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군납비리에 대한 ‘발본색원’ 의지를 내비치면서 사정기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을 보면 탈세, 불법로비, 단가 부풀리기 등 비리 종류도 다양한 데다 육·해·공이 모두 포함돼 있다. 10월 23일 막을 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군납비리는 ‘핫 이슈’였다. 최근 한 현역 해군중령이 방송을 통해 내부 비리 의혹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군납비리 척결을 요구하는 여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2010년 국방예산은 총 30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 중 국방예산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군내에 만연한 군납비리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불거져 나오고 있는 군납비리 의혹들을 쫓아가봤다.
최근 군 검찰은 미국 방위산업체 A 사가 2003~2005년 한국형 구축함인 KDX-Ⅱ에 탑재될 레이더를 납품하면서 일부 중고 부품을 사용하고도 신형으로 속여 납품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군 검찰이 내사 중인 A 사의 대공탐색 레이더 장비는 2002년 7월 계약 체결 후 KDX-Ⅱ 4~6번함에 납품된 기종으로, A 사는 KDX-Ⅱ 1~3번함에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관련 레이더를 납품한 뒤 4~6번함에는 보다 성능이 향상된 기종을 납품하기로 했다. 당시 국방부 조달본부는 KDX-Ⅱ 4~6번함 레이더와 관련해서는 A 사와 수의계약 형식을 취했고, 1~3번함 레이더보다 대당 300만 달러가 추가된 총 2980여만 달러를 지불하고 신형 레이더를 구매했다. 하지만 신형이라던 이 레이더의 일부 부품이 중고를 재생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군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일요신문>이 김무성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애초 국방부 조달본부는 1~6번함 레이더를 모두 신형으로 납품받기로 하고 약 2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A 사는 원래 신형레이더를 달았어야 할 1~3번함에는 중고 레이더를, 4~6번에는 신형을 설치하긴 했지만 ‘업그레이드한 레이더’라고 속였다. 이 과정에서 A 사는 업그레이드 비용이라는 이유로 계약 당시보다 900만 달러를 더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부품이 중고였고 군 내부자는 연관이 없다’는 군 검찰의 첩보와는 달리 애초부터 A 사는 레이더 전체를 중고로 납품했고, 결국 군은 제대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한 꼴이 됐다.
때문에 군 검찰에서는 납품 과정에서 내부자가 상당한 리베이트를 받고 이를 눈감아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최근 기무사와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한국형전투기 사업 로비 및 군사기밀 유출건에는 공군 예비역 장성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군사기밀을 빼내 스웨덴 무기회사인 ‘사브’(SAAB)에 넘겨준 혐의로 예비역 공군 소장 김 아무개 씨를 구속했다. 김 씨는 현역시절 방위사업청 전투기 사업과 관련된 주요 보직을 맡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7월 국방대학교 도서관 특수자료 열람실에서 합동군사전략 목표 기획서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군사기밀을 수집한 뒤 지난 5월까지 순차적으로 ‘사브’ 측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국방대는 김 씨가 예비역 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사기밀에 마음대로 접근하도록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전역과 함께 비밀취급 인가를 상실했지만 도서관 담당자를 찾아가 국방대 출입증을 제시하면서 “국방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강 중인데 내가 연구 발표할 주제가 비밀자료들을 열람해야만 하는 것들”이라며 열람을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이밖에도 두산인프라코어가 해군 고속정 엔진을 납품하면서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8억 원의 부당 이득을 올린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또한 검찰은 국산 ‘명품 무기’로 꼽히는 K-9 자주포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부품 단가를 부풀려 거액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군납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주요 원인은 군 고위직 인사들의 ‘밥줄’과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군납비리에는 군 고위급 예비역들이 연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주로 대령이나 장성 출신인 이들은 전역 후 군수업체에 취업해 업체와 군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이들은 ‘고위공직자는 퇴직 후 3년 간 업무관련 업체에 취직할 수 없다’는 고위공직자 윤리 규정을 피하기 위해 고문 등 비상근직으로 들어가는 편법을 사용한다. 이들은 회사에서 활동비 명목으로 월급과 법인카드를 제공받는다. 또한 컨설팅이나 에이전트 회사를 차려놓고 군 관련 사업에 접근해 각종 로비를 펼치기도 한다. 출신지나 학맥 등으로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군 조직 특성상 인맥을 타고 들어오는 로비는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고 이 과정에서 돈이 오고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군 내부의 이런 관행을 없애지 않는 한 군납비리 근절은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우 테크놀로지 의혹도 초점
“리베이트 없애!” MB 발언 머쓱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무기 중개상에게 흘러가는 리베이트만 줄여도 국방예산의 20%는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절묘한 시점에 사돈 기업의 군납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 동서인 주관엽 씨가 실소유주인 방위사업체 로우테크놀로지가 국방부 납품 과정에서 허위 세금계산서 64억여 원어치를 발행한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불거져 나온 것이다. 주 씨 소유의 로우테크놀로지는 효성그룹 계열사인 동양나이론의 방위사업부에서 분리된데다 효성 임직원 출신 인사들이 대표를 돌아가며 맡는 등 사실상의 효성그룹 계열사다. 또 로우가 납품한 야간표적지시기 특허권은 주 씨와 아내 송 아무개 씨(조 회장의 막내 처제),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갖고 있다.
로우는 국방부로부터 독점 수주한 소·대대급 교전훈련장비와 야간표적지시기 납품을 부인 송 씨가 소유한 제이송연구소와 위장거래 회사에 재하청을 줬고 핵심 부품은 대부분 효성 미국 현지 법인인 효성아메리카 로스앤젤레스 지사를 거쳐 구입했다. 이를 통해 로우는 납품 단가를 부풀리거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64억 원을 더 챙겼다. 로우는 또 군장비 납품과정에서 200억 원을 사기 편취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핵심 관련자인 주 씨를 수배조차 하지 않아 애초부터 봐주기 수사가 아니였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