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대검 중수부가 전면적인 기업 수사를 할까’라는 의문도 있다. 하지만 중수부 수장이 이인규 검사장이란 점을 고려할 때 대검 중수부의 기업수사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 중수부장은 ‘기업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역대 중수부장 가운데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주변에서는 촛불시위 수사 등 시국사건에서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춰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의 위상을 되살리기 위해서 중수부가 본격적인 기업 사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대검 중수부의 칼날은 과연 어떤 기업으로 향하게 될까. 기업들은 다들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현재 재계에서는 중수부가 ‘손볼’ 기업이 일단 수출 주력 기업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경제위기로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기업을 수사할 경우 엄청난 반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수부가 2005년 현대자동차 비리를 수사했을 때 기업윤리 등에 진보적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검찰에 대고 “도대체 경제가 이런데 왜 현대차를 수사하느냐”며 화를 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국가기간산업으로 불리는 현대차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경기가 한국경제의 바로미터 중 하나인 현실에서 삼성그룹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과 현대차는 수사 타깃에서 일단 벗어나 있다는 게 검찰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삼성은 삼성비자금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현대차는 지난 정부에서 두 번이나 수사를 받았기 때문에 검찰이 다시 수사를 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는 것.
재계순위 3, 4위인 LG와 SK도 비교적 안심하는 눈치다. 특히 SK는 이인규 중수부장이 2002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현 금융조세조사부장) 시절 최태원 회장을 구속시키면서 대선자금 수사의 단초를 던져준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SK 측에선 ‘이인규 중수부장이 설마 또 우리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법하다. 실제로 2002년 검찰 수사로 최태원 손길승 회장 등 최고경영자 두 명이 구속되는, 대한민국 기업역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SK를 수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LG 역시 삼성전자와 함께 전자업체로서 대표적인 수출기업이라는 점에서 대검 중수부의 예봉을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에는 LG가 수사를 받을 ‘차례’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도 모락모락 나온다.
수출기업이면서 기업 이미지가 좋은 LG가 중수부의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대목은 LG곤지암리조트 관련 의혹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는 경기 광주에 건설된 LG곤지암리조트를 사실상 내사했다. 한강 취수원 인근의 광주는 상수원 보호를 위해 수질오염총량제를 시행하는데 그 오염총량제의 절반 이상을 LG곤지암리조트가 사용한 부분에 혐의를 두고 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검 중수부는 2004년 오염총량제 완화와 관련해 건설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당시 광주지역 국회의원인 박혁규 전 한나라당 의원을 구속기소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을 구속기소한 수사 검사는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최재경 3차장이다.
LG그룹 측은 곤지암리조트 관련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이 참여정부 시절 LG전자에 근무했던 점 등이 행여나 영향을 끼칠까봐 몸을 사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LG가 대표적인 수출기업이기 때문에 대검 중수부가 LG에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댈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대 기업으로 떠오른 롯데는 현 정부 들어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다. 참여정부 때 허가가 반려된 제2롯데월드 허가가 급진전되는가 하면 왕성한 기업인수 활동을 펴고 있다. 이렇게 현 정권서 잘나가는 기업을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하면 위상은 확실히 서겠지만 여권 내부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수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따라서 만약에 중수부의 수사가 시작된다면 재계순위 6위에서 10위권 안팎의 기업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 주변의 시각이다. 이들 기업은 매출이 수십조 원 규모로 상당하지만 중수부가 수사를 해도 5대 기업 수사를 할 경우에 비하면 ‘경제상황을 무시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 검찰의 대기업 내사설에 재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왼쪽부터 전경련 3월 회장단회의에 참석한 강덕수 STX 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박용현 두산 회장, 이준용 대림 명예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석래 전경련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최태원 SK 회장, 조양호 한 | ||
게다가 두 기업은 모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기업 인수 합병과 관련해 시련을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자금 조달 난항으로 이행보증금으로 낸 3000억 원을 떼일 판이다. 두산은 미국 중장비 회사인 밥캣을 인수했다가 얼마 전 유동성 위기로 인한 기업부도설로 주가가 한때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이렇게 회사 분위기가 복잡한 상황에서 이들 기업은 과거 검찰 수사를 받았던 전례를 ‘위안’으로 삼고 있다. ‘폭탄 떨어진 자리에는 그 뒤 폭탄이 안 떨어진다’는 법칙을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두 그룹으로선 과거 사건으로 총수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됐기 때문에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를 해도 경제가 중요하다는 여론의 지원 사격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나머지 기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금호그룹이 참여정부 시절 잘나갔기 때문에 현 정권서 타깃이 되기 쉬울 것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대우건설 인수에 이어 2007년 대한통운까지 인수해 참여정부 시절 가장 알짜 기업을 챙겼다는 부러움 섞인 시샘을 한몸에 받았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인수 첫해인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든 계열사의 영업이익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올리며 금호아시아나의 효자기업으로 떠올랐다.
당시 업계에서는 정권이 바뀐다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검찰의 수사대상 1호가 될 것이라는 말들이 돌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일부 언론이 대검 중수부가 금호아시아나를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대검 중수부는 “소설”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 가장 많은 금액을 써서 입찰에 성공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해도 별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 정부 시절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했던 것에 대해 대검 중수부가 집중 수사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는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금호아시아나의 라이벌인 대한항공은 금호아시아나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검 중수부의 수사 타깃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또 항공업계가 인허가 사업이기는 하지만 인허가 결정권이 정치인보다는 관료 쪽에 치중돼 있어 설사 비리가 있더라도 대검 중수부가 직접 뛰어들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0대 그룹의 마지막으로 GS가 있다. GS는 같은 뿌리였던 LG와 달리 내수 기업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 가능성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GS그룹이 참여정부 시절 별다른 기업 실적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검 중수부의 흥미를 끌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참여정부 출범에 즈음해서 GS그룹이 LG그룹과의 분리를 마무리한 부분에서 뭔가 대검 중수부의 흥미를 끌 여지가 있다는 게 검찰 주변의 관측이다. 분리 당시 GS그룹은 캐시카우인 LG홈쇼핑을 GS그룹으로 가져왔다.
10대 기업 외에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을 만한 기업으로 CJ가 꼽히기도 한다. 기업 규모는 작지만 최근 100억 원대의 비자금이 나왔으며 이를 관리하는 방식 자체도 특이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CJ 측은 이 비자금을 선대 회장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대선자금 수사 때 검찰이 밝혔던 삼성그룹의 800억 원대 비자금에 대해 삼성 측이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한 것과 비슷한 대목이다. 당시 검찰은 채권으로 관리되던 이 비자금에 대한 추적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워낙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돈이어서 추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CJ 비자금의 경우 아직도 경찰에서 계좌추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금세탁을 염두하고 차명계좌를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어서 사법처리 가능성은 낮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계좌추적을 해도 크게 나올 것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또 10대 기업도 아닌데 대검 중수부가 수사하기에는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도 부담이다.
CJ를 제외하고 10대 기업 외에 대검 중수부 수사 가능성이 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는 포스코다. 포스코는 지난해 말 이구택 회장에서 정준양 회장으로 경영권이 교체됐다. 그러나 경영권 교체 시기에 검찰이 포스코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수사를 벌여 검찰 수사와 경영권 교체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풍문이 무성했다. 포스코의 경우 얼마 전까지 대검 중수부에 근무했던 검사들로 구성된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에서 수사를 해왔다. 또 대구지검에서도 관련 수사를 해왔는데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포스코의 납품비리에 연루됐다는 설들이 계속 나왔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서 검찰 수사는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따라서 대검 중수부가 다시 이런 미진한 부분을 파헤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포스코가 국가 기간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수출기업이라는 점과 논란 속에서 정준양 회장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수사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대검 중수부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검찰 주변에선 수출기업으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막대한 삼성과 현대차 등을 제외하고는 안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는 기업 수사 부분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오히려 대검 중수부가 기소했다가 무죄가 난 10여 건의 사건에 대해 공소 유지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인규 중수부장을 보좌하는 대검 중수부 2인자인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직접 법정에 들어가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때문에 검찰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대적인 기업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인규 중수부장이 기업을 잘 알고 있고 기업의 비리를 지렛대로 해서 정치인의 불법자금을 밝혀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전례로 볼 때 향후 중수부의 기업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기업 비자금 그 자체를 수사하기보다는 검찰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업자금을 거쳐 간 정치인의 불법자금 수사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그러기 위해 대검 중수부는 대대적인 계좌추적과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야 한다. 과거 대선자금 수사에서 대검 중수부는 SK그룹의 비자금을 9개월 동안 계좌추적해오면서 어떤 낌새도 노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3년 9월 첫 수사대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전격 소환해 구속기소했다. 따라서 베일에 가린 대검 중수부의 기업 수사도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한고비가 풀릴 5월 이후쯤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