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포항시의원이 기업체 비상근 임원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고액 연봉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포항시의회 본회의장 모습. | ||
조사결과 이들 시의원은 ‘사장 보좌역’ ‘명예회장’ ‘감사’ ‘고문’ 등의 다양한 직함으로 등재돼 있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들이 주로 하는 역할은 대외적인 영업보조 및 중재, 자문역할정도다. 매일 출근도 하지 않을 뿐더러 회사 업무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 도움을 주는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의원들이 받는 연봉은 정상적이라고 봐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많다. 자신들의 ‘본업’으로 받는 의정 활동비보다 훨씬 높아 배보다 배꼽이 큰 실정이다. 기업 수준으로 볼 때도 시의원들이 받는 ‘과외 연봉’은 회사 업무에만 ‘올인’하는 직원들의 연봉을 훨씬 뛰어넘는다. 기업 측에서 시의원이라는 직위를 의식해 필요 이상의 대우를 해주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A 의원은 프로필에 철강 재가공 및 유통업체인 N 사의 CEO를 맡고 있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N 사 홈페이지에 등재돼 있는 대표이사는 A 의원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다. 이에 대해 N 사 관계자는 “A 의원은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다. 비상근 임원으로 2003년부터 명예회장 직함으로 등재돼 있다. 출근은 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 대외적으로 영업 등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A 의원은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일에 크게 개입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 의원이 출근도 하지 않고 받는 연봉은 6000만 원으로 확인됐다.
포스코 주력 계열사인 P 사에서 사장보좌역으로 등재돼 있는 B 의원도 구설수에 올랐다. 역시 출근을 하지 않는 비상근임원직으로 2007년부터 사측으로부터 2억여 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P 사 관계자는 “B 의원은 이전에 상임감사로 3년이나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회사 실정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업무 특성상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 쉬운데 회사와 지역 주민들 간 중재역할을 하는 데 B 의원이 적임자라고 판단해서 영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B 의원이 이름만 올려놓고 고액 연봉을 챙긴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그는 “회사와 주민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B 의원이 사안이 생길 때마다 객관적 위치에서 협상하고 중재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감이 훨씬 적다”며 “회사 입장에서 볼 때 B 의원은 높은 연봉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그런 걸 인정하더라도 2억 원이란 연봉은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며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포항지역 스포츠 구단 사장 보좌역을 맡고 있는 C 의원 역시 비상근직이지만 1억 5000여 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항시는 이 구단에 매년 2억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때 구단 지원금의 갑작스런 증액 배경을 둘러싸고 C 의원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C 의원은 “구단 지원금이 늘어난 것은 스포츠를 통해 포항시를 홍보하기 위해 광고비를 늘렸기 때문”이라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역의 쟁쟁한 체육인들을 제치고 C 의원이 오랫동안 이 구단에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해선 여전히 말들이 많다.
기업의 비상근 임원으로 등재된 시의원들이 억대의 연봉을 받는 것에 대해 여론의 반응은 차갑다. 그들이 시의원이 아니었어도 기업에서 과연 그런 수준의 대접을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의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며 도입한 지방의회 의원 유급화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포항시 시의원의 연봉은 3699만 원이다. 별도로 지급되는 식대 및 부가 경비를 합하면 4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시의원들은 의원직 외에도 본업을 따로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정활동비 외에도 또 다른 생업수단으로서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실련 측은 우선 일부 시의원들이 기업의 비상근 임원직으로 활동하는 것은 생업유지 차원의 ‘투잡’ 개념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못 박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본업을 따로 갖는 건 문제될 게 없지만 비상근 임원직의 경우 사실상 하는 일 없이 이름만 올려놓고 꼬박꼬박 고액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의정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포항경실련 이재형 사무국장은 “이는 포항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고액 연봉을 받고 기업에 비상근 임원으로 활동할 경우 관련 기업의 문제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이익보다 회사 측에 유리한 쪽으로 힘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 사무국장은 기업들이 시의원들을 영입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사’ 또는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보험’의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의원들의 기업 비상근 임원직 등재현황에 대한 공식자료는 없다. 포항 경실련 측은 “시의원들이 돈을 끌어모은다는 얘기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어 시의회 측에 여러 번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일부 의원들의 행태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고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실태에 대해 몇 차례 조사하려 했지만 시의원들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좁은 지역사회다보니 일부 내용들이 삐져나와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부인이나 가족 명의로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감투를 쓰고 돈을 끌어모으는 시의원들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포항시의회는 경기불황에도 지난달 ‘관광성 해외연수’를 떠나 빈축을 산 바 있다.
당시 시예산 2250만 원을 들여 하수 슬러지 처리와 관련한 선진시설을 견학한다는 명목으로 시의회 건설위원회 소속 의원 10명과 공무원 등 모두 15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의 4대 도시를 방문했지만 정작 견학에 배정된 시간은 3시간 30분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말썽을 빚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