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지난 3월 S운수회사에서 지입차 매입계약을 한 남아무개씨는 지난 4월13일 가족들과 전남 강진으로 봄나들이를 가던 중 안성 부근에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지입차 계약을 함께 한 후배였다. 후배는 지입차주를 모집한 운수회사의 사장과 직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잠적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남씨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씨는 화물차 영업을 그만두고, 개인 화물차를 판 1천5백만여원 전부를 지입차 매입에 투자한 뒤 차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튿날 남씨는 용인으로 급히 올라와 사태파악에 나섰다.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회사에 찾아가보니 후배의 말 그대로였다. 사장과 직원들이 사무실 집기 및 서류를 모조리 가지고 도주한 상태였다. 고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인경찰서를 찾아가니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형 사고였다.
S운수회사로부터 금전적인 손해를 입고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시킨 피해자는 현재 1백10여명. 이는 용인경찰서에만 고소장이 접수된 숫자다. 서울 송파경찰서나 부산, 양산, 마산, 대구, 강원, 충청권 등에서 산발적으로 들어오는 고소 건을 합한다면 피해자는 1백50∼1백80명까지 이른다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피해 액수는 개인당 5백만원에서 2천만∼3천만원 정도. 심지어 5천7백여만원의 손해를 본 피해자도 있다. 총 피해 액수는 약 1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계속 늘고 있어 피해 액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고소인들과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S운수회사가 지입차주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경부터. S사는 송파구 문정동과 용인시 백암면에 사무실을 차려 놓은 뒤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지입차주를 모았다.
모집 광고를 내자마자 S사에는 지주차 계약을 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S사가 업계의 기존 관행을 뒤집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화물 운수업자들의 구미를 당긴 것. S사는 개인 화물차를 보유한 운수업자들과 계약을 맺고 인력 관리비, 복리 후생비, 퇴직금 등을 부담하지 않는 기존 지입 운수회사와는 차별화된 조건을 내세웠다.
특히 저렴한 차량 구입 가격에 4백7만원에 달하는 봉급과 점심 식사비, 유류비 등을 지원한다는 계약 조건은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인해 수입이 일정치 않았던 화물 운송업자들의 눈을 번뜩이게 했다.
또 S사는 50여 대 직영차를 보유하면서 물류 회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고, 의약품, 의류, CD생산 업체들과 물류 운송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계약 희망자들을 자극했다.
전국적으로 계약 건수가 늘어나면서 S사의 수법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우선 지난해 계약을 맺은 계약자 40여 명에게는 빠른 시간 내에 지주차를 제작, 전달하고 한 달에 두 세 번 가량 물류 운송을 나가게 하는 등 계약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던 S사는 올해 2월경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S사는 이즈음 지주차 계약을 한 계약자들에게는 시간을 끌면서 의도적으로 차량 인도시기를 늦췄다. 반대로 계약과 동시에 차량 인도금과 탑 적재비, 보험료, 자동차 등록비 등을 지불하게 했다.
계약자로부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챙긴 S사는 차량 제작을 의뢰한 운수 회사에는 할부로 차량 제작비용을 납부하기로 하면서 계약자들의 돈은 고스란히 모았다. 피해자들에게는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다”, “아직 임시번호가 나오지 않았다”는 식으로 양해를 구했다.
피해자 대표인 남씨도 이러한 수법에 속고 만 것이다. 남씨는 지난 3월2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재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서명했다. 남씨는 S사 관계자가 “계약금을 빨리 내야 차도 빨리 나온다”고 하자 계약 일주일 후인 3월10일 1차 계약금 5백만원, 3월15일 용인 백암면 사무실에서 나머지 잔금 1천9백만원 등 총 2천4백만원을 지불했다.
이후 S사는 수법대로 차량 인도일을 계속해서 늦췄다. S사는 3월20일 사무실을 찾아온 남씨에게 “3월22일에서 27일 사이로 늦춰질 것 같다”며 차량 인도를 미뤘다.
남씨가 자신의 차가 나왔다고 통보를 받은 것은 3월27일. 그러나 S사 관계자 입에서는 역시나 “차량 등록 번호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됐다.
기분이 상한 남씨가 해약을 결심한 것은 지난 4월6일경. 주변 사람에게서 자신의 차인 것인 줄 알았던 화물탑차가 다른 계약자의 차였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것이다.
그러나 남씨는 S사 이아무개 부장이 거듭 사과를 하자 마음을 되돌렸고, 그러다가 결국 예기치 못한 낭패를 보고야 말았다.
지난 4월12일께 집단 도주한 것으로 보이는 S사의 직원은 사장인 허아무개씨를 포함, 12~13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S사는 용인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고소가 접수된 지 한 달여가 가까워지고 있으나 경찰은 도주한 직원들의 신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별다른 수사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은 도주자에 대한 수배나 출국금지령을 경찰이 내리지 않고 있는 점, S사와 전화번호가 같은 물류 회사가 최근 지역 정보지에 지입차주 모집 광고를 내고 있음에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점 등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근 S사 회장인 김아무개씨를 불러 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가명을 쓴 것으로 드러난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도 피해자다. 사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1억7천만원을 빌려주었다”며 도주 직원들의 공모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피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사장의 얼굴을 전혀 모른다고 진술한 김씨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빌려줄 수가 있느냐”며 경찰의 적극적이면서 정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 피해자들은 아예 일손을 놓고 있거나 건설 현장에서 일당 잡무를 찾아 나서는 상황. 마지막 희망을 걸고 살 길을 찾아 나섰다가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들이 전국 경찰서로 집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