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가정법원이 내린 판결은 박아무개씨(여·39)가 이혼도 하지 않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편 김아무개씨(36)와 김씨의 부친(시아버지)을 상대로 낸 이혼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한 1심이었다.
이 소송 건은 며느리가 남편뿐만 아니라 시아버지를 상대로 동시에 위자료를 청구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남편이 아내 모르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시부모도 이를 며느리에게 숨겨왔다는 점에서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쨌든 이 사건은 재판부가 “(남편과 시아버지는) 부인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려 1심에선 원고 승소로 결론이 났다. 현재 패소한 피고측은 항소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최종 심판이 어떻게 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서울가정법원의 이 판결은 소송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정작 법조계의 관심은 다른 데 쏠리고 있다.
이 소송에서 피고(남편 김아무개씨)의 변론을 맡은 변호인이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무자격자였던 것.
놀라운 것은 서울가정법원측이 피고의 변호인에 대한 신상파악도 없이 무려 4개월 동안 사건심리 및 재판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변협측에 확인한 결과 피고측 변호인 K씨는 지난 2000년 12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서울고법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확정받은 후 집유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른 사건에 연루돼 지난해 10월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K씨가 연루된 이 사건은 지난 2000년 7월 발생한 것으로, 당시 K씨는 신흥 종교단체의 법률 고문으로 있으면서 종교단체 회원들과 함께 전국 금융기관으로부터 57차례에 걸쳐 21억여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었다.
K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11월5일 변협으로부터 변호사 등록 취소 통보를 받았다. 곧바로 법무부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기각됐다”고 밝혔다.
K씨는 지난 3월15일 변협의 변호사 등록 취소 처분에 대한 취소 소원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그런데 K씨의 행적과 관련해 K씨와 변협, 그리고 서울가정법원의 행보에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이 많다.
우선 K씨가 서울고법에서 실형 선고를 받아 사실상 변호사의 품위손상에 해당됐음에도 변협은 K씨에 대한 징계를 3년 동안 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K씨는 지난해 7월(당시 그는 집행유예 상태였다) 구치소에 수감된 재소자 5명(자신의 의뢰인)에게 1인당 5백만원씩을 받고 구치소 접견실에서 1백24 차례에 걸쳐 외부에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도록 편의를 봐줬고 현금이나 쇠못 등 모두 21개의 부정물품을 재소자에게 전달한 사실도 드러나 지난해 11월 구속됐다.
이처럼 검찰이 기소한 데다, 변호사 등록마저 취소된 상태였던 K씨가 버젓이 법정 변론에 나섰던 것이다. 게다가 서울가정법원은 K씨의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K씨측은 이에 대해 “행정법원에 이 부분에 대한 자문을 구했더니 사건을 수임한 때가 지난해 6월이고,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때가 10월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행정법원측은 K씨의 말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K씨가 제기한 변호사 등록 취소 처분 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 제12부(조해현 부장판사) 관계자는 “K씨의 자문에 대해 법원측이 별 문제없다는 식으로 밝혔다는 부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K씨 건의 경우 3월24일 행정법원의 법정 신문이 있을 예정이며 법률적인 해석이 확실히 내려지기 전에 그의 자격에 대해 특정한 해석을 내렸을 리 없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서울가정법원은 K씨의 자격 여부에 대해 파악하지 않았던 것일까.
재판부 관계자는 “선임계를 낼 당시 변호사 자격에 이상이 없어 더이상 파악하지 않았다. 나중에 변호인 자격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K씨가 재판부에 자신의 신상에 대해 고지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며 K씨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K씨가 올해 1월19일 첫 변론 준비 절차에도 출석했고, 지난 1월21일 답변서, 1월31일 변호사 주소지 변경서, 그리고 2월20일 피고 증인 진술서와 인감 증명서를 K씨 명의로 제출했으며 지난달 26일 법정 종결 변론에도 출석했다”고 밝혔다.
변호사 등록이 취소됐음에도 K씨는 버젓이 법정에서 피고인측의 변론을 맡은 것.
그러나 K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정법원측도 나의 등록 취소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혀 양측의 진실공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