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는 판매 미수금 1백50만원 때문에 자신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어린 김씨로부터 “×××” 등의 욕설을 듣고 격분했다. 화장실로 김씨를 유인한 서씨는 화장실에 숨겨놓은 총을 꺼내들었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총이었다. 김씨를 살해한 뒤 도주한 서씨는 사건 발생 4일 만에 검거되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을 놀라게 한 것은 서씨의 집에서 쏟아져 나온 엄청난 살상용 무기들이었다. 서씨의 집안에는 같이 사는 가족도 모를 정도로 곳곳에 무기들이 숨겨져 있었다.
지난해 7월 대구에서 발생한 총기강도 사건 당시에도 피의자 집에서 무기고를 방불케 하는 총기들이 쏟아져 나와 충격을 던진 적이 있다.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불거진 사제무기 제작은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문제는 마음만 먹으면 이런 무기들은 얼마든지 불법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경찰은 단속에 한계가 있다며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피의자 서씨의 집에서 나온 무기들은 소총 2정, 권총 3정, 석궁 4정, 그리고 낫과 도끼 등 수십 가지 흉기들과 실탄 4천 발이다. 서씨는 왜 이런 무기들을 만든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평소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160cm의 키에 50kg 정도인 서씨가 평소에 왜소한 체격으로 대인관계에서 주눅이 드는 때가 많다 보니 이에 대한 콤플렉스로 총이나 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서씨가 만든 총기들을 보면 겉모습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쇠붙이를 덕지덕지 붙이고 붕대를 감는 등 얼핏 보기엔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성능은 실제 총기와 다름없었다. 경찰이 시험해본 결과 자동차 문짝을 그대로 관통했다. 살상용으로 쓰기에 충분했다.
서씨는 한 술 더 떠서 군용 M16 소총의 탄환과 탄창을 사용할 수 있는 소총을 만들기도 했다. 모양도 실제 총과 비슷했다. 이외에도 서씨는 석궁, 낫, 도끼를 사 모았고 직접 칼을 제작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앞으로 얼마든지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서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지만, 평소 무기에 대한 관심과 20년 넘게 금형제작을 해온 기술로 어렵잖게 총기들을 직접 제작해 냈다.
기계부품을 의뢰받아 정확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서씨가 하는 일이었다. 금형제작 전문가들은 “금형제작이 쇠를 깎는 일이라고 해서 아주 단순한 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정밀도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나사 하나를 만들더라도 길이, 지름, 이의 간격을 정확히 맞추어야 하는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총을 만든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 서씨가 범행에 사용한 사제총. 모양은 조잡해도 살상용으로 쓸 만큼 위력적이다. 집에서 발견된 각종 사제총과 석궁들. 실탄도 4천발이나 갖고 있었다. 대부분 총포상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 ||
학력 미달로 군대를 가지 않은 서씨가 총기의 원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군대에서 나온 총기 매뉴얼 덕분. 서씨는 이 책자들을 미군부대 근처에서 구했다고 밝혔다. 이 책들은 총기류의 정비와 관리를 위한 매뉴얼인데 각종 부품의 모양과 조립순서가 자세히 나와 있었다.
지난해 대구 삼덕동 총기사건의 피의자였던 김아무개씨(39)도 서씨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평소 발명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 또한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랜 세월 기계공작을 연마한 기술력으로 무기를 제작했다.
당시 김씨가 만든 총기류는 얼핏 보기에 실제와 겉모양까지 똑같아 총기 밀반입으로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발견된 베레타 M9 권총은 실제와 다른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겉모양만 비슷하게 김씨가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번 취재 결과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총기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알의 불법 유통이 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합법적으로 탄알을 구입한 사람이 이를 사용하지 않고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기 때문.
서씨의 경우 대부분의 탄알을 총포상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군용 M16 탄알에 대해서는 청계천에서 구입한 공포탄을 개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의 총기제작이 사회문제로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음에도 막상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하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위조지폐가 문제가 된다고 해서 컬러복사기 사용을 모두 금지시킬 수 없는 것처럼 사제총기가 문제가 된다고 해서 금형 사출기를 모두 금지시킬 방법이 없다. 현재로서는 총기를 이용한 개별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수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경찰은 또 “현재 한국처럼 총기관리가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한 해 총기관련 사고는 40건 미만이다. 공기총 또는 엽총으로 인한 사건이 75∼80%, 군경의 총기류로 인한 것이 15%, 사제총기로 인한 것이 2∼3% 정도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제 총기나 혹은 군경의 총기 이외에 밀반입된 총이 범죄에 이용된 경우는 없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폭력배들이 양산된 총기로 범죄를 저지르지만 한국에는 그런 경우가 아직까지 없다”는 것.
그러나 엽총이나 공기총의 불법 개조 및 사용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책이 없는 실정. 총포상에서 불법으로 빼돌려지는 탄알에 대해서도 “법에 따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