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민주노총 충격 보고서> 출판 보고회에서 저자 고 권용목 대표의 부친인 권처흥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위). 같은 날 민주노총 건물에서는 ‘민주노총 혁신 대토론회’가 열렸다.(아래) 임영무기자 namoo@ilyo.co.kr 이종현기자 jhlee@ilyo.co.kr | ||
같은 날 오후 2시경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는 이색적인 출판보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을 지낸 고 권용목 씨가 사망하기 직전에 탈고한 <민주노총 충격 보고서>라는 제목의 책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 민주노총에 직격탄을 날렸던 것. 권 씨는 이미 지난 1996년 민노총을 떠난 인물로, 지난 2006년 이후 뉴라이트 계열의 뉴라이트신노동연합을 창립해 상임대표로 활약해왔다. 진보 대 보수의 색깔론적 관점에서 보면 권 씨는 이미 진보에서 보수로 배를 갈아탄 인물이다.
그러나 권 씨가 민노총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민노총의 핵심 멤버이자 혁명적 노동운동가였다는 점에서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난 민노총 내부의 문제점들은 귀기울일 대목도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씨가 작심하고 쓴 민주노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고서의 핵심내용을 발췌했다.
#비위사건들
권 씨는 이 책 첫 장에서부터 ‘부패백화점 민노총’이란 제목을 달고 민노총의 비위 사건들에 대해 상세히 열거하고 있다. 대부분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사안들이다. 첫 번째 거론한 사건은 민노총이 탄생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발생했던 ‘재정위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민노총의 재원을 맡아 관리하던 재정위원회가 예산 5억 2000만여 원을 횡령해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원금까지 날려버린 사건이다.
권 씨에 따르면 이 사건이 불거질 무렵 민노총 내부에서도 “지도부까지 포함된 몇 명이 대형사고를 쳤다더라”는 말이 있었지만 대부분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참담했다.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고 몇몇 간부들이 위장회사까지 설립한 사실이 드러난 것.
그러나 민노총은 ‘제 식구 감싸기’와 ‘동지’ 의식을 발휘해 이 사건을 단순 실수로 처리했다고 한다. 일부 손해를 변상하는 선에서 사건을 대충 마무리지었다는 것.
이에 대해 권 씨는 재정위 사건을 대충 덮어버린 탓에 10년이 지난 지금은 하부의 노조들까지 흠뻑 물들어 추악하게 변해갔다고 설명하고 있다.
권 씨는 그 대표적인 예로 민노총 파업비용을 들었다. 거의 묻지마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권 씨의 주장. 권 씨는 “20억~30억 원은 큰돈이 아니다. 심지어 50억 원까지 사용한 조합도 있다”며 “투쟁용 조끼, 셔츠 등 쟁의 용품을 둘러싼 비리 등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한다.
또 관리자와 함께 룸살롱에 가서 술을 먹게 되면 2차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술값은 관리자가 계산한 뒤 대부분 회사 경비로 처리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후가 더 충격적이다. 권 씨는 “관리자가 카드를 긁고 나가면 뒤에서 어정거리다가 주인한테 영수증을 한 장 더 달라고 한다. 교제비 명목으로 조합비에서 또 타내기 위해서 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과격한 투쟁방식
권 씨는 현재 민노총의 투쟁방식이 “깡패조직보다 무섭다”며 쓴소리를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5월 울산플랜트 노조의 파업을 그 예로 들었다.
권 씨는 “TV 뉴스에 충격적인 장면이 방영돼 많은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흰색 헬멧과 붉은색 마스크를 쓴 노동자들이 온몸에 시위진압용 소화 분말액을 뒤집어 쓴 경찰과 뒤엉켜있다. 뒤따라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노동자들이 전경들을 마구 내리쳤다. 시위대는 마치 원한에 사무치기라도 한 듯 무지막지하게 휘둘렀다”고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한편 권 씨는 소위 ‘귀족노조’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권 씨는 평균연봉 1억 원이 넘는 조종사노조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 전교조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권 씨는 “전교조는 은혜 받은 중산층 중에서도 귀족급에 해당하는 중산층으로 일반 노동자보다 두툼한 월급봉투에 주 20시간도 안되는 노동시간, 연 4개월에 이르는 방학휴가를 볼 때 ‘가진 자’이며 ‘부르주아’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전교조는 노동자들에 슬쩍 들어가 함께 데모할 아무런 자격도 명분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들 모두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고 경제에 피해를 입히는 집단이라는 것이 권 씨의 주장.
#계파 간의 갈등
권 씨는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 대의원이 되면 빨간 조끼를 입고 업무시간이라도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누리면서 온갖 떡고물에 관심만 갖는다”고 권 씨는 적었다.
권 씨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에 소속된 전국 사업장의 조합원은 4만 3000여 명. 그러나 정작 노조를 이끄는 사람들은 1000여 명의 활동가들이라고 한다. 권 씨는 이 보고서에서 현대차 노조를 움직이는 핵심인 이른바 ‘활동가’들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들이 불법파업의 주도세력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또 권 씨는 현대차 노조의 계파 갈등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권 씨는 그 사례로 지난 2004년 8월 현대차 노조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거절한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2004년 8월 현대차 노조는 예정돼 있던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한 시간 전에 갑자기 불참 통보를 했다고 한다. 당시 노조는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계속해서 대기업노조를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거절 이유는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 진짜 이유는 현대차 노조 내의 계파 간의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
권 씨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12개 정도의 계파가 존재한다. 민주노동자회(민노회), 민주노동자투쟁연대(민노투), 노동자연대투쟁(노연투), 실천하는 노동자협의회(실노회), 동지회 등이 그것이다. 현재 현대차 내부에서 이들 노조들이 상호 견제하며 독자노선을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이상욱 노조위원장이 속한 민투위 현장조직원들이 “대통령을 섣불리 만났다가는 다른 계파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노조 내에서 민투위의 입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해 대통령과의 만남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념에 물든 조직
특히 권 씨는 “사회주의는 이제 버릴 때가 된 이념이다”라며 민노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권 씨는 얼마 전 ‘노동자 투쟁연대’가 낸 성명서 중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조국은 없다’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끝장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경제사정을 낫게 할 수 없다’는 등의 몇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구절들 속에는 국가는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기구일 뿐이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권 씨는 이러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종파에 소속된 활동가들이 민노총의 집행부나 상급연맹의 전임간부로 활동하며 일반 조합원이나 노동자들의 조합 활동을 대중적인 정서와 괴리된 정치투쟁이나 파업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자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노총 앞으로의 미래
권 씨가 민노총의 비리 공개와 비판만 한 것은 아니다. 책 말미에서 권 씨는 민노총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개혁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민노총의 첫 번째 책임과제를 “불법파업과 폭력 행위를 근절하는 일”이라고 밝힌 권 씨는 “우리의 노동운동은 실패한 19세기의 이념을 쫓아 정치 투쟁을 하면서 진보를 자처하고 있다“며 ”노사 관계에 정치문제를 끌어들이는 노동운동의 폐해를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