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씨는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 매점과 영안실 임대를 명목으로 17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징역 2년 2월에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억 2056만 원을 최종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6년 4월 18일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 후 민 씨는 외부에 행적을 일체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왔다.
당시 <일요신문>은 측근을 통해 민 씨가 수원에서 용인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파산상태라는 소문도 돌았다. 확인결과 민 씨는 출소 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추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수많은 의혹과 소문들을 뒤로한 채 민 씨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에는 어떤 채널을 통해서도 민 씨의 행적을 알 수 없었다.민 씨는 과연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최근 <일요신문>은 모처로부터 민 씨의 행보에 대해 뜻밖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출소 후 행적이 묘연했던 민 씨가 현재 인도네시아에 영주권을 얻어 정착해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민 씨가 그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인도네시아 현지인들에 따르면 민 씨가 인도네시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 2년 반 전이었다. 시간상으로 계산해보면 민 씨가 출소한 지 수개월 가량 지난 시점이다.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A 씨는 지인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곧 인도네시아에 들어가니까 잘 좀 안내해 주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해 온 A 씨는 현지 사정에 밝을 뿐만 아니라 사업 관계로 현지 주지사와 경찰간부 등 유력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해오고 있어 종종 이런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때문에 A 씨는 ‘낯선 손님’의 방문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가 안내해야 할 사람이 민 씨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그리고 얼마 후 한 중년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바로 민 씨였다. A 씨는 “민 씨는 내게 ‘입국한 지 20일 정도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가 투숙 중인 시내의 S 호텔에서 만났다. 그가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복역까지 한 ‘민경찬’이라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조용조용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A 씨는 그 후 민 씨와 자주 만났는데 그 후 주지사는 물론 주지사 남편(상공회의소 소장), 경찰 수뇌부 인사들과의 자리도 주선해 함께 만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현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민 씨는 현지에서 고무·팜유 사업을 한다고 떠벌렸으며 주식 투자를 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민 씨의 얘기를 들은 이들은 다소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팜유·고무 사업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농장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팜유와 고무는 세계적으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따라서 현지에서 농장을 하려면 최소 100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업성도 그만큼 좋아 세계적인 재벌들도 참여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팜유는 정제과정을 거쳐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디젤의 연료로 사용되는데 지난해 가을에는 삼성물산이 서울시 면적의 40%에 육박하는 대규모 팜유 농장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즉, 자본금이 없는 일반인들은 섣불리 덤벼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얘기다. 하지만 민 씨는 거의 파산지경의 상황에 몰려 채권자들을 피해 온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얘기다. 말쑥한 정장차림의 민 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돈 벌기 정말 쉽습니다. 제가 돈 많이 벌게 해 드릴까요?”라는 말을 하곤 했다는 것. 하지만 A 씨 자신은 사업과 관련해서는 민 씨와 일체 교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 민경찬 씨는 650억 원 펀드모집 사건으로 인해 혹독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사진은 2004년 병원 식당운영권을 미끼삼아 거액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모습. | ||
고소 고발은 물론이고 사소한 일을 처리할 때도 뒷돈 혹은 경찰라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또 죄를 짓고 피해온 ‘도망자’의 경우도 현지 경찰은 자국 혹은 자신들한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이들의 체포나 소재파악에 전혀 협조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현지인들 증언에 따르면 민 씨는 입국 후 줄곧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1급 호텔인 S 호텔에 투숙해왔다고 한다.
그 호텔은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 귀빈이 방문할 정도의 고급호텔로 알려져 있다. 객실이 1000개가 넘는 이 호텔은 중간급 객실의 하루요금이 230달러(약 31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민 씨와 교류한 현지인들은 민 씨가 적어도 3~4개월 이상은 그곳에 투숙한 것 같다고 전했다.
따라서 비교적 저렴한 객실을 사용하고 장기투숙 할인을 받았다고 치더라도 민 씨가 부담해야 할 객실료는 만만찮아 보인다. 민 씨는 현지사람들에게 함께 일하는 사람 서너 명과 같이 있다고 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날 때마다 민 씨는 항상 혼자였고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민 씨가 약 1년 반 전 인도네시아 영주권을 획득했다고 증언했다.
영주권을 획득하기 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어도 민 씨가 한국이 아닌 홍콩에 다녀왔다는 소리도 들었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어쨌든 현지에 주소지가 없었던 민 씨는 당시 A 씨에게 간곡히 부탁, A 씨의 집주소로 영주권을 획득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영주권을 획득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A 씨는 “민 씨의 주소가 지금도 우리 집으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일로 민 씨와 교류하던 A 씨가 민 씨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낯선 자들의 방문을 받고 부터였다. 민 씨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어떤 사람이 A 씨의 집으로 찾아와서 “민경찬이가 이 집에 사느냐”는 등 소재를 물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사람을 보내줄 테니 민경찬 좀 잡아달라. 충분한 사례를 하겠다”는 부탁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 대부분 민 씨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는 채권자들이었다. “민경찬과 잠비 쪽에서 같이 농장을 하려다가 피해를 봤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A 씨는 민 씨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없었던 터라 이들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오히려 A 씨는 민 씨에게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민 씨는 붙임성도 좋았다. ‘김치 먹고 싶은데 밥 한 끼 주소’라며 우리 집에 찾아와서 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수백억 원대 펀드 스캔들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문제의 인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난 지금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민 씨는 현지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주변 지리는 물론 웬만한 현지 언어까지 익혀 구사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