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A 종교단체 소유의 불법 묘지. 비석과 봉분은 없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어 묘소가 아닌 정원처럼 보였다. 작은 사진은 A 종교단체 관계자가 묘소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 최준필 기자
“여기 경주시 양남면 XX인데, 불법 암매장을 파냈습니다. 현장으로 출동하셔야겠습니다.”
지난 11월 21일 오전 11시 30분쯤. 경주경찰서에 112신고 하나가 접수됐다. 신고 내용은 “공원묘지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굴했더니 관이 발견됐다”는 것. 경찰은 즉시 사건 현장으로 출동했다.
사건 현장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토함산 자락의 한 부지였다. <일요신문>이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사건 초반 동영상에 따르면 1m가량 파여진 땅에 관 뚜껑으로 추정되는 판 윗부분이 드러나 있고, 주변에는 경찰관과 사건 신고자 허 아무개 씨 등 5명이 둘러서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허 씨는 경찰에게 “제 친구가 암매장 당했다는 얘기가 있어서 확인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 땅을 파본 것뿐이다”라며 “그냥 땅을 무작위로 파니까 관이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 상태는 뭔지 모르겠고 우선 XX(묘지 관리 측)에서도 오기 때문에 일단 기다려보자”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후 경찰을 찾은 묘지 관리인 측은 “무단으로 시신을 발굴한 자들을 처벌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하기에 이른다.
고민에 빠진 경찰은 우선 사건 현장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현장 보존을 위해 방범대 1개 소대를 배치했다. 쟁점은 정말 이곳이 신고자가 주장한 대로 시신 불법 매장 현장인지 여부였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은 불법으로 조성된 묘지인 것은 확인됐다. 관리인 측도 그 부분은 인정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과연 누가 불법 묘지를 조성한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불법 묘지를 조성한 곳은 A 종교단체로 파악된다. 1955년에 창설된 A 종교단체는 한때 신도가 1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유명한 단체였다고 한다. 단체 내에서 공장을 가동해 각종 사업까지 병행, 상당한 수익을 올리기도 한 A 종교단체는 현재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A 종교단체가 경주에 해당 부지를 구입한 시점은 지난 2001년이다. 해당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01년 11월 5일 부지를 매입했고, 부지의 크기는 177만여㎡(53만여 평)으로 확인된다. 위치상으로는 토함산 자락에 위치해 불국사와 석굴암과 직선거리로 약 6km 떨어져 있을 정도로 근접해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중 해당 부지에서 A 종교단체가 묘지를 조성한 규모는 2만여㎡(6000여 평)으로 파악된다. 규모로 따지면 축구장 두 개를 합친 크기만 한 셈. 묘지를 발견한 관계자 측은 “이곳에 시신이 3000여 구가 묻혀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일단 시신은 1000여 구가 묻혀져 있는 것으로 확인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확인 결과 시신은 1000여 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전했다.
쟁점은 시신이 어떤 이유로 여기에 묻혔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A 종교단체 측과 무덤 발견자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A 종교단체 측은 “허가는 받지 않았지만 신도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공동묘지를 조성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A 종교단체 관계자는 “애초 교인 묘지 용도로 경주시에 소재한 토지를 매입한 것인데, 그 무렵에는 머지않아 묘지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묘지를 조성했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 허가를 받지 못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고인과 유족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여 묘지를 관리하고 있다. 불법 암매장이었으면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고 그렇게 정돈을 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입수한 묘소 사진에는 잔디와 나무가 깔끔하게 심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허가를 받지 않은 탓에 봉분과 비석은 없는 사실 또한 파악했다.
하지만 묘지 발견자 측 주장은 다르다. 묘지를 발견한 허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실종된 내 친구도, 내 친구 어머니도 경주 묘지에 묻혔다는 제보도 끊임없이 받았다. 그동안 5년 동안 묘지만 찾아다녔다. 이제 드디어 찾았기에 진실이 밝혀질 일만 남았다”라고 주장했다. 허 씨의 주장에 따르면 허 씨는 한때 A 종교단체의 핵심 신도였다고 한다. 특히 A 종교단체를 세운 설립자의 3남이자 후계자인 B 씨와는 초중고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였다는 게 허 씨의 주장이다. 허 씨는 현재는 A 종교단체를 탈퇴한 채 부천에 있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직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허 씨의 주장에 A 종교단체는 또 다시 강력 반박했다. A 종교단체는 <일요신문>에 보낸 공문을 통해 “허 씨 등이 제기하는 A 종교단체에 관한 의혹(실종, 암매장, 착취, 교단 분열 등)들은 모두 명백한 허위사실로써 이미 수차례의 법원 판결로 확인받은 바 있다. 허 씨는 터무니없는 비방과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허 씨는 오로지 언론을 악용하여 A 종교단체에 대한 또 다른 비방을 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A 종교단체는 공문을 통해 “위와 같은 근거 없는 의혹 따위가 보도된다면 이는 A 종교단체와 신도들에 대한 엄중한 명예훼손이 될 것”이라며 <일요신문>에 ‘보도 자제 요청’을 끊임없이 주문하기도 했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경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매장 지역을 직접 파서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지만, 기자와 직접 만난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검토한 바가 없다”라고 전했다.
최근 경찰은 A 종교단체로부터 ‘묘적부’를 입수해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묘적부에는 사망검안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파악돼, 불법 묘지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수사가 진행 중이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A 종교단체 관계자와 허 씨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A 종교단체 측은 허 씨를 폭행 및 분묘 도굴, 주거지 침입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한편 경주시에서도 이 사안과 관련해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불법 묘지를 조성한 점은 A 종교단체도 인정한 상황이라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A 종교단체는 묘지 허가 신청을 한 번도 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라며 “해당 부지에 대한 산지훼손 여부도 조사 중이다. 처벌 여부는 향후 경찰과 함께 조사를 진행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경주=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바로잡습니다 일요신문사는 2014년 12월 7일자 제1177호 일요신문(이하 ‘이 사건 신문’이라고 합니다) 및 일요신문사의 홈페이지에 각 “[총력추적] 경주 토함산 ‘집단 매장지’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위 기사의 내용 중 ‘가혹 노동·암매장’, ‘불법 암매장’, ‘A 종교단체에서 여러 사업을 하면서 신도들에게 가혹 노동을 시킨 사실’, ‘가혹노동으로 병들고 치유가 불가능한 이들을 A 종교단체는 가차 없이 암매장했다는 의혹이 있다’, ‘실종된 내 친구도, 내 친구 어머니도 경주 묘지에 묻혔다는 제보도 끊임없이 받았다’는 부분은 제보자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게재한 것으로서 사실과 다르므로 위 내용을 바로잡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