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12월 31일 발표한 세밑 신년사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다. 박 대통령이 12월 31일 ‘2015 신년사’ 방송을 위해 녹화를 하는 모습과 김 위원장이 지난 1일 새해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연합뉴스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 1일 김정은의 신년사는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각종 남북대회 개최는 물론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내비쳤기 때문이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조건으로 내걸어 성사되기까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긴 하지만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해빙기가 올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가자”고 했던 지난해 신년사에 비해 훨씬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도 북한의 태도 변화를 짐작케 한다.
김정은의 발언이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2월 31일 발표한 세밑 신년사에 대한 화답 성격이 짙은 까닭에서다. 당시 박 대통령은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며 올해 남북관계 개선을 주요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외신 인터뷰에서도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고 평화통일 준비를 위한 진정성과 실천 의지가 전제된다면 김정은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은 신년사에 담긴 의도 파악에 분주했던 정부가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도 박 대통령이 먼저 대화를 제안했던 상황임을 감안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사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 후 2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3월 28일 독일에선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드레스덴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남북대화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대북전단 살포 등으로 양측 핫라인은 끊기다시피 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경색된 남북관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선 특사 파견의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00년 첫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을 여러 차례 사전 방문했던 것처럼 일단 대화의 채널을 터야 한다는 차원에서였다. 박 의원은 지난해 8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특사를 보내야 한다”면서 “박 대통령과 최소한 임기를 같이하고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신뢰관계가 있는 분이 바람직하다”고 훈수하기도 했다.
여권도 다양한 라인을 가동해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현직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친박에서 중진급 인사로 통하는 A 씨의 행보다. A 씨가 ‘밀사’ 역할을 맡아 북과 접촉을 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A 씨 측근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A 씨가 9~10월 중국과 싱가포르를 세 번 정도 다녀온 것으로 안다. 개인 관광이라는데 A 씨가 그렇게 한가로운 사람은 아니다. 모종의 임무를 받고 북측 인사와 만나고 온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측근에 따르면 A 씨가 만났던 북측 인사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라고 한다. 이에 대해 A 씨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정보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도 “A 씨가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 다만, 북에서 A 씨를 박 대통령 대리인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A 씨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일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A 씨가 비공식적 루트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어느 정도 시인한 셈이다. 앞서의 A 씨 측근은 “A 씨가 북측과 다양한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안다. 이산가족 문제부터 DMZ(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과 같은 박 대통령 관심사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중점을 뒀다고 들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에서는 A 씨가 북측 인사와 만났다는 시기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후 남북 간에 벌어졌던 일련의 장면들과 관련된 미스터리가 A 씨로 인해 풀릴 수도 있다는 추측에서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일인 10월 4일 황병서(군 총정치국장)·최룡해(노동당 비서)·김양건, 이른바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문도 그 중 하나다. 당시 황병서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가자”고 말하며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과 김정은의 신년사가 A 씨를 포함한 특정 핫라인이 관여해 사전에 조율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A 씨의 대북 접촉이 사실이라면 남북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00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대화 필요성을 제기한 지 한 달 만인 4월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됐고 6월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불과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진 셈인데, 이는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밀명을 받은 특사가 사전에 북측과 긴밀한 협의 체제를 구축해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더군다나 현재로선 2007년 2차 정상회담 이후 7년 넘게 남북대화가 단절돼 있었다는 점에서도 특사를 통한 사전 정지작업의 필요성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앞두고 대북특사를 비롯해 남북관계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가 남북 정상이 만날 적기라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이 치러지는 해는 박 대통령으로서 김정은을 만나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임기 중반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초조감이 깔려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윤회 문건’ 파동 등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고자 국면전환용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경계론도 불거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대북 특사·밀사 열전 이후락 만일 대비 ‘청산가리’ 가져가 지난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용기로 평양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포옹했다. 첫 남북 정상회담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3일간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은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박지원 의원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다. 둘은 김 전 대통령 특사로서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정상회담을 위한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대북 밀사는 ‘6공 황태자’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다. 박 전 장관은 1985년 7월 안기부장 특보로 처음 방문한 이후 노태우 정권 후반까지 20여 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박 전 장관은 1989년 임수경 새정치연합 의원(당시 한국외국어대 재학)이 참석했던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임 의원은 이후 불법 방북 혐의로 옥살이를 했는데, 같은 장소에 대통령 밀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영삼 정부 때는 대북특사 활동이 미미했다는 게 정설이다. 1993년 북핵 위기로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자 한때 특사 교환을 위한 논의가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3월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가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고 발언해 무산됐다. 그 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중재로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퍼지기도 했지만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2005년 6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대북특사 자격으로 김정일을 직접 만나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었다. 2007년 10월 3~4일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 전엔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평양을 두 차례 찾아 사전 조율에 나섰다. 흥미로운 점은 김만복 전 원장의 경우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의거 특사 임명장을 받아 공식적인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밀사가 아닌 특사 시대를 처음 열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다시 밀사가 부활했다. 2009년 10월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은 싱가포르에서 북측 고위급 인사와 비밀회동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 같은 해 12월에도 통일부 간부가 비공개로 개성을 방문하며 관계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한때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주도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북측이 “돈 봉투를 주며 정상회담을 요구했다”고 폭로하며 양측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