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신문, 방송 등 언론에는 윤락녀를 사랑한 한 은행원의 애절한 순애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 은행원은 안마시술소에서 만난 윤락녀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가 윤락업소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그녀와 윤락행위를 했다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 은행원의 이야기는 그가 서울의 유명 대학인 C대 법대 출신인 데다, 은행원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세간의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지 6개월 뒤인 지난 3월30일 이 은행원은 인천 서부경찰서에 강간 혐의로 구속됐다. 또다른 윤락녀를 수십 차례 강간한 혐의였다. 그는 자신이 점찍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병적으로 집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경찰에 따르면 그가 지난해 9월 스스로 자신의 윤락행위를 경찰에 신고한 것도 짝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는 것이다.
박아무개씨(34·전직 은행원)가 지난해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사연은 이랬다.
당시 박씨는 강남에서 유명한 S안마시술소를 드나들면서 윤락녀 K씨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였던 K씨에게 한눈에 반했다. 이후 박씨는 줄곧 이 업소를 출입하면서 K씨를 지명해 서비스를 받았다. 단골이 된 박씨는 K씨와 업소 밖에서 만남을 가지면서 사랑을 싹틔웠다.
얼마 뒤 박씨의 권유를 따라 K씨는 업소 일을 그만두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다시 업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자 박씨는 K씨를 찾기 위해 경찰에 K씨와 업주를 윤락혐의로 신고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윤락행위는 현장을 덮치거나 증거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입증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에 박씨는 인터넷을 통해 언론사와 청와대 등에 K씨가 일하는 윤락업소에 대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박씨는 K씨가 일하는 업소에 손님으로 들어간 뒤 경찰에 전화해 “지금 불법윤락업소로 들어가니 윤락행위하는 현장을 급습하라”고 신고했다. 박씨는 또 자신의 윤락행위를 몰래 찍은 휴대폰카메라와 성관계에 사용한 콘돔을 증거물로 가지고 나와 경찰에 “불법윤락행위자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박씨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 업소가 문을 닫으면 K씨가 윤락을 못하게 될 테니 후회는 없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그는 여론의 지지를 받아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강남에서 가장 잘나가던 해당 업소는 벌금과 영업정지 조치를 당했다.
▲ 당시 박씨의 윤락행위 신고를 보도했던 신문 기사들. | ||
박씨가 사랑한 여성은 K씨와 같은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던 A씨(여·33)였다. 박씨가 A씨를 처음 안 것은 2002년 12월. K씨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는 A씨를 만나왔던 것이다.
박씨는 A씨를 차지하기 위해 A씨의 가족까지 이용했다. A씨의 집안은 강남의 부유한 집안으로, A씨 또한 미국유학을 다녀온 고학력의 여성이었다. 취직이 되지 않던 A씨는 부모 몰래 안마시술소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A씨는 안마시술소에 서 일하는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박씨는 이 점을 이용했다.
박씨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하며 A씨를 불러냈다. A씨는 이미 박씨의 ‘전력’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박씨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박씨는 A씨를 통해 온갖 희한한 성적 욕심을 채웠다. A씨를 모텔로 끌고 간 박씨는 A씨가 반항하자 커튼을 찢어 A씨의 양손을 침대에 묶은 뒤 변태적인 성행위를 했다. 신나를 모텔에 들고 들어가 A씨에게 뿌린 뒤 라이터로 협박하며 강제적인 성행위를 일삼았다. 또 자신의 차에 A씨를 태운 뒤 야산으로 끌고가 칼로 위협하며 A씨를 성폭행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A씨는 이후 잠적했고, 박씨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박씨는 A씨의 가족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따르면 은행원이었던 박씨는 은행 전산망을 이용해 A씨의 가족들의 주소를 속속들이 알아냈다는 것.
박씨는 A씨의 부모에게 아주 예절바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편지 속에는 은근한 협박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당신 딸을 사랑한다. 결혼하게 해달라”고 하는가 하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세상이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A씨는 자신이 윤락업소에서 일한 사실이 가족들에게까지 알려지자 참다못해 박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양의 탈을 썼던 박씨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순간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자신을 파렴치범으로 모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에게도 “A씨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한 행동이다. 나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는 모두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인천 서부경찰서의 한 형사는 “작년에 자신을 잡아가라고 경찰에 신고한 것도 알고보면 일종의 사기극이었다. 서울의 유명 대학 법학과를 나오고 굴지의 은행에 다니면서 밤마다 기이한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