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홍 자민련 경북도지부장 | ||
이날 지구당 사무실에서 체포된 박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부인 박영옥씨의 동생이다. 박씨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사촌오빠이기도 하다.
전날 총선에서 1천7백62표를 얻는데 그쳐 낙선한 박씨는 이날 검찰 수사관들에게 체포돼 곧바로 김천 구치소에 수감됐다. 전 대통령과 현 야당 총재의 친인척인 그에게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놀랍게도 ‘사기죄’였다. 김천지청은 박씨가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인 벤처기업 O사의 전 대표이사 백아무개씨에게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3억원을 가로챘다고 밝혔다.
김천지청에 따르면 박씨와 백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3월18일. 당시 O사의 대표로서 공장 규모를 늘린 후 수개월 동안 물품 생산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고민중이던 백씨는 알고 지내던 A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시 자민련 인천 지구당 위원장인 A씨는 곧바로 인맥이 넓은 박씨를 떠올렸고, 곧바로 두 사람간의 만남을 주선했다.
박씨가 김종필 총재의 처남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백씨는 박씨와 만난 자리에서 그간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대기업에 자사제품의 납품을 추진해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다. 삼성이 제품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인사비조로 3억원을 요구했다. 나흘 뒤 백씨는 박씨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 도화동 소재 삼창플라자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박씨에게 전달했다.
새롭게 삼성과의 거래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백씨의 마음이 바뀐 것은 박씨에게 돈을 건넨 뒤 2개월이 지난 5월경. 곧바로 삼성에 납품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처럼 말하던 박씨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씨는 우선 박씨에게 연락을 취해 3억원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박씨가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개인 돈이 아닌 회사 돈으로 3억원을 충당했기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박씨는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박씨는 백씨와의 접촉을 일체 끊어버렸다. ‘그래도 김 총재의 처남인데…’라며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백씨는 2004년에 들어서까지 좀처럼 박씨와 연락이 되질 않자 지난 1월 서울 서부지검에 박씨를 고소했다.
백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에게 일부 도덕적인 책임도 있지만 실제 박 전 대통령의 조카이면서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신분을 앞세워 힘없는 중소기업인을 우롱했다는 점을 참을 수 없어 고소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백씨는 회사 돈을 쓴 부분에 대해 “개인 돈 3억원을 회사계좌에 입금했다”고 말했다. 장부상 회사돈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개인돈이라는 주장이었다.
당초 서울 서부지검에 접수된 이 사건은 용산경찰서로 이첩됐다가, 피해자 조사가 이뤄진 뒤 박씨의 소재지(경북 구미)인 대구지검 김천지청으로 지난 3월2일 넘겨졌다. 서울에 거주하던 박씨는 당시 17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경북 구미 사곡동 소재 빌라로 주거지를 옮긴 상태였다. 김천지청은 이후 박씨의 혐의 사실을 확보, 선거 직후 곧바로 박씨를 구속했다.
수사를 맡은 김천지청 신문식 부장검사는 “박씨가 혐의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박씨에게 건네진 3억원의 사용처에 대해 집중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자금이 선거자금으로 전용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박씨는 백씨 건 외에 또 다른 사업가로부터도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확인 결과 박씨는 지난 1월27일 중소건설업체 대표인 나아무개씨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 이 사건 역시 당초 용산경찰서에 접수됐다.
나씨는 경찰 조사에서 박씨가 N건설 회사의 오산 아파트 건설 현장 식당 운영권을 주겠다며 총 8천만원을 가로챘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경찰서는 이 사건에 대한 피해자 조사를 마치고 지난 4월6일자로 구미경찰서에 이첩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구미경찰서측은 “이 사건에 대한 자료가 넘어오지 않았다”며 현재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어 고소인 나씨가 경찰측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현재 박씨측은 이 문제와 관련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박씨의 선거사무장 K씨는 “선거가 끝난 이후 비서관 및 회계 책임자들 모두 서울로 올라갔다.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으며 박씨 가족들과도 전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변호를 맡을 김진태 변호사측 관계자도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