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단순 사기사건으로 알고 수사를 종결지으려 했던 부산지검 형사1부는 김씨의 빌린 돈이 도박자금이었다는 사실이 우연히 밝혀지면서 졸지에 부산시 삼락동에 암약하던 대형 주부 도박단을 일망타진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다.
부산시 사상구 삼락동에 사는 주부 최아무개씨(39) 등 3명이 도박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3년 전인 지난 2001년 5월이었다. 삼락동 주변에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도박판을 우연히 접하면서 이들의 ‘하우스’ 출입은 시작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도박장에서 이들은 고스톱으로 매일 20만∼30만원씩의 돈을 따거나 잃거나 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헤어날 수 없는 도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도박판에서 이른바 ‘꽁지’ 역할을 하던 주부 김씨가 이들에게 돈을 빌리면서부터. 김씨는 도박꾼들에게 판돈을 빌려주고 고리를 챙기는 역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돈을 융통해 주면서 고액의 수수료로 고리를 챙기기도 했다. 그런데 김씨가 제3자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최씨 등으로부터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했다.
김씨는 이전에도 노아무개씨(51·주부) 등 7명으로부터 6천만원을 빌렸던 적이 있었다. 이 돈을 갚지 못한 채 또 도박자금으로 최씨 등 3명으로부터 7천만원을 또 빌렸다.
김씨가 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도박판에 끼어들자, 노씨 등 7명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김씨를 경찰에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이었다. 도박사실을 숨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노씨 등은 지난 1월 부산 사상경찰서에 김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생활이 어려워서 빌려준 생활자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사기죄로 구속된 김씨 역시 그 돈이 도박자금이었다는 것은 밝힐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꽁지 역할을 하면서 하우스를 이끌었기 때문에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돈을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합의를 보라고 권유했지만, 김씨 역시 나름대로 꾀를 생각해 냈다. 적당히 버티면 노씨 등이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김씨가 돈을 갚지 않고 버티자 7천만원을 빌려준 최씨 등 3명도 지난 3월 김씨를 추가로 고소했다. 이번에도 도박자금이라는 것은 숨긴 채였다.
구속을 면하기 위해 돈을 갚을 줄 알았던 김씨가 계속 버티면서 구속의 길을 택하자 고소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김씨 역시 적당한 선에서 소를 취하할 줄 알았으나 정작 노씨 등에 이어 최씨 등도 추가로 고소를 하자 고민에 빠졌다. 형량으로 볼 때 사기죄보다 오히려 도박죄가 더 가볍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설사 도박자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도박장에서 빌린 돈은 갚을 의무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 내용을 떠올라 돈을 갚지 않아도 되리라는 계산도 섰다.
돈을 받을 목적으로 고소 작전을 벌였던 노씨와 최씨 등은 정작 자신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고 김씨의 심경 변화를 감지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자신을 구속시킨데 앙심을 품고 도박 사실을 털어놓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또 나름대로 하나의 묘안을 짜낸 것이 탄원서였다.
지난 4월 고소인 중 누군가 한 명이 검찰에 ‘사실은 김씨가 우리에게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 고소를 한 것은 돈을 받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 구속까지 시키려던 것은 아니었다. 김씨를 석방하고 서로 합의해서 끝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던 것.
단순 사기 사건으로 김씨의 구속과 함께 수사를 종결지으려 했던 부산지검 형사1부는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억대의 돈을 여러 명의 주부들이 한 주부에게 집중적으로 빌려준 데에 주목했다. 결국 최씨 등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빌려준 돈은 도박자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최씨 등 3명은 무고죄, 위증죄, 상습도박, 도박 개장의 혐의로 7월8일 구속되었다. 김씨는 사기죄가 아닌 상습도박과 위증죄 혐의로 재구속되었다.
한편 애초 김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던 노씨 등 7명에 대해서도 검찰은 재수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기 부분은 무혐의로 처리되고 다시 도박과 무고, 일부 고소인에게는 위증 혐의가 적용될 예정이어서 이들에 대해서도 무더기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도박자금으로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술수를 쓰다 결국 들통이 나 사건 관련자 전원이 구속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검찰은 “부산 삼락동은 그다지 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가 아님에도 상습도박이 많이 행해지는 지역으로 유명하다”며 “이번 일로 이 일대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들 사이에 상습적으로 행해지는 주부도박단의 한 부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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