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빈 개집과 쇠파이프 개 주인 이창삼씨가 잡아먹힌 진돗개 ‘찬미’의 목줄을 손에 쥐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
문제의 개를 키우던 피해자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렌터카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창삼씨(62). 이씨는 렌터카가 보관돼 있는 공터를 다른 사설 주차장 업체와 함께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씨가 ‘개를 잡아먹었다’고 고발한 가해자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이 주차장 업주인 김아무개씨(57)였다.
한 공간을 둘로 나누어 쓰고 있는 이씨와 김씨. 때문에 두 사람의 사무실은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평소에도 두 사람은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친한 관계였고 한 사람이 사무실을 비우면 다른 사람이 일을 대신 봐줄 만큼 허물 없는 사이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던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간 것은 바로 두 살짜리 개 한 마리의 죽음 때문이었다. ‘비운의 견공’은 이씨가 주차장 한 구석에서 키우고 있던 흰색의 암컷 진돗개 ‘찬미’. 개 주인 이씨는 자신이 말렸음에도 주차장 업주 김씨 등이 지난 12일 찬미를 ‘무참히’ 먹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3시 기자가 이씨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화를 삭이고 있는 듯했다. 이씨는 기자를 ‘찬미’가 매어 있던 장소인 주차장 구석으로 안내했다. 비가 몇 차례 왔음에도 아직 핏자국이 몇 군데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개집 바로 옆에는 지름 7cm가량의 공사용 쇠파이프가 쌓여 있었다. 이씨에 따르면 ‘포식자’들이 이 쇠파이프로 개를 잡았다고 한다.
이씨가 처음 찬미가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13일 월요일 아침. 바로 전날인 12일 일요일 낮 2시께 이씨는 김씨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형님, 그 개 된장 바르면 안 되겠습니까?” ‘된장 바른다’는 것은 개를 잡아서 먹는다는 뜻으로 김씨와 이씨 사이에 농담조로 통하던 말이었다. 이씨는 “안된다”고 했고, 곧장 이씨의 부인도 전화를 바꿔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씨가 출근해 보니 찬미가 없어져 김씨를 추궁하자 잡아먹은 사실을 시인했다는 것. 김씨와 김씨의 주차장에 월정액 주차를 하는 김아무개씨(47)와 그 친구인 박아무개씨 등 3명이 같이 개를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개를 잡지 말라고 했음에도 ‘일’을 낸 김씨가 못마땅해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김씨 등 3명은 초범인 데다 가족들이 있고 도주의 우려가 없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불구속으로 풀려난 뒤 김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주차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그렇게 좋은 개인 줄 모르고 잡아먹었지…. 그런 개인 줄 알았으면 안 잡아먹었을 것이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내가 직접 잡은 것도 아닌데 나에게만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억울하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 12일 단골 주차 고객인 또 다른 김씨가 오더니 “형님 그 개 된장 바릅시다”고 자꾸 졸라대서 이씨에게 전화를 해 개를 잡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와 이씨의 부인이 극구 반대해 김씨에게 하지 말라고 얘길 했으나 그새 김씨와 친구 박씨가 ‘일’을 냈다는 것. 두 사람은 김씨에게 다리 한 쪽을 주고선 자신들끼리 야산에 가서 개를 요리해 먹었다고 한다.
당시 김씨는 별로 개고기를 먹을 생각이 없어 이웃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노점상에게 줘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경찰서에 갔다 온 사이 노점상 주인은 다시 고기를 김씨의 사무실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김씨가 제일 억울해하는 것은 갑자기 이씨가 생각지도 못한 ‘개값’을 들고 나온 점이다. 김씨는 그렇게 좋은 개라면 왜 그냥 주차장 한 구석에 방치하듯 키웠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이씨가 직접 그 개를 기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얻어서 키운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직접 키운 개가 아니다 보니 이씨조차도 개에게 물릴 뻔해 “그놈 된장 발라버려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 만큼 잡아먹어도 무방할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 이전 개 주인 노아무개씨가 휴대폰에 저장해두고 다니던 ‘찬미’의 사진. | ||
그런데 ‘찬미’는 김씨의 말대로 이씨가 어릴 때부터 직접 기른 개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의 사무실 옆 은행에 근무하는 노아무개씨(여·46)가 두 달 전 이씨에게 준 개였다. 노씨에 따르면 남편이 2년 전 회사 직원에게 새끼를 얻어와 아파트 베란다에서 길렀는데 덩치가 너무 커지자 아파트에서 기르기 어려워져 이씨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이씨가 한국진도견협회 이사고 평소에도 진돗개를 길러왔기 때문에 안심하고 개를 맡겼다는 것. 대신 암컷인 찬미를 교미시켜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다시 얻어 집에서 키울 생각이었다고 노씨는 밝혔다.
그렇다면 노씨가 이씨에게 개를 넘길 때는 과연 얼마를 받았을까. 노씨는 “찬미는 가족과도 같았다. 남편도 집에 손님이 오면 아내자랑 대신 찬미부터 자랑하고 휴대전화 배경화면도 찬미로 올려놓을 정도였다. 고등학생인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가족같이 여겼기 때문에 판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씨가 개를 잘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맡긴 것이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씨나 노씨 모두 지인들에게서 선물로 찬미를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씨는 죽은 찬미에 대해 수천만원의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을까. 이씨는 돈보다도 “개를 아끼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는 입장이다.
처음 이 일은 김씨가 찬미의 예전 주인 노씨에게 좋은 개를 하나 구해주고 사과하는 것으로 합의를 볼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이씨가 이사로 있는 한국진도견협회 회장인 이철용씨가 ‘찬미의 가격이 1천만원 이상 나간다’는 말을 하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언론에 이 일이 알려지면서 찬미의 가격은 8천만원까지 ‘치솟았다’.
이날 김씨의 사무실을 찾아 그를 위로하고 있던 한 이웃주민은 “갑자기 일이 너무 커지고 기자들이 하루종일 찾아와 지금은 두 사람 다 감정이 격앙된 상태다. 2∼3일 지나고 잠잠해지면 화해하도록 주변에서 힘을 쓰도록 해야겠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이 일은 감정싸움이지 실제로 큰 금전적 손실을 본 것은 아니니 인간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경찰 또한 사건이 너무 떠들썩하게 확대되자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청량리경찰서 강력10팀의 한 형사는 “개 한 마리가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개의 가격이 얼마냐라는 논란 때문에 우리도 곤혹스럽다. 당사자들끼리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개를 잡은 당사자인 또 다른 김씨에게 전화를 하자 그는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며 수화기를 내렸고, 김씨의 친구 박씨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일로 전화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런 걸 ‘개 잡아먹고 오리발’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