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강경파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왼쪽=연합뉴스)과 당 온건파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사진공동취재단). ‘이석기 사태’에 대해 강경파는 ‘적극 지원’을 주장했지만 온건파는 ‘자제’를 요청했다.
“2013년 이석기 전 의원의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 북한 내부에선 군 강경파와 당 온건파 사이에서 의견 대립이 발생했다. 이때 군 강경파 진영에선 원칙대로 강경한 입장 피력과 통진당에 대한 적극 지원을 주장했지만, 당 온건파 진영에선 한마디로 ‘자제’를 요청했다.”
이석기 사태에 대한 대응에 ‘원칙론’을 중시하는 군 강경파 세력에 반해 당 온건파 진영의 생각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이때 군 강경파 진영의 중심에 선 이는 다름 아닌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이었다고 한다. 김영철 총국장은 인민군 상장(우리 군의 중장에 해당)으로서 2010년 3월 천안함 격침 사건의 기획자이자 주동자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군 내부에서도 그는 극단적인 강경파로 분류된다.
이에 맞서 당 온건파 진영의 중심에 선 인물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북한 내 최고의 대남통이자 지한파로 분류된다. 지난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최룡해 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함께 깜짝 방한한 바 있다. 수차례의 방한 경력으로 이미 남한에선 가장 낯익고 친숙한 인물로 여겨진다. 이윤걸 대표가 밝힌 김양건 부장을 비롯한 당 온건파 진영의 스탠스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 번째는 현실적인 측면이었다. 당시 남한의 모든 이목이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집중된 상황에서 강경한 대응 자체가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통진당이 ‘종북주의’ 의혹에 휩싸인 상황에서 북한의 강경한 자세는 오히려 남한 정부와 보수 여론에 설득력만 덧붙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며 전략적인 판단인 셈이다.
두 번째 측면은 앞서의 것보다 좀 더 복잡하다. 이는 북한 내부에서 통진당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다. 특히 북한의 종북 세력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실제 북의 회유에 따라 직접 밀봉교육(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비밀리에 행하여지는 교육)을 받은 소수의 골수 추종세력과 단순히 북을 추종하는 다수의 세력은 확실히 다르다는 인식이다. 즉 북한 핵심부에서도 통진당의 실체를 두고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우리 세력’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고민이 있었다는 것.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로이터/뉴시스
“어떻게 보자면 북한 입장에서 통진당은 이미 붕괴된 지부 격이다. 단순한 추종세력들도 훗날 통일을 위해 함께 안고 지원해야 할 것인지는 북한 내부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이미 과거 북에서 내려 보낸 공작원 중 일부는 ‘현실’을 알고 갈라선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상 위험 부담을 안고 통진당을 강경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통진당에 대한 대응 방식만큼은 당 온건파의 손을 들어줬다는 후문이다. 실제 북한의 대응 방식은 ‘선’을 넘진 않고 있다. 물론 이석기 사건과 최근 통진당 해산과 관련해 북한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의례적인 보도 수준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통진당 해산 직후 당 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북한전문가 역시 이에 공감을 표했다. 특히 그는 북한의 경제적 측면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군 강경파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과거 의례적으로 있었던 항의 차원의 물리적 도발까지도 염두에 둘 수 있다. 하지만 이석기 전 의원 구속과 최근 정당해산까지, 일련의 사건을 전후해 북한은 최소한 물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별 다른 행보가 없었다. 오히려 대화 재개에 큰 관심을 두며 유화적 제스처를 줄곧 취해왔다. 어찌 보자면, 여러모로 대외적 경색국면 속에서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있는 북한의 입장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현재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남한의 현실적 지원이다. 실제 사업권을 가진 여당 세력과 비교한다면, 통진당의 관계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다만 그는 “어찌됐건 북한의 대외전략의 절대적 결정권자는 김정은이다. 물론 통진당 문제의 대응 방식에 있어서 군 강경파와 당 온건파의 의견이 엇갈릴 수는 있지만, 계파투쟁이나 극단적인 의견대립은 과장된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그보다는 김정은의 전략기조에 따라 양 진영 중 한쪽 기조를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