련된 투서의 대부분이 ‘아무개 의원이 모 업체에 금품을 받고 특혜를 줬다’는 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케너텍 비자금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임직원들이 기소되기는 했지만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은 없었다는 것이 수사 기관의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던 것은 정적을 죽이기 위해 일부 비리를 과대포장해 사정기관에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욱철 의원(무소속·강릉)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최 의원은 강원랜드 상임감사로 재직하던 시절 지역건설업체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 역시 조직 내 특정 세력이 최 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흘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음해와 투서는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도 난무한다. 다음은 상대 계파의 조직적인 음해를 받고 검찰 수사 일보직전까지 갔던 한 직원의 말이다.
“검찰이 선거법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했는데 나를 따로 불러 ‘본인 이름으로 만들어 배포한 무료쿠폰이 있지 않느냐’며 다그쳤다. 물론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검찰과 함께 확인작업을 해보니 나를 음해하는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된 쿠폰을 만들어 이를 검찰에 흘린 것이었다.”
최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아무개 의원실에 강원랜드 내부직원의 횡령과 관련된 투서가 접수됐다. 강원랜드 매출액이 감소될 정도로 내부 직원의 횡령이 심각하다고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투서에는 “1년에 수억 원의 돈을 횡령한 직원들은 외제차를 타고 명품을 구매하는 등 사치행위가 가관이다” “해외 원정도박까지 횡행해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 등의 말까지 실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투서는 지난해 말 국회에 떠돌던 강원랜드 비리 관련 투서에 이어 두 번째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강원랜드 안에는 7개 이상의 계파가 존재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강원랜드는 이들 계파가 각종 이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장이라는 것.
이런 고질적인 병폐는 워낙 오래되고 뿌리가 깊어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개선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강원랜드는 각종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근절 대책을 부르짖고 있지만 조직을 재정비하고 기업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달라지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흘러나온다.
계파 싸움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사장도 임원도 ‘단명’하기 일쑤다. 계파 간의 전쟁을 뚫고 연임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권에서도 전 정권이 임명한 인사들이 황금알을 낳는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리도 만무하다.
실제로 강원랜드의 낙하산 논란은 조만간 또 불거질 전망이다. 현재 조기송 사장 후임으로는 2명 정도가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 유력한 인물이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산하기관의 대표를 지낸 인사라고 한다.
주변의 우려대로 이 인사가 실제로 사장에 임명된다면 강원랜드는 또 한 번 거센 낙하산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폐광촌 일대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강원랜드. 하지만 현재의 강원랜드는 내부적으로는 대선 승리의 전리품처럼 돼버렸으며 외부적으로는 많은 도박 중독자를 만들어내 그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대대적인 수술만이 강원랜드를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현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