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양 피해여성의 집에 완벽한 알몸 상태로 침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 왜 이런 이해 못할 짓을 했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사건 당일인 지난 18일 정씨가 침입한 집은 정씨 자신이 사는 집과 이웃해 있었다. 평소 이 집에 여성들이 많이 사는 것을 보고 ‘욕심’을 품고 있다가 이날 ‘결행’에 나섰던 것.
새벽 6시께 인적이 드문 틈을 타 정씨는 미리 점찍은 집으로 향했다. 마침 비까지 오고 있어서 자신이 침입할 때 인기척이 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먼저 정씨는 피해여성들이 사는 2층 연립주택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옷을 모두 벗고 칼 한 자루만을 가지고 가스관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방충망을 뜯고 김아무개씨(여·24) 등이 사는 집으로 침입했다.
뒤늦게나마 복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는 베란다 빨래대에 널려 있는 팬티 하나를 집어들고 자신의 얼굴에 뒤집어 썼다. 그리고 곤히 잠을 청하고 있던 여성들을 깨웠다.
처음에 김씨 등 피해여성 3명은 강도가 든 줄 알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흉기를 든 치한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
순간 피해여성들은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반항했다. 당황한 정씨는 흉기를 휘둘러 여성 한 명의 어깨에 상처를 입히고 자신이 침입했던 2층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거리에는 비명소리를 듣고 놀란 주민 한 명이 몽둥이를 들고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정씨는 이 ‘야경꾼’을 보자마자 자신이 알몸에, 맨발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허겁지겁 달아났다. 곧 알몸 사내와 주민 간에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그나마 정씨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이 주민이 중년의 나이였다는 사실. 정씨는 그렇게 2백여m를 달아나 한 건물에 숨어들었다.
아침 무렵까지 알몸으로 바깥 동정을 살피던 정씨. 밖으로 나가려 해도 그 상태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고민 끝에 정씨는 그 건물 3층에 사는 한 노인에게 “옷을 도둑 맞았다”고 둘러대고 운동복을 한 벌 얻어 입었다. 그런 후 경찰에 자수할 때까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인근 목욕탕에 숨어 있었다.
정씨가 숨어 있던 시간, 경찰은 이미 정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은 “당시 옷을 벗은 채 침입했다는 피해여성들의 말을 듣고 범인이 가까운 곳에 살거나 범행현장 근처에 옷을 벗어 놓았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옥상에서 회수한 옷으로 주변을 탐문해 보니 이웃집에 사는 정씨가 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 수사관은 “처음엔 정신병자나 변태성욕자의 소행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검거해 보니 정씨는 아주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정씨는 대체 왜 옷을 모두 벗고 피해여성들의 집에 침입했을까.
경찰 조사에서 정씨는 “빨리 ‘일’을 보기 위해 옷을 벗고 들어갔다. 그리고 일이 잘못 돼 도망가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옷깃을 잡히지 않기 위해 모두 벗고 들어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씨의 수법은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정씨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다”면서 “인적 드문 비 오는 새벽 시간을 선택한 것이나 방충망을 뜯고 침입한 것, 그리고 옷을 벗은 것도 정씨 나름의 계산대로 움직인 셈”이라고 전했다.
전방부대에서 조교로 복무하다 올 초 제대했다는 정씨는 “내가 애인만 있었어도 안 그랬을 텐데…”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훈]