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런 얘기가 뜬금없이 시중에 나돌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수십억원대의 로또 1등 당첨자와 일가족이 갑자기, 그것도 의문을 남기고 죽었다면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소문은 최근 제주도에서 교통사고로 30대 가장과 부인, 아들, 딸 등 4명이 모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퍼졌다. 죽은 30대 가장이 바로 60억원대의 로또 1등 당첨자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사고가 난 뒤 유가족을 비롯해 몇몇 언론사에서 사실 확인에 나서는 등 한바탕 부산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문은 근거없는 낭설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60억 당첨자의 죽음’에 얽힌 일련의 이야기는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사고를 놓고 때아닌 로또 1등 당첨자 사망이라는 해프닝으로 비화된 이 사건의 전말을 취재했다.
문제의 사고가 일어난 것은 지난 7월3일 새벽 4시45분께. 사고발생 장소는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리 포구 방파제였다. 김영만씨(가명·32·전남 광양시) 부부와 여섯 살 여아, 세 살 남아가 탄 승용차가 방파제에서 추락해 바다에 빠져 모두 숨진 것이었다.
사고 발생 직후 제주경찰서 강력반이 나섰다. 일단은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사고차량은 사이드브레이크가 내려져 있었고, 시동은 켜진 상태였다. 기어는 고속질주 상태인 4단으로 조정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승용차 밑바닥의 앞부분과 가운데 부분이 추락지점인 방파제 구조물에 심하게 긁힌 것으로 조사결과 확인됐다. 이는 승용차가 추락할 당시 속력을 거의 내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약 5도 정도 기울어진 내리막 방파제에 차를 세우고 있던 운전자 김씨가 방파제를 빠져 나오기 위해 후진기어를 넣었으나, 잘못으로 전진기어인 4단으로 넣고 가속페달을 밟아 2∼3m 앞 바다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체를 검안한 결과 일단 사망자 모두 외상흔이 없고 숨진 두 남녀에게서 익사시 동반되는 포말흔이 입과 코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지난 6월12일 가족과 함께 제주로 내려온 김씨가 사고 당일 새벽 어린 아이들과 방파제로 나온 사실, 내려오기 전 일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는 등 주변 정리를 한 점, 사고 직전 차 안에서 부부가 심하게 다툰 부분 등은 동반자살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고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은 것은 그 후. 김씨 일가족의 사망소식이 김씨는 다녔던 전남 여수시 N화학회사에 알려지면서부터였다. 김씨는 지난 3월10일까지 이 회사를 다녔다. 김씨는 사직을 하기 전까지 몇 년간 이 회사에서 업무직과 기능직으로 근무하다 갑자기 월요일자로 사표를 제출했던 것.
그 후 김씨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 친구 로또에 당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특히 사망한 김씨는 사표 제출 직후 여수시 봉개동에 새 빌라를 계약하고 지난 6월12일 가족과 함께 훌쩍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는 소문까지 전해지자 N화학 직원들 사이에서는 김씨의 로또 1등 당첨설이 거의 정설로 나돌다시피한 것.
N화학 인사과 관계자 역시 지난 4일 “평소에 워낙 순하고 성실한 직원이 그렇게 갑자기 회사를 떠나자 실제로 그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소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김씨가 아파트를 새로 계약하고 제주도로 장기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김씨 가족이 지난 3일 제주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소문은 비약적으로 확산됐다.
우스갯소리처럼 시작된 소문이 급기야 ‘로또 60억원 당첨자 의문의 죽음’으로 비화된 셈이다. 실제로 사고 당시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죽음에 관한 의문은 충분했다. 사고 지점인 함덕 포구에서 어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사고 직전 출어를 위해 사고 차량 옆에 주차하던 중 우연히 승용차 안에서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며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집에 가자’고 말했고 남자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고가 벌어지기 직전 사고차량 안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부부가 싸웠다는 사실은 폭발력을 갖게 된다. 이 같은 소문과 정황이 결합돼 김씨 주변에서는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완벽한 ‘소문’이 탄생하게 됐다.
‘60억원 로또 당첨자가 사람들의 연락을 피해 일가족과 함께 호젓한 제주도를 찾았다. 그러나 부인은 20여 일 넘게 이어진 객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고, 아직 사람들의 이목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남편과 새벽 차 안에서 부부싸움을 벌이다 급기야 동반자살하고 말았다.’
이쯤되자 숨진 김씨의 친형과 손윗 동서 등 유가족들 역시 지난 7일 부랴부랴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민은행을 찾아 김씨의 당첨 여부를 확인하고 나서는 등 때아닌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복권사업팀의 한희승 과장은 “지난 7일 유가족들의 확인 요청을 받고 숨진 김씨의 당첨여부를 확인했지만 이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 뒤 “다만 그동안 로또 관련 소문의 대부분이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참고해달라”며 우회적으로 답했다.
한 과장은 또 “유가족들이 문의했을 때에도 이 같은 내용의 답변만 해줬을 뿐”이라며 “그 외 몇몇 언론사에서도 이에 대해 확인을 요청해 왔지만 정중히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 역시 “지난 12일 아침 몇몇 언론사에서 ‘죽은 사람이 로또 당첨자 아니냐’며 물어왔지만 우리로서는 (그 사실에 대해)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 듣는 소리”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와 별도로 김씨를 당첨자로 보기 어려운 정황 또한 속속 드러났다. 먼저 김씨가 회사를 사직한 직후 계약했다는 여수시 D빌라는 매입한 것이 아니라 월세로 계약한 것에 불과했다.
제주도로 떠나면서 ‘60억 당첨자’답지않게 평소 몰고 다니던 준중형 승용차를 그대로 가져간 사실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구석. 또 사고차량을 조사한 결과 발견된 김치와 쌀 등은 이들의 제주 생활이 그다지 호화스럽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들에게서 발견된 통장의 잔액은 고작 7백만원에 그쳤다.
국민은행측의 답변과 사망자 김씨 주변의 정황을 종합해 볼 때 ‘60억 로또 당첨자 의문의 죽음’에 얽힌 일련의 소문은 한 편의 잘짜여진 ‘소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해프닝의 원인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소문이야 원래 확인이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올라가면 결국 “내가 월요일 출근 안 하면 로또 당첨된 줄 알아라”라는 자조적 유행어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